호르무즈 해협은 지옥으로 가는 길, 파병이 부를 네 가지 재앙

장기영 기자

등록 2026-09-06 15:48


이재명 정부는 호르므즈 해협에 한국군을 파병해 놓고 이런 평온을 기대하고 있는가?

꿈 깨라! 작금의 이란전은 그 옛날의 베트남전이 아니다. 이란전에 발을 담그는 순간, 한국에겐 지옥문이 열릴 것이다. 


 


여론 떠보기, 그리고 침묵하는 결정 과정


청와대는 "아직 진척된 것은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정부와 군 내부에서는 P-8A 해상초계기, 군수지원함, 폭발물처리 전력까지 구체적인 자산 목록이 이미 오르내린다. 언론에는 연일 파병 검토 소식이 흘러나오고,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이 자원을 전개하기를 여전히 기다리고 있다"며 노골적으로 결단을 압박한다. 


이 모든 흐름을 냉정하게 뜯어보면,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은 정책 결정이 아니라 '여론 간보기'에 가깝다. 국민이 알지 못하는 사이 정부 내 맹목적이고 관성적인 오랜 친미-친이스라엘 관료들은 파병을 기정사실화하는 프레임을 짜고, 언론을 통해 조금씩 그 프레임에 국민을 적응시키고 있다.


하지만 국민이 반드시 물어야 할 질문이 있다. 영국도, 캐나다도, 독일도 몸을 사리는 이 전쟁에 왜 한국만 앞장서야 하는가. 프랑스와 영국은 호위함과 기뢰탐색함을 오만만 인근에 배치해 놓고도 "미·이란 간 교전이 멈춰야 본격적인 작전에 들어가겠다"며 사실상 대기 모드에 머물러 있다. 독일은 아예 배치했던 기뢰탐색함과 지원함을 철수시켰다. 유럽의 주요 동맹국들조차 발을 담그기를 꺼리는 전장에, 한국이 미국의 요청 한마디에 등 떠밀려 뛰어드는 것이 과연 국익에 부합하는 선택인가. 파병을 주장하는 이들이 답해야 할 질문은 이제부터다.


다변화된 국제질서에서 한국이 고립된다


미국은 더 이상 '유일 초강대국'이 아니다.  냉전 종식 직후, 나아가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미국을 따르는 것은 국제사회에서 안전한 선택으로 여겨졌다. 미국의 정치적 영향력과 경제적 지배력이 압도적이었기 때문이다. 노무현 정부가 2003년 이라크 파병을 결정할 때 고려했던 국제질서도 바로 그런 '미국 일극 체제'였다.


그러나 지금의 국제질서는 그때와 근본적으로 다르다. 중국은 세계 2위 경제대국으로 성장했고,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전쟁을 거치며 서방과의 결별을 굳혔으며, 브릭스(BRICS)로 대표되는 신흥국 연합체는 달러 중심 질서에 도전하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의 관계 정상화, 중동 산유국들의 '전방위 외교(hedging diplomacy)' 확산은 더 이상 어느 한 강대국에 운명을 걸지 않으려는 세계적 흐름을 보여준다. 인도, 튀르키예, 인도네시아 같은 중견국들도 미국과 러시아·중국 사이에서 등거리 외교를 구사하며 실리를 챙기고 있다.


이런 다극화된 세계에서 미국의 요구에 무조건 순응하는 것은 더 이상 '안전한 선택'이 아니라 '위험한 베팅'이다. 미국의 정치적 리더십은 국내적으로도 분열돼 있고, 중동에서의 군사적 개입은 이미 여러 차례 명분의 붕괴와 전략적 실패를 반복해 왔다. 이라크전의 대량살상무기 거짓 정보, 아프가니스탄 철수의 혼란, 그리고 지금 이란과의 무력 충돌까지 — 미국이 벌이는 전쟁에 올라탄 국가들이 결과적으로 무엇을 얻었는지 되짚어봐야 한다.


유럽조차 선을 긋는 이유


주목할 것은 영국과 프랑스가 취하고 있는 태도다. 이들은 호르무즈 해협에 함정을 보내면서도 임무를 상선 보호, 해운업계 안심 조치, 기뢰 제거로 엄격히 한정하고 있다. 미군이 벌이는 대이란 해상봉쇄 작전, 즉 이란 항구로 향하는 선박을 검문·나포하는 작전과는 명확히 선을 그은 것이다. 왜일까. 그 작전에 동참하는 순간 자국이 이란의 직접적 적대 대상이 되고, 동시에 이슬람권 전체와의 관계가 악화되며, 국제사회에서 '미국의 하위 파트너'로 낙인찍힐 위험이 크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한국이 만약 미국의 요구대로 대이란 해상봉쇄 작전에 실질적으로 편입된다면, 유럽 동맹국들보다 훨씬 깊숙이 발을 담그는 셈이 된다. 이는 국제사회에서 한국을 '독자적 판단 능력이 없는 국가', '미국이 시키면 어디든 가는 국가'로 인식하게 만들 것이다. 그리고 그 이미지는 다자외교 무대에서, 유엔에서, G20에서, 그리고 향후 한국이 중견국 외교의 리더십을 발휘하려 할 때마다 발목을 잡는 꼬리표로 남을 것이다.


국제사회의 고립은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다. 그것은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은 형태로 나타난다. 이슬람협력기구(OIC) 57개국 및 비동맹 국가들의 외교적 거리두기, 유엔 등 다자기구에서 한국이 발의하는 의제에 대한 지지 약화, 그리고 무엇보다 아래에서 다룰 한반도 유사시 국제적 지지 기반의 약화다.


이슬람권과의 장기적 고립과 갈등


현재의 이란적은 앞으로 종파를 넘어선 '반미 전선'의 형성될 가능성이 많다. 이란과의 전쟁에 참여한다는 것은 단순히 시아파 종주국 한 나라와의 관계 악화를 의미하지 않는다. 물론 이란은 시아파의 맹주이고,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한 수니파 국가들과는 오랜 지역 패권 경쟁 관계에 있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이란과 각을 세워도 수니파 국가들과의 관계에는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낙관론이 존재한다. 그러나 이는 중동 정치의 복잡성을 지나치게 단순화한 오판이다.


첫째, 팔레스타인 문제와 미국·이스라엘의 군사행동에 대한 반감은 종파를 초월해 이슬람권 전체에 공유되는 정서다. 이란에 대한 미국의 군사작전이 장기화되고 민간인 피해가 누적될 경우, 수니파 대중 여론 역시 이스라엘·미국에 대한 반감으로 결집할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가자지구 사태 당시 수니파 국가들의 정부는 미국과의 관계를 유지했지만, 각국 국민 여론은 이스라엘과 미국에 극도로 비판적이었다. 정부 간 관계와 별개로 '아랍의 거리', '이슬람권의 대중 정서'는 한국에 대한 반감으로 번질 수 있다.


둘째, 한국은 중동 산유국 전체와 에너지·건설·인프라 분야에서 광범위한 경제적 이해관계를 맺고 있다. 이란과의 무력 충돌에 실질적으로 가담한 국가라는 낙인은 사우디, UAE, 카타르 등 수니파 국가들과의 관계에서도 '한국은 미국의 중동 정책에 동원되는 국가'라는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 이는 향후 원전 수출, 건설 플랜트 수주, 방산 협력 등 한국이 공들여 쌓아온 중동 시장에서의 신뢰 관계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셋째, 이슬람권은 57개국, 인구 18억 명이 넘는 거대한 국제적 블록이다. 이 블록 전체와의 관계가 냉각된다면 그 파장은 단기적 경제 손실을 넘어, 향후 수십 년에 걸친 외교적 자산의 훼손으로 이어진다. 한국이 공들여 구축해 온 '중동의 신뢰받는 파트너'라는 위치, 그리고 K-방산과 K-건설이 중동 시장에서 확보한 입지는 하루아침에 쌓은 것이 아니다. 이를 미국의 요구 하나에 위태롭게 만드는 것이 과연 합리적 국익 계산인지 재고해야 한다.


테러와 보복의 위험


더 직접적인 위험도 존재한다. 이란은 이미 "한국이 개입할 경우 이를 직접적인 침략 및 전쟁 참여로 간주하겠다"고 공개적으로 경고했다. 이는 단순한 외교적 수사가 아니라, 실제 군사적·비대칭적 보복 가능성을 시사하는 발언이다. 이란은 헤즈볼라, 후티 반군, 이라크 내 시아파 민병대 등 역내 대리 세력(proxy)을 통해 비대칭 보복을 감행해 온 전력이 있다. 한국이 파병할 경우, 중동에 거주하거나 파견된 한국 기업 관계자·건설 노동자·외교관이 보복의 표적이 될 위험을 배제할 수 없다. 실제로 이라크 파병 당시 김선일씨 피살 사건은 파병이 초래할 수 있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결코 가상의 이야기가 아님을 보여준 뼈아픈 선례다.


미국이 항상 한국 편에 설 것이라는 착각, '동맹의 신뢰'라는 말의 함정


파병 찬성론자들이 가장 자주 내세우는 논리는 "한미동맹의 신뢰를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논리를 뒤집어 볼 필요가 있다. 한국이 미국의 모든 해외 군사행동에 동원되는 국가로 각인될 경우, 정작 한반도에 위기가 닥쳤을 때 국제사회의 지지를 얻기가 더 어려워질 수 있다는 역설이다.


한반도에서 무력 충돌이 발생할 경우, 한국이 기댈 수 있는 것은 미국의 군사력만이 아니다. 유엔 안보리에서의 지지, 국제사회의 외교적 연대, 비동맹 국가들의 여론, 그리고 무엇보다 '침략당한 피해국'으로서의 국제적 정당성이다. 6·25 전쟁 당시 유엔군이 참전할 수 있었던 것도 한국이 '명백한 침략의 피해자'라는 국제적 공감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국이 명분이 불분명한 미국의 대이란 전쟁에 자발적으로 가담한 전력이 있다면, 훗날 한반도 유사시 국제사회는 어떤 시선으로 한국을 바라볼 것인가. "한국도 남의 나라 전쟁에 군대를 보내지 않았느냐"는 반문 앞에서, 한국이 주장하는 '평화 애호국', '방어적 안보관을 가진 국가'라는 이미지는 설득력을 잃는다. 특히 이슬람권 57개국이 유엔 등 국제기구에서 집단적으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상황에서, 이들의 반한 정서는 한반도 문제에 대한 국제적 지지를 확보하는 데 실질적 장애물이 될 수 있다.


더 근본적인 문제도 있다. 미국의 대외정책은 정권 교체에 따라 크게 요동친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미 동맹을 '비용과 이익을 따지는 거래 관계'로 재정의하고 있다. 방위비 분담금 압박, 관세 협상에서의 안보 이슈 연계, 그리고 지금의 파병 압박까지 — 이 모든 것은 미국이 한국을 '무조건적으로 지켜야 할 혈맹'이 아니라 '필요에 따라 청구서를 내미는 거래 상대'로 취급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런 미국에 올인하는 것은 위험한 전략이다. 한국이 이란전에 참여함으로써 얻는 것은 기껏해야 '트럼프 행정부의 일시적 만족'이지만, 잃는 것은 이슬람권과의 관계, 국제사회에서의 중립적 이미지, 그리고 향후 한반도 위기 시 동원할 수 있는 다자적 지지 기반이다. 계산기를 두드려 보면 이 거래는 결코 남는 장사가 아니다.


한류로 쌓은 국가 브랜드의 붕괴, '미국의 똘마니'라는 낙인이 가져올 파괴력


더 큰 문제는 그동안 우리가 힘들게 구축한, 그 어떤 것과도 대체 불가능한 자산인 소프트파워를 상실할 위험이다. 지난 20여 년간 한국이 세계에 각인시킨 이미지는 '분단국가', '군사강국'이 아니라 K-팝, K-드라마, K-영화, K-뷰티로 상징되는 '창의적이고 매력적인 문화강국'이었다. BTS와 블랙핑크가 빌보드 차트를 휩쓸고,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고, 넷플릭스 최고 흥행작에 한국 드라마가 오르내리는 지금, 한국은 군사력이나 경제력만으로는 결코 살 수 없는 '문화적 정당성'과 '글로벌 호감도'를 확보했다.


이 소프트파워는 단순한 이미지 이상의 실질적 국익이다. 한류는 화장품, 식품, 관광, 콘텐츠 산업 전반에서 막대한 경제적 파급효과를 낳고 있으며, 무엇보다 '한국'이라는 국가 브랜드에 대한 세계인의 신뢰와 호감을 구축했다. 이 신뢰는 외교 무대에서도 무형의 자산으로 작용한다. 한국이 국제사회에서 발언권을 얻고, 중견국으로서 독자적 목소리를 낼 수 있었던 배경에는 이 문화적 매력 자산이 있다.


그런데 명분 없는 이란전에 미국의 요청 한마디에 군대를 보낸 국가라는 이미지는 이 모든 것을 한순간에 무너뜨릴 위험이 있다. 특히 SNS와 온라인 여론이 국경을 초월해 실시간으로 확산되는 시대에, "한국이 미국을 도와 이슬람 국가를 공격하는 데 동참했다"는 프레임이 형성되면, 이는 전 세계 한류 팬덤 사이에서도 반발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특히 동남아시아, 남아시아, 중동 등 무슬림 인구가 많은 지역에서 한류 콘텐츠에 대한 소비자 정서가 급격히 악화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인도네시아(세계 최대 무슬림 인구 국가), 말레이시아,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등은 모두 한류 콘텐츠의 주요 소비 시장이자 한국 기업의 중요한 진출 대상국이다.


더 심각한 것은 국가 이미지 자체의 손상이다. 그동안 한국은 '자주적이고 평화지향적인 중견국'이라는 브랜드를 조심스럽게 쌓아왔다. 그러나 명분 없는 전쟁에 참여함으로써 이 이미지가 '미국의 하위 파트너', '독자적 판단 없이 강대국을 추종하는 국가'로 바뀐다면, 이는 단순한 이미지 손상을 넘어 한국의 국제적 위상 자체를 후퇴시키는 결과를 낳는다. 국가 브랜드는 한번 무너지면 복구하는 데 수십 년이 걸린다. 반면 그것을 무너뜨리는 데는 단 하나의 잘못된 정책 결정으로 충분하다.


이재명 대통령은 여러 차례 "세계 5위 군사력을 가진 대한민국이 스스로 방어하지 못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며 자주국방을 강조해 왔다. 그런데 정작 자국의 국익과 직접 관련이 없는 전쟁에 미국의 요구 한마디로 군대를 파병한다면, 이는 자주국방이라는 담론과 정면으로 모순된다. 군사력을 갖췄다는 것과 그 군사력을 독자적 판단에 따라 운용할 수 있다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세계가 인정하는 문화강국, 경제강국, 군사강국으로 성장한 한국이 정작 외교·안보 판단에 있어서는 미국의 의중을 먼저 헤아려 스스로 결정을 갖다 바치는 모습을 보인다면, 그것이야말로 한국이 쌓아온 국격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다.


명분 없는 전쟁에 청구서를 지불하지 말라


다시 정리하자면, 호르무즈 파병이 한국에 가져올 위험은 다음 네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다극화된 국제질서 속에서 미국에 올인하는 것은 더 이상 안전한 선택이 아니며, 오히려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고립을 자초할 수 있다. 유럽 동맹국들조차 미국의 대이란 해상봉쇄 작전과는 선을 긋고 있다는 사실이 이를 방증한다.


둘째, 이란과의 무력 충돌 가담은 종파를 초월한 이슬람권 전체의 반한 정서를 자극할 수 있으며, 한국이 수십 년간 쌓아온 중동에서의 경제적·외교적 신뢰관계를 훼손할 위험이 있다. 게다가 파병은 한국 국민과 기업인들을 보복 테러의 표적으로 만들 실질적 위험도 내포한다.


셋째, 명분 없는 전쟁에 가담한 전력은 훗날 한반도 유사시 국제사회의 지지를 확보하는 데 걸림돌이 될 수 있다. '침략의 피해자'로서 확보해야 할 국제적 정당성을, 스스로 '가해자 편에 선 국가'라는 이미지로 갉아먹는 셈이다.


넷째, 한류로 쌓아 올린 세계적 국가 브랜드와 소프트파워는 명분 없는 전쟁 참여 앞에서 순식간에 훼손될 수 있다. '문화강국 대한민국'이 '미국의 하수인'으로 전락하는 순간, 그동안 쌓아온 무형의 국익 자산은 회복하기 어려운 타격을 입는다.


노무현 정부가 이라크 파병을 결정할 당시, 그 결단에는 최소한 북핵 위기 관리라는 절박한 안보적 필요성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 거론되는 호르무즈 파병에는 그런 절박함이 없다. 오히려 미국의 일방적 요구와 국내 친미 기득권 세력의 관성적 공포 조장이 논의를 이끌고 있을 뿐이다. 영국도, 캐나다도, 독일도 주저하는 전쟁에 한국만 앞장서야 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지금 필요한 것은 국민 몰래 진행되는 '여론 떠보기'가 아니라, 미국이 정확히 무엇을 요구했는지, 그 요구를 수용했을 때 한국이 감당해야 할 위험이 무엇인지를 국민 앞에 낱낱이 공개하는 일이다. 그리고 그 위험을 충분히 인지한 상태에서, 국회와 시민사회가 함께 참여하는 공개적 검증 절차를 거쳐야 한다. 명분 없는 전쟁에 대한민국 청년들의 생명과 국가의 미래를 담보로 내걸 이유는 없다.


AI생성이미지 = 제미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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