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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2월 19일 오후 3시. 서울중앙지법 417호 대법정. 30년 전 전두환에게 사형이 선고된 바로 그 법정이다. 같은 자리에서 또 한 명의 전직 대통령에게 판결이 내려졌다. 내란 우두머리, 무기징역. 윤석열이다. 21세기에 벌어진 일이다.
시계를 7년 전으로 돌려 보자. 2019년 7월, 그는 검찰총장 임명장을 받았다. 정치 경력은 없었다. 정당에 몸담은 적도 없었다. 그는 스스로 정치할 생각이 없다고 했다. 그런 사람이 2년 8개월 뒤 대통령이 됐다. 취임 2년 7개월 뒤 느닷없이 계엄을 선포하고 국회에 군대를 보냈다. 그리고 수의를 입었다.
한 사람의 야망만으로 이 궤적을 설명할 수 있을까. 아니다. 그를 영웅으로 띄운 손이 있었다. 그를 후보로 들어 올린 손이 있었다. 그의 거짓을 덮어 준 침묵도 있었다. 이 글은 그 7년을 다시 걷는다. 그리고 묻는다. 언론은 그때 무엇을 했는가.
"정치할 생각 없다"던 검사
출발은 평범한 검사였다. 아니, 겉으로 보여지긴 강골 검사였다. 2013년 국가정보원 댓글 사건 수사팀장을 맡았다. 수사 외압을 폭로했다. 그해 국정감사에서 한 말이 그를 유명하게 만들었다. "저는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다." 대가는 좌천이었다.
3년 뒤 반전이 왔다. 2016년 박영수 특검의 수사팀장으로 돌아왔다. 박근혜 전 대통령을 수사했다. 문재인 정부는 그를 서울중앙지검장에 앉혔다. 2019년 7월에는 검찰총장으로 임명했다. 기수를 건너뛴 파격이었다.
이때까지 그는 정치인이 아니었다. 본인도 선을 그었다. 2020년 초 대선주자 여론조사에 이름이 오르자, 명단에서 빼 달라고 요청했다. 다만 여지는 남겼다. 그해 10월 국정감사에서 퇴임 후 국민에게 봉사할 방법을 천천히 생각해 보겠다고 답했다.
정치에 뜻이 없다는 말. 그리고 문을 닫지 않는 말. 두 말은 함께 있었다. 어느 쪽을 키울지는 그 혼자 정한 일이 아니었다. 무대를 깔아 준 쪽이 있었다.
언론이 빚어 만든 '공정과 상식'의 얼굴
2019년 가을,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수사가 시작됐다. 압수수색이 이어졌다. 기사는 그보다 빨랐다. '단독'이 하루에도 수십 건씩 쏟아졌다. 출처는 대부분 '검찰 관계자'였다. 피의사실은 법정이 아니라 지면에서 먼저 확정됐다.
그 기사들 위에 한 사람의 얼굴이 떠올랐다. 살아 있는 권력에 칼을 댄 총장. 임명권자에게도 굴하지 않는 원칙주의자. 언론은 수사의 내용보다 인물의 서사를 팔았다. 서사는 잘 팔렸다.
2020년에는 무대가 더 커졌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과의 충돌이다. 수사지휘권 발동, 직무배제, 징계 청구. 언론은 이것을 '추-윤 갈등'이라는 연속극으로 만들었다. 날마다 누가 이겼는지 점수를 매겼다. 그 사이 그의 지지율은 올랐다. 핍박받는 검사. 한국 정치에서 가장 잘 팔리는 배역이다.
2021년 3월 4일, 그는 총장직을 내려놓았다. 헌법정신과 법치가 무너지고 있다는 말을 남겼다. 사퇴 직후 그는 대선주자 지지율 선두권에 섰다. 출마 선언도 공약도 없는 상태였다.
그때 물어야 했다. 이 사람은 무엇을 해 본 사람인가. 국정을 맡길 준비가 된 사람인가. 수사권을 쥔 사람이 그 권한으로 쌓은 인기를 정치로 옮기는 일은 괜찮은가. 그런 질문은 아예 없었다. 경쟁하듯 띄우는 기사만 넘쳤다. 영웅은 검증되지 않는다. 영웅은 소비될 뿐이다.
검증 없는 후보, 계산된 영입
2021년 6월 29일 출마 선언. 7월 30일 국민의힘 입당. 11월 5일 대선 후보 확정. 입당에서 후보까지 넉 달이 채 걸리지 않았다. 국민의힘은 그를 키운 당이 아니다. 데려온 당이다. 정권교체를 위해 가장 지지율 높은 외부 인물을 영입했다. 자기 당의 인물을 길러 내는 대신 남이 키운 스타를 골랐다.
후보의 말은 자주 위태로웠다. 주 120시간 노동, 가난한 사람의 부정식품 선택, 손발 노동에 대한 비하. 언론은 이것을 '정치 신인의 실언'으로 정리했다. 실언은 해프닝이 됐다. 해프닝은 하루면 잊혔다. 말 뒤에 놓인 세계관을 묻는 기사는 적었다.
의혹도 많았다. 장모의 요양병원과 잔고증명서. 배우자의 주가조작 연루 의혹과 허위 경력. 고발 사주. 무속인과의 관계. 보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대부분 '공방' 기사였다. 한쪽이 의혹을 말하면 다른 쪽이 부인했다. 기사는 둘을 나란히 적고 끝났다. 무엇이 사실인지 끝까지 파고드는 일은 드물었다.
상징적인 장면이 있다. 2021년 12월 14일 관훈클럽 토론회. 그는 윤우진 전 용산세무서장에게 변호사를 소개한 적이 없다는 취지로 말했다. 기록은 따로 있었다. 2012년 뉴스타파 기자와의 통화에서 그는 스스로 소개해 줬다고 말했다. 2019년 총장 인사청문회에서도 같은 문제가 불거졌다. 기록은 공개돼 있었다. 확인은 어렵지 않았다.
그러나 많은 언론은 그날의 부인을 그대로 옮겨 적었다. 5년 뒤인 2026년 7월 27일, 법원은 그 발언을 허위사실 공표로 판단했다. 무속인 관련 발언도 마찬가지였다. 법원이 5년 걸려 밝힌 사실을, 언론은 선거 전에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런데 왜 하지 않았나.
0.73%p, 그리고 거짓과 위선의 2년 반
2022년 3월 9일. 그는 0.73%p 차이로 이겼다. 직선제 이후 가장 작은 격차였다. 표로는 약 24만 7천 표. 검증 기사 몇 건이 결과를 바꿀 수 있었던 차이다. 이 숫자 앞에서 언론은 자유로울 수 없다.
집권 이후 '공정과 상식'은 구호로만 남았다. 대통령실은 하루아침에 용산으로 옮겨졌다. 2022년 9월에는 해외 순방 중 "바이든 날리면" 비속어 사건이 터졌다. 대통령실은 사과 대신 보도한 언론을 문제 삼았다. MBC 기자는 순방 전용기에서 배제됐다. 그해 10월 이태원에서 159명이 숨졌다. 책임지는 사람은 없었다.
배우자를 둘러싼 의혹은 끝내 수사의 벽을 넘지 못했다. 2023년 말 명품 가방 수수 영상이 공개됐다. 2024년 2월 공영방송 대담에서 그 가방은 '파우치'로 불렸다. 같은 사람이 총장 시절 남의 가족에게는 가장 엄격했다. 자기 가족에게는 가장 너그러웠다. 이것을 위선이 아니면 무엇이라 부르나.
언론을 대하는 방식은 더 노골적이었다. 2023년 가을, 검찰은 지난 대선 때의 검증 보도를 '여론 조작'으로 몰아 언론사와 기자의 집을 압수수색했다. 공영방송 사장이 교체됐다. 방송 심의는 비판 보도에 대한 제재로 쓰였다. 자신을 키운 언론이 이제 자신을 겨누자, 그는 언론을 수사 대상으로 삼았다.
그 사이 많은 언론은 '대통령실 관계자'의 익명 발언을 받아쓰기 바빴다. 2024년 4월 총선에서 여당은 참패했다. 민심은 이미 돌아섰다. 그러나 그는 돌아서지 않았다. 그리고 8개월 뒤의 밤이 왔다.
2024년 12월 3일 밤의 광란
오후 10시 25분. 대통령이 긴급 담화를 했다. 비상계엄 선포였다. 명분은 '반국가세력 척결'이었다. 곧이어 포고령이 나왔다. 국회와 정당의 활동을 금지했다. 모든 언론과 출판은 계엄사의 통제를 받는다고 적었다.
무장한 군인이 헬기를 타고 국회에 내렸다. 유리창을 깨고 본관에 들어갔다. 시민들은 맨몸으로 국회 앞을 막았다. 의원들은 담을 넘었다. 12월 4일 오전 1시 1분, 국회는 재석 190명 전원 찬성으로 계엄 해제를 의결했다. 오전 4시 27분, 계엄은 해제됐다. 여섯 시간이었다. 그러나 그 여섯 시간이 공화국을 흔들었다.
법원의 판단은 분명했다. 내란 우두머리 사건 1심 재판부는 핵심을 '군을 국회로 보낸 것'이라고 짚었다. 국회를 봉쇄하고 그 기능을 마비시키려 한 목적이 있었다고 봤다. '자유민주주의 수호'라는 명분도 물리쳤다. 재판부는 이렇게 비유했다. "성경을 읽는다는 이유로 촛불을 훔칠 수는 없다."
계엄은 즉흥이 아니었다는 판단도 나왔다. 평양 무인기 투입 의혹으로 기소된 일반이적 사건에서, 1심 재판부는 계엄 결심 시점을 늦어도 2024년 9월로 봤다. 그 사건의 1심 형량은 징역 30년이었다.
여기서 아이러니 하나를 짚자. 그를 띄운 것은 언론이었다. 그가 계엄의 밤에 가장 먼저 통제하려 한 것도 언론이었다. 일부 언론사에 대한 단전·단수 지시 의혹은 재판에서 다뤄졌다. 언론이 길러 낸 권력이 언론의 입을 막으려 했다. 이보다 더 아픈 교훈이 있을까.
탄핵, 파면, 그리고 수의
몰락은 빨랐다. 12월 7일 첫 탄핵소추안은 여당 의원들이 표결에 불참하며 무산됐다. 일주일 뒤인 12월 14일, 두 번째 표결에서 204표로 가결됐다. 직무는 정지됐다.
그는 수사에 응하지 않았다. 2025년 1월 3일, 대통령경호처가 체포영장 집행을 막았다. 1월 15일, 현직 대통령으로는 처음 체포됐다. 1월 19일 구속영장이 발부됐다. 그날 새벽 일부 지지자들이 법원에 난입했다. 1월 26일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구속기소됐다.
3월 8일 그는 법원의 구속취소 결정으로 풀려났다. 한 달도 가지 못했다. 4월 4일, 헌법재판소는 재판관 8명 전원일치로 그를 파면했다. 6월 3일 조기 대선이 치러졌다. 7월, 그는 특검 수사 끝에 다시 구속됐다.
판결이 이어졌다. 2026년 1월 16일, 체포 방해 사건 1심은 징역 5년을 선고했다. 항소심은 형량을 징역 7년으로 높였다. 7월 9일 대법원은 이를 확정했다. 계엄 583일 만에 나온 첫 확정판결이다. 대법원은 공수처의 내란죄 수사권도 인정했다.
본류인 내란 우두머리 사건은 2월 19일 1심에서 무기징역이 선고됐다. 특검은 사형을 구형했었다. 양쪽 모두 항소했고, 상급심 판단이 남아 있다. 7월 27일에는 대선 당시 허위사실 공표 혐의로 징역 1년 6개월, 집행유예 3년이 선고됐다. 전직 대통령이 당선무효형을 받은 것은 처음이다. 그는 즉시 항소했다. 검찰총장 임명에서 무기징역 선고까지 6년 7개월. 대통령 취임에서 파면까지 3년이 채 되지 않았다.
아무도 묻지 않는 언론의 무거운 책임
이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자. 언론은 무엇을 했는가. 돌아보면 세 장면이 겹친다. 띄웠고, 검증하지 않았고, 받아썼다.
첫째, 띄웠다. 검찰총장 시절 언론과 검찰은 공생했다. 단독 기사는 검찰에서 나왔다. 검찰총장은 그 취재원의 꼭대기에 있었다. 기자는 정보를 얻었다. 검찰은 여론을 얻었다. 그 거래에서 한 사람의 이미지가 만들어졌다. 정의로운 검사. 굴하지 않는 원칙주의자. 그 이미지는 사실의 합이 아니었다. 편집의 결과였다.
둘째, 검증하지 않았다. 대선 국면의 언론은 경마 중계에 몰두했다. 오늘의 지지율, 이번 주의 판세, 누가 앞서고 누가 뒤졌는가. 후보가 국정을 맡을 준비가 됐는지는 뒷전이었다. 의혹은 '공방'으로 처리됐다. 양쪽 주장을 나란히 적는 것을 중립이라 불렀다. 그러나 사실과 거짓 사이의 중립은 중립이 아니다. 거짓의 편이다.
셋째, 받아썼다. 집권 후 대통령실 발표는 확인 없이 지면을 채웠다. 익명의 '관계자'가 정권의 확성기가 됐다. 비판 보도를 한 매체가 고발당하고 압수수색을 당할 때, 상당수 언론은 침묵했다. 동료의 일이 아니라 남의 일로 여겼다. 그 침묵이 쌓여 포고령 한 줄이 됐다. '모든 언론과 출판은 계엄사의 통제를 받는다.'
물론 모든 언론이 같지는 않았다. 끝까지 기록을 쫓은 기자들이 있었다. 녹음 파일을 공개하고, 영상을 내보내고, 소송과 수사를 감수한 매체들이 있었다. 법원이 몇 년 뒤 확인한 사실 중 상당수는 그들이 먼저 보도한 것이었다. 문제는 그 목소리가 작았다는 것이 아니다. 다른 언론이 그 목소리를 키우지 않았다는 것이다.
계엄의 밤에도 그랬다. 많은 시민은 방송보다 휴대폰 속 생중계를 보고 국회로 달려갔다. 언론이 민주주의의 경보기라면, 그 경보는 너무 늦게, 너무 작게 울렸다.
그렇다면 무엇을 해야 하나. 반성은 구체적이어야 한다. 2019년부터 2024년까지 자사의 보도를 스스로 검증하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어떤 기사가 검찰의 말을 받아썼는가. 어떤 의혹을 확인하지 않고 덮었는가. 출입처에 기대는 취재 관행도 손봐야 한다. 지지율 중계보다 자질 검증에 지면을 줘야 한다. 그리고 동료 기자가 권력의 표적이 될 때, 그것을 남의 일로 보지 않아야 한다.
권력은 언제나 언론을 이용하려 한다. 그것은 권력의 본성이다. 그러나 이용당할지 말지는 언론이 정한다. 언론은 너무 쉽게 이용당했다. 아니, 이용당하는 척 하면서 이용했다. 그 대가는 언론이 아니라 시민이 치렀다.
다음 괴물을 막는 일
처음 문장으로 돌아간다. 괴물은 혼자 자라지 않는다. 윤석열이라는 이름 하나에 모든 책임을 묻고 끝내기는 쉽다. 그는 법정에 섰다. 남은 판결도 그를 기다린다. 그러나 그를 띄운 기사, 그를 데려온 정당, 그의 거짓을 흘려보낸 지면은 법정에 서지 않는다.
그래서 더 무겁다. 법의 심판은 한 사람을 벌한다. 언론의 반성은 다음 사람을 막는다. 다음에도 누군가 '정의의 얼굴'로 등장할 것이다. 다음에도 지지율이 그를 밀어 올릴 것이다. 그때 언론은 다시 물어야 한다. 이 얼굴 뒤에 무엇이 있는가. 띄우는 것은 쉽고, 검증은 어렵다. 받아쓰기는 빠르고, 확인은 느리다. 언론이 쉬운 길을 택할 때마다 공화국과 국민들은 어려운 길을 걸었다. 이제는 언론이 어려운 길을 걸을 차례다.
그런데 최근 한동훈 딸의 입시 비리에 대한 민주당의 공세가 강화되자 "한동훈 때릴수록 몸집 커지나" “민주당, 내가 미국에 있어도 오로지 ‘한동훈 한동훈’”과 같은 기사들이 스멀스멀 떠오르고 있다. 김어준이 계엄 당시 "암살조 리스트에 한동훈 있다"고 하여 '계엄의 피해자, 계엄에 맞선 한동훈'이라는 서사를 만들어 준 것처럼, 한동훈에게 탄압 서사를 만들어 주기 위한 빌드업처럼 보인다. 윤석열 띄울 때처럼 기시감이 드는 건 나 혼자만의 느낌일까. 아니라면 조국 장관을 털었던 것처럼 한동훈 자녀의 딸 문제도 가감없이 검증해야 한다. 20자리가 넘는 아이폰 비밀번호 너머에 어떤 진실이 있는지 줄기차게 묻고 또 묻고 파헤쳐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