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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1~8월 한국을 찾은 외국인은 1,505만 명이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1.6% 늘었고, 누적 1,500만 명을 넘긴 시점은 지난해(10월 중순)보다 두 달가량 빨랐다. 8월 한 달 방문객 225만 명은 월간 기준 역대 최대다. 같은 기간 일본의 외국인 관광객은 2.7%, 태국은 3.1% 줄었으니 아시아 관광 시장 전체가 오른 것도 아니다. 한국만 유독 앞으로 치고 나갔다는 뜻이다.
더 눈여겨볼 숫자는 소비다. 외국인의 관광 분야 카드 소비액은 14조 180억 원으로 48.5% 늘어, 방문객 증가율의 두 배를 넘었다. 사람이 느는 속도보다 쓰는 돈이 더 빨리 불었다는 것은 한 사람이 머물며 쓰는 몫이 커지고 있다는 신호다.
약국 소비가 한 해 만에 92억 원에서 284억 원으로 세 배가 된 일이 그 단적인 예다. 성수동의 한 약국에서는 일본인 관광객이 올리브영보다 약 종류가 많다며 여드름 연고를 고르고, 호주 관광객이 인플루언서가 추천한 목록을 캡처해 들고 와 지워 나간다. 쇼핑 목록에 약국이 들어간 것은 K-뷰티가 화장품에서 피부 관리 전반으로, 구매에서 상담이라는 경험으로 넓어졌음을 보여 준다.
하지만 숫자는 질문을 던질 뿐 답을 주지는 않는다. 이 증가는 어디서 왔고, 얼마나 오래 가며, 누가 그 열매를 나눠 갖는가. 블룸버그가 한국 관광 열풍은 "이제 시작"이라고 한 대목에서 출발해, 그 질문을 따라가 본다.
문턱을 낮추고, 이야기를 심고, 결제를 열었다
방한객이 이만큼 늘어난 데에는 눈에 보이는 정책의 힘이 컸다. 정부는 3월 말부터 필리핀·베트남·인도네시아 등 동남아 11개국의 복수사증 발급 요건을 완화했고, 5월 말에는 인도네시아 단체관광객에게 무사증 입국을 시범 적용했다.
한국관광공사는 뉴델리에 비자 지원센터를 두고, 마닐라에서는 현지 주요 카드사 우수 고객의 재정 증빙 서류를 줄여 주었다. 여행을 가고 싶은 마음이 있어도 서류 앞에서 포기하던 사람들의 문턱을 낮춘 것이다. 인도네시아 방한객이 22.5%, 필리핀이 16.1% 늘어난 데에는 이런 행정의 수고가 깔려 있다.
현지 마케팅 방식도 달라졌다. 싱가포르 도심에서 '한국인의 일상 체험'을 내걸고 연 로드쇼에는 사흘 동안 12만 명이 몰렸다. 구독자 100만 명이 넘는 현지 인플루언서와 서포터스를 앞세운 입소문 전략도 먹혔다. 홍보 책자를 나눠 주는 대신 한국의 하루를 미리 살아 보게 한 셈이다. 고유가로 유류할증료가 오르자 항공사·온라인여행사와 손잡고 항공권 판촉을 벌여 비용 부담을 덜어 준 것도 실리적인 선택이었다. 여기에 중국발 단체관광 흐름과 한중 노선 증편, 골목 상권까지 닿은 간편결제가 뒷받침하면서 접근 비용이 한꺼번에 낮아졌다.
그러나 문턱을 낮추는 것만으로는 사람이 오지 않는다. 문 앞까지 와도 안으로 들어서려면 이유가 있어야 한다. 그 이유를 만든 것은 정책이 아니라 이야기였고, 그 이야기의 가장 큰 사례가 〈케이팝 데몬 헌터스〉다.
블룸버그는 이 작품을 두고 "5억 회 시청된 90분짜리 한국 일상 쇼케이스"라는 업계의 평가를 전한다. 영화가 공개된 뒤 석 달 동안 한국행 항공 예약이 전년 대비 25% 늘었고, 영화 속 찜질방과 때밀이 서비스 예약은 그해 봄 대비 여름에 115% 뛰었다.
평소 봄과 가을이 성수기인 한국 여행에서 여름 예약이 이렇게 오른 것은 계절의 힘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한의원 예약은 409% 늘었고 북촌 한옥마을 투어는 예약 플랫폼의 인기 상품이 됐다. 미국에서 온 한 가족은 다섯 살 딸이 주인공 루미를 좋아한다는 이유로 일정을 바꿔 찜질방과 남산타워를 찾았고, 아들에게는 사자 보이즈를 흉내 내라며 검은 한복과 갓을 사 주었다.
여기서 눈여겨볼 점은 이 영화가 새 관광지를 하나도 만들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찜질방도, 김밥도, 한약도, 북촌의 기와지붕도 영화 이전부터 그 자리에 있었다. 달라진 것은 그 평범한 장면들이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면서, 외국인에게 '나도 해 보고 싶은 하나의 세계'로 보이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크리에이트립의 임혜민 대표는 과거 K-팝 관광이 공연장과 기획사, 팬덤의 성지 순례에 머물렀다면 이번에는 영미권 관객이 가세하면서 한국 문화 전반으로 체험이 넓어졌다고 말한다.
이 변화는 소비 통계에도 흔적을 남긴다. 편의점 GS25의 외국인 매출에서 북미권 비중이 약 30%로 올라섰고 강원도에서는 북미권 매출이 337.8% 늘어 중화권을 제쳤다. 해변에서 캔맥주와 이온음료를 사 들고 서핑 후의 오후를 보내는 서양 관광객의 모습은 몇 해 전만 해도 낯선 풍경이었다.
서울이라는 거대한 무대와 그늘
그렇다면 이 열풍은 어디에서 가장 크게 소비되고 있을까. 지난해 외국인의 서울 방문율은 76.8%였고 외국인 카드 소비의 70.8%가 서울에서 이뤄졌다. 부산 15.7%, 제주 9.7%, 강원 4.0%에 이어 경북은 2.3%, 대구는 1.2%에 그쳤다. 서울의 64분의 1이라는 방문율은 한국 관광 지도가 얼마나 한쪽으로 기울어 있는지를 보여 준다.
서울이 사랑받는 이유는 분명하다. 경복궁과 창덕궁, 비원, 덕수궁이 고층 빌딩과 맞붙어 있는 풍경, 청계천을 따라 걷다 닿는 광장시장의 불빛과 을지로 골목 노포의 연기 같은 것들이다. 600년 도읍의 시간이 지층처럼 한 도시에 겹쳐 있고, 그것이 하루의 걸음 안에서 연결된다는 점은 도쿄도 파리도 쉽게 흉내 낼 수 없는 서울만의 문법이다. 외국인에게 서울은 새것과 낡은 것이 싸우지 않고 조화롭게 어울리는 도시다. 그리고 이 조화는 설계된 것이 아니라 삶과 세월의 더께가 쌓여 만들어졌기에 자연스럽고 설득력이 있다.
그런데 바로 이 점이 서울의 위험이기도 하다. 영국 매체 타임아웃이 서울 종로3가를 "세계에서 가장 쿨한 동네 1위"로 꼽았을 때, 정작 그 동네에 20년을 산 라파엘 라시드(raphael rashid) 외신 기자는 가디언에 '참담하다'고 썼다. 그가 사랑했던 종로3가는 쪽방 주민과 노인과 성소수자가 서로 간섭하지 않고 공존하던 허름한 피난처였는데, 이제는 줄을 서서 사진을 찍는 장소가 되었고 임대료가 오르면서 오래된 밥집과 국밥집이 빵집과 카페에 자리를 내줬다는 것이다. 그의 글에서 가장 아픈 대목은 방문객의 잘못이 아니라고 말하는 부분이다. 사람들은 '볼 만하다'는 말을 듣고 왔고, 소개받은 그대로의 경험을 사고 있을 뿐이다. 문제는 관광이 동네의 매력을 소비하는 속도가 그 매력을 재생산하는 속도보다 빠를 때 생긴다.
이것은 서울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쏠림이 심한 곳일수록 주민은 밀려나고, 밀려난 자리에 들어선 가게는 관광객 취향에 맞춰 닮아 간다. 그렇게 되면 '한국적인 것'이 사라진 한국 관광지가 남는다. 임오경 의원이 지적했듯 방문객 수에서 멈추지 말고 몇 명을 지역으로 보냈고 얼마나 머물게 했으며 얼마를 그 지역에서 쓰게 했는지를 핵심 성과 지표로 삼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서울의 부담을 덜고 서울의 매력을 지키는 일은 결국 서울 밖에서 이뤄져야 한다.
지방으로 가는 길은 열렸지만, 이야기는 아직 짧다
지방으로 향하는 길은 조금씩 열리고 있다. 올해 1~8월 지방 공항과 항만으로 들어온 외국인의 비중은 27.8%로 연중 최고였고, 지방공항 입국자는 38.2% 늘었다. 2023년 139만 명이던 지방공항 입국자가 지난해 317만 명으로 2.3배가 됐으니 흐름은 분명하다. 부산을 찾은 외국인은 1~5월에만 193만 명으로 40% 넘게 늘었고, SNS에서는 부산 여행의 후유증을 '부산병'이라 부른다.
중국의 한 여행 플랫폼에서는 만족도 1위가 부산이었다. 부산이 도쿄와 싱가포르를 앞섰다. 탁 트인 바다와 해변열차, 상대적으로 낮은 물가, 접근성이 이유로 꼽힌다. 코레일 통계상 외국인 철도 이용객이 올해 1분기 46.5% 늘어난 것도 서울에서 지방으로 몸을 옮기는 사람이 늘었다는 증거다. 10월 1일 부산에서 시범 운영을 시작한 K-투어 패스는 그 이동의 마찰을 줄이는 시도다. 광역교통과 관광지 할인을 묶어 1만 5천 원에 판다는 구상은 이동이 곧 비용이라는 장벽을 무너뜨린다.
이동의 보상은 숫자로도 확인된다. 한국관광공사 조사에서 K-팝을 경험한 외국인 가운데 수도권만 돈 사람의 1인당 지출은 약 924달러였지만, 지방까지 함께 돈 사람은 약 1,554달러로 68%가량 많았다. 만족도도 '매우 만족' 응답이 63.2%에서 67.9%로 높았다. 지방에 가면 더 쓰고 더 만족한다는 사실은 관광정책이 이미 많이 알려진 서울 보다 지방으로 중심 이동해야 함을 말해 준다.
경주는 이 가능성이 가장 잘 드러난 곳이다. 지난해 APEC 정상회의 이후 경주를 찾는 외국인이 눈에 띄게 늘었다. 불국사에는 스페인어, 이탈리아어, 중국어가 뒤섞여 들리고, 황리단길의 가게들은 영어와 중국어 메뉴판을 걸어 두었다. 한옥 양식을 따르는 건물 규제 덕에 편의점과 주민센터마저 기와를 얹은 풍경, 1,500년 된 고분이 도심 한가운데서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는 사실, 밤이면 월정교와 월지, 첨성대 미디어 파사드가 하나의 야간 코스로 이어진다는 점이 외국인의 발길을 붙잡는다.
어떤 외국인은 대릉원의 고분을 '텔레토비 동산'에 빗댔고, 실제로 봄에는 그 이름을 붙인 행사가 열렸다. 천 년 수도라는 자산, 대도시와의 접근성이라는 조건은 일본 교토와 놀랄 만큼 닮았다. 또 불국사와 석굴암의 이야기와 그 자체의 신비로움이 더해지면 경주 체험의 폭은 한층 두터워 진다. 경주시가 세운 외국인 200만 명, 평균 3일 체류라는 목표가 허황하게 들리지 않는다.
그러나 경주에서 확인되는 것은 가능성만이 아니라 빈틈이다. 불국사에는 영어 안내문이 부족해 가이드 없이는 이해하기 어렵고, 첨성대는 낮에 보면 작아서 실망하지만 밤의 조명 아래서는 전혀 다른 장소가 된다. 한국인에게도 어려운 설명문이 외국인에게 번역되었다고 해서 이해될 리 없다. 지역 관광의 이야기는 '무엇이 있는가'를 알리는 데서 '왜 이곳이어야 하는가'를 들려주는 데로 옮겨 가야 한다. 경주가 교토를 닮았다는 말은 반쪽짜리 칭찬이다. 교토가 교토인 것은 유적이 많아서가 아니라 유적 사이를 걷는 하룻밤과 사흘의 이야기를 설계해 왔기 때문이다.
대구와 경북의 1~2%대 방문율은 이 빈틈이 얼마나 넓은지를 말해 준다. 대구공항으로 들어온 외국인이 도심만 스치고 경주나 안동, 포항으로 이어지지 못한다면 지방공항 입국 증가는 통계에서만 의미가 있다. 공항에서 관광지로 이어지는 교통과 숙박, 그리고 하룻밤을 더 머물 이유를 한 묶음으로 설계하는 것이 지방 관광의 실제 과제다.
산과 절이 말해 주는 체험
관광 형태의 변화에서 가장 흥미로운 장면은 배낭을 멘 외국인이 북한산 산길을 오르는 모습이다. 등산 장비를 빌려주는 서울의 한 관광센터는 이용객이 전년보다 50% 가까이 늘었고, 이용객 열 명 중 여덟 명이 외국인이다. 틱톡과 유튜브에서 본 K-등산을 따라온 이들이다. 한복을 입고 조선시대 상황극에 참여하는 사람, 템플스테이로 새벽 예불에 들어가는 사람도 늘었다. 경주 골굴사에서는 매일 서른 명 안팎의 외국인이 새벽부터 선무도를 배우고 108배를 한다. 인천공항에서 반나절이 더 걸리는 곳까지 온 이유를 묻자 그들은 "더 진짜 한국을 보려면 서울 밖으로 나가야 한다"고 답했다.
여기에는 단체 패키지에서 체류형 체험으로 옮겨 가는 관광의 큰 흐름이 겹쳐 있다. 올해 1분기 외국인 카드 소비가 23% 늘고 백화점의 외국인 매출 비중이 30%를 넘은 것도 그 변화와 무관하지 않다. 사람들은 이제 사진을 찍고 돌아가는 대신 몸을 써서 기억을 만들고 싶어 한다. 그렇다면 산과 절은 한국이 가진 가장 경쟁력 있는 체험 자산이다. 도심에서 지하철로 닿는 북한산은 세계 어느 수도에도 흔치 않은 조건이다.
다만 같은 산, 같은 절을 팔아서는 차별화가 되지 않는다. 북한산의 성격과 설악산의 성격은 달라야 하고, 경주 골굴사의 새벽과 해인사의 새벽도 달라야 한다. 설악산이라면 동해안으로 이어지는 하루를 만들 수 있다. 북미권 관광객이 해수욕장이 몰린 고성, 속초, 양양, 강릉에서 소비를 크게 늘리고 있다는 데이터는 이미 힌트를 준다.
산에서 내려와 바다로, 바다에서 시장으로 이어지는 선을 그리면 한 곳을 지나치는 관광이 아니라 한 권역에 머무는 관광이 된다. 사찰 체험도 마찬가지다. 해를 거듭해 쌓인 수행의 시간을 상품으로만 포장하면 곧 비슷한 프로그램이 되겠지만, 그 절이 어떤 시대에 어떤 이야기를 품어 왔는지를 체험 안에 녹이면 복제할 수 없는 경험이 된다.
지역 특색은 '무엇을 하게 하느냐'보다 '어떤 이야기 속에 서게 하느냐'로 결정된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가 보여 준 것도 그 원리다. 영화가 팬들을 한두 곳에 몰아넣지 않고 찜질방, 한복, 김밥, 한약, 전통 의학으로 흩어 놓았다는 것은 지속 가능한 관광을 설계하는 방법에 대한 귀중한 힌트다. 하나의 명소에 몰리는 이야기는 그 장소를 소모하지만, 여러 체험으로 갈라지는 이야기는 장소를 나눠 쓰게 한다. 지역 관광의 이야기도 하나의 대표 상품이 아니라 여러 갈래의 입구를 가져야 한다.
이야기가 있고 이야기를 설계하는 나라
블룸버그가 "한국 관광 붐은 이제 시작에 불과"라고 한 근거는 낙관이 아니라 시차다. 장거리 여행은 계획에 시간이 걸리고 통계는 분기와 반기 단위로 나오기 때문에, 영화가 불러온 파장은 이제야 구체적인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이 말에는 기대와 함께 경고가 담겨 있다. 파도는 아직 오고 있지만, 파도를 맞이할 해변이 준비되어 있지 않으면 파도는 모래만 쓸어 간다.
그렇다면 한국 관광은 무엇을 해야 할까. 먼저 문턱 낮추기라는 하드웨어에서 이야기라는 소프트웨어로 무게중심을 옮겨야 한다. 비자 완화와 항공권 판촉은 필요조건이지만 충분조건이 아니다. 일본과 태국이 줄어드는 동안 한국이 늘어난 이유는 값이 싸서가 아니라 한국에서 겪을 수 있는 일들이 이야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K-컬처의 자산은 그 이야기들이 주로 평범한 일상에서 나온다는 점이다. 찜질방의 수건 양머리, 시장의 떡볶이 한 접시, 산 아래 막걸리 한 잔이 외국인에게는 영화의 장면이 된다. 이 일상을 특별한 경험으로 바꾸는 번역자가 되는 것이 관광 정책의 일이다.
다음으로 서울의 자산을 지키기 위한 분산이다. 궁궐과 청계천, 광장시장과 노포 골목은 서울이 가진 시간의 지층이고, 그것이 외국인을 끌어당기는 힘이다. 이 지층이 관광 소비로 닳지 않도록 동선과 시간대를 나누고, 주민이 남을 수 있는 임대료 안정 장치를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그 수요의 일부를 부산과 경주, 동해안과 내륙의 산사로 보내야 한다. K-투어 패스처럼 이동을 쉽게 하고, 지방공항에서 인근 관광지로 곧장 이어지는 체류형 상품을 만들며, 경주의 밤처럼 하룻밤을 더 머물 이유를 지역마다 설계해야 한다. 지방에 가면 1인당 지출이 68% 늘어난다는 사실은 이 분산이 선심이 아니라 투자임을 말해 준다.
외국인 1,500만 명이 찾아온 이유는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고, 경험할 수 없는 한국이 가진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 필요한 것은 지역별로 상상력으로 만드는 스토리텔링과 체험 서사의 지속적인 개발이다. 문화유산과 유적지와 K드라마와 영화까지 엮어 새로운 이야기와 체험을 만들어 가는 것이 과제다. 다음은 가 지역별로 예시를 들어보았다. (21~22번은 남북이 화해하고 경제협력을 시작될 때를 대비하여 준비)
1. 서울특별시: 「달빛 아래 열린 왕의 비밀 정원」
보름달이 뜬 밤, 참가자는 왕의 부름을 받고 궁궐에 입궐한 '밤의 사관'이 된다. 사관의 임무는 왕이 낮에는 말하지 못한 고민을 후원의 숲길에서 찾아 기록하는 것이다. 청사초롱 불빛만 의지해 부용지를 지나면 연못에 비친 달 속에서 600년 전 왕의 사색이 흘러나오는 듯하다. 이러한 문화유산을 기반으로, 궁궐 야간 탐방에 '사관의 밤 기록' 미션을 더하고 국악과 왕실 다과로 마무리하는 체험을 개발할 수 있다. 마지막에 마천루의 불빛을 바라보며 "600년 뒤의 서울"에 보내는 편지를 쓰게 하면 과거와 현재가 하나로 이어진다.
- 영화 〈기생충〉(2019)
아카데미 4관왕으로 전 세계에 알려진 이 영화는 '위와 아래'라는 공간의 대비를 보여준다. 서울에는 이 대비가 600년 전부터 겹쳐 있다. 궁궐의 높은 담과 한양도성의 오르막, 마천루와 골목이 한 도시 안에 공존한다. 이러한 설정을 바탕으로 '계단 위의 서울' 코스를 개발할 수 있다. 한양도성 성곽길을 오르며 서울의 위아래를 내려다보고, 밤에는 창덕궁 달빛기행으로 시간의 층위를 체험한다. 마지막에 짜파구리 한 그릇으로 영화의 기억을 이어 간다.
2. 부산광역시: 「바다를 바라보던 임시 수도의 편지」
전쟁 중 부산으로 내려온 한 소년이 산비탈 판잣집에서 고향에 부치지 못한 편지를 쓴다는 설정으로 시작한다. 참가자는 그 편지를 대신 전하는 '배달부'가 되어 산복도로의 골목과 감천마을의 계단을 따라 소년의 흔적을 좇는다. 골목마다 놓인 이야기 조각을 모으면 편지의 마지막 문장이 완성된다. 이러한 문화유산을 기반으로, 피란 역사 트레킹을 '편지 배달 미션'으로 설계하고 범어사 참선과 선무도로 마음을 가라앉히는 체험을 개발할 수 있다. 소년이 끝내 하고 싶었던 말은 "다시 만날 때까지 살아남겠다"는 다짐이었다는 결말로 감동을 남긴다.
- 영화 〈국제시장〉(2014)
흥남철수와 피란, 국제시장에서 가족을 일군 이야기는 외국인에게도 '전쟁 이후 한국인의 삶'을 이해시키는 좋은 입구다. 이를 바탕으로 '덕수의 길' 트레킹을 개발할 수 있다. 참가자는 국제시장에서 출발해 산복도로와 감천마을의 피란 흔적을 따라 걷는다. 가족을 위해 버텨 낸 세대의 이야기를 들은 뒤, 범어사에서 참선으로 마음을 가라앉히며 마무리한다.
3. 대구광역시: 「약초 향이 기억을 깨우는 골목」
약령시 골목에서 300여 년 동안 약재를 달여 온 '전설의 약방 주인'이 참가자를 마지막 제자로 맞는다는 설정이다. 제자의 첫 시험은 방문객의 체질을 읽고 몸과 마음에 맞는 약재를 처방하는 일이다. 서랍마다 다른 향이 나는 약장을 열어 약재를 고르다 보면 골목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약상자처럼 느껴진다. 이러한 문화유산을 기반으로, 체질 진단과 한방 족욕, 향낭 제작을 '비밀 처방전 완성' 서사로 묶는 프로그램을 개발할 수 있다. 완성한 향낭을 들고 팔공산 갓바위에서 소원을 비는 장면까지 이어 가면 치유와 기원의 여정이 완결된다.
- 드라마 〈허준〉(1999)
한의학의 정신을 다룬 이 드라마는 아시아 여러 나라에서 방영되어 한방에 대한 호기심을 키웠다. 약령시는 그 이야기를 오늘의 체험으로 바꿀 수 있는 현장이다. '허준의 제자 입문' 프로그램에서는 체질 진단을 받고, 약재를 직접 고르고 향낭을 만든다. 드라마가 강조한 "병을 고치기 전에 사람을 먼저 본다"는 태도를 체험 철학으로 삼고, 갓바위에서 건강을 비는 장면으로 마무리한다.
4. 인천광역시: 「제물포 항구에 도착한 세 개의 트렁크」
1883년 개항 직후, 서양 상인, 일본 기술자, 중국 요리사가 각자의 트렁크를 들고 같은 부두에 내렸다는 이야기로 시작한다. 참가자는 세 사람 중 한 명의 입장이 되어 낯선 도시에서 하루를 살아 본다. 붉은 벽돌 건물 사이에서 근대 의상을 입고 걷다 보면 골목마다 다른 나라의 시간이 겹쳐 있음을 느낀다. 이러한 문화유산을 기반으로, 개항장 스트리트 스냅과 짜장면 미식 투어를 '세 개의 트렁크' 서사로 연결하는 체험을 개발할 수 있다. 세 사람의 요리가 한 그릇에 섞여 새로운 맛이 되었다는 결말은 인천이 문화 융합의 출발점임을 보여준다.
- 넷플릭스 시리즈 〈경성크리처〉(2023)
1940년대 경성을 배경으로 한 이 시리즈는 근대 도시의 분위기를 세계 시청자에게 보여 주었다. 개항장의 근대 건축물은 그 시대의 공기를 가장 가까이서 느끼게 한다. 이러한 배경을 활용해 '1940년대 인천 탐정단' 체험을 개발할 수 있다. 근대 의상을 입고 개항장 골목에서 단서를 모으는 미션형 투어이며, 차이나타운에서 짜장면의 유래를 듣는 것으로 결말을 맺는다.
5. 광주광역시: 「돌기둥 병풍 뒤에서 흙을 빚는 도공」
무등산 정상의 주상절리가 "하늘이 세워 둔 병풍"이라는 전설에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병풍 뒤 산자락에는 자유로운 마음으로 그릇을 빚던 도공이 살았고, 그는 손님에게 가장 좋은 음식을 가장 자유로운 그릇에 담아 내놓았다고 한다. 참가자는 그 도공의 제자가 되어 물레를 돌리고 문양을 새긴다. 이러한 문화유산을 기반으로, 분청사기 도예와 남도 한정식 쿠킹 클래스를 '도공의 잔칫상' 서사로 잇는 프로그램을 개발할 수 있다. 직접 빚은 그릇에 직접 만든 음식을 올려 마지막 만찬을 차리면 예향의 정신을 오감으로 느낀다.
- 영화 〈택시운전사〉(2017)
외국인 기자와 광주 시민의 연대를 그린 영화로, 광주를 '민주주의와 인간애의 도시'로 이해하게 한다. 이를 바탕으로 '택시를 타고 만나는 광주' 해설 투어를 개발할 수 있다. 민주화운동의 현장을 숙연한 태도로 돌아본 뒤, 예향의 얼굴인 무등산 분청사기와 남도 한정식으로 이어 가는 구성이다. 아픈 역사를 가볍게 소비하지 않고, 시민들이 지켜 낸 공동체의 온기를 중심에 둔다.
6. 대전광역시: 「마루 위의 느린 시간, 선비의 하루」
동춘당 마루에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느림의 결계'가 쳐져 있다는 상상으로 시작한다. 이곳에 들어서면 휴대전화를 내려놓고 선비처럼 한나절을 보내야 한다. 차 한 잔이 우러나는 동안 바람과 새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붓끝에 먹을 묻혀 마음을 정리한다. 이러한 문화유산을 기반으로, 한옥 다도와 한글 캘리그라피를 '결계 속 하루' 서사로 설계할 수 있다. 자기 이름을 한글 작품으로 완성해 결계를 푸는 열쇠로 삼으면, 도시로 돌아가서도 느림의 기억이 남는다.
- 영화 〈말모이〉(2019)
우리말 사전을 만들려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로, 한글에 담긴 마음을 보여 준다. 동춘당 마루는 이 서사를 조용히 되새기기에 알맞다. '말모이 한 글자 모으기' 프로그램에서는 참가자가 자기 나라의 소중한 단어 하나를 한글로 풀어 붓으로 쓴다. 작품을 다 쓴 뒤에는 차를 마시며 그 단어에 얽힌 이야기를 나눈다.
7. 울산광역시: 「바위에 새겨진 고래의 전언」
수천 년 전 한 사냥꾼이 바위에 고래를 새기며 "바다와 사람이 함께 살던 시간을 잊지 말라"는 전언을 남겼다는 상상이다. 참가자는 그 전언을 해독하는 '탐험가'가 되어 암각화의 고래, 호랑이, 사슴을 단서 삼아 선사인의 하루를 복원한다. 박물관에서 얻은 단서를 가지고 옹기마을로 이동하면 마지막 단서는 흙 속에 있다. 이러한 문화유산을 기반으로, 암각화 탐방과 옹기 만들기를 '전언 해독' 서사로 연결하는 체험을 개발할 수 있다. 직접 빚은 옹기에 김치나 장을 담는 순간 그릇과 삶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이른 아침 간절곶의 일출을 보며 전언의 마지막 문장을 완성하는 코스도 가능하다.
- 영화 〈미나리〉(2020)
이민 가정과 할머니의 음식, 뿌리내리는 삶을 그린 영화로, 윤여정 배우의 아카데미 수상으로 널리 알려졌다. 작품 속 장, 김치, 채소의 이미지는 옹기의 발효 문화와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이러한 연결을 바탕으로 '뿌리내리는 그릇' 프로그램을 개발할 수 있다. 반구대 암각화에서 사람과 바다의 오랜 삶을 본 뒤, 옹기를 빚어 장이나 김치를 담는다. 가족과 음식이 삶을 지탱한다는 주제로 이어진다.
8. 세종특별자치시: 「밤마다 글자를 고치던 임금의 서재」
세종대왕이 모두가 잠든 밤 등불 아래서 "백성이 하루 만에 익힐 글자"를 고민하는 장면을 상상으로 재현한다. 참가자는 임금을 돕는 '집현전 말단 학사'가 되어 글자의 원리를 하나씩 퍼즐처럼 풀어 간다. 목판에 글자를 새기고 한지에 찍어내는 순간, 서재의 등불이 아침 햇살로 바뀐다. 이러한 문화유산을 기반으로, 훈민정음 목판 인쇄와 영평사 구절초 다도를 '글자가 세상에 나온 아침' 서사로 개발할 수 있다. 하얗게 핀 구절초 언덕에서 차를 마시며 "모든 사람을 위한 글자"의 의미를 되새기며 마무리한다.
- 드라마 〈뿌리깊은 나무〉(2011)
훈민정음 창제를 둘러싼 긴장과 미스터리를 다룬 사극이다. 글자가 곧 권력이던 시대에 백성을 위한 글을 만든다는 서사가 핵심이다. 이를 바탕으로 '글자를 지켜라' 미션형 프로그램을 개발할 수 있다. 참가자는 암호 같은 훈민정음 원리를 풀어 목판 인쇄로 완성하고, 영평사 구절초 언덕에서 차를 마시며 "누구나 읽을 수 있는 글"의 의미를 되새긴다.
9. 경기도: 「정조의 비밀 병사, 성곽에 새벽이 오면」
정조가 효심으로 쌓은 성곽을 지키기 위해 비밀리에 뽑은 '신입 병사'가 되는 설정이다. 참가자는 새벽 훈련장에서 무예24기를 눈앞에서 보고, 연무대에서 직접 활시위를 당긴다. 성곽을 따라 화성어차를 타고 돌며 정약용이 설계한 거중기와 성벽의 지혜를 임무 단서로 모은다. 이러한 문화유산을 기반으로, 무예 관람, 국궁 체험, 성곽 투어를 '정조의 병사 임관식' 서사로 묶는 프로그램을 개발할 수 있다. 마지막 과녁을 맞히면 임관 증서를 받는 연출로 하루가 완성된다.
- 드라마 〈이산〉(2007)
정조의 삶과 개혁을 다룬 사극으로, 수원화성은 정조가 꿈꾼 도시의 결정체다. 이를 바탕으로 '정조의 시위대 훈련' 프로그램을 개발할 수 있다. 무예24기 시연을 관람하고 국궁을 쏜 뒤, 화성어차로 성곽을 돌며 정약용과 거중기 이야기를 듣는다. 마지막에는 임금의 효심이 만든 성곽이라는 서사로 하루를 정리한다.
10. 강원특별자치도: 「숲이 말을 거는 오대산의 아침」
천년 전나무 숲길을 걷다 보면 나무들이 서로 안부를 묻는 소리가 들린다는 상상이다. 참가자는 '숲의 전령'이 되어 걸음마다 한 가지씩 소리, 향, 감촉을 모으며 마음을 비운다. 숲의 끝에서는 단오 마을의 탈 장인이 기다리고 있다. 이러한 문화유산을 기반으로, 월정사 걷기명상과 강릉 단오탈 채색을 '숲에서 마을로 내려오는 하루' 서사로 개발할 수 있다. 숲에서 모은 감각을 색으로 옮겨 탈에 담으면, 탈은 그날 자신의 마음을 비춘 거울이 된다. 율곡과 신사임당의 이야기를 곁들이면 학문과 예술의 고장이라는 정체성도 살아난다.
- 드라마 〈도깨비〉(2016)
강릉 주문진 방파제는 이 드라마의 상징적인 장면 촬영지로 알려져 있어 해외 팬이 많이 찾는다. 이를 바탕으로 '도깨비의 바다에서 숲으로' 코스를 개발할 수 있다. 주문진 바닷가에서 시작해 오죽헌에서 신사임당과 율곡의 이야기를 듣고, 월정사 전나무숲 걷기명상으로 마무리한다. 영원한 시간을 사는 존재의 쓸쓸함과 평온을 숲길의 고요함과 연결하면 몰입감이 커진다.
11. 충청북도: 「금속 글자 한 알이 세상을 바꾸던 날」
1377년 어느 날, 한 승려가 작은 금속 활자 하나를 손에 쥐고 "이 글자가 먼 훗날 세상을 바꿀지도 모른다"고 중얼거렸다는 상상이다. 참가자는 그 곁에서 활자를 고르고 먹을 칠하는 '인쇄 견습생'이 된다. 한지에 첫 장이 찍혀 나오는 순간이 이야기의 절정이다. 이러한 문화유산을 기반으로, 금속활자 인출 체험과 속리산 템플스테이를 '첫 장이 찍히던 날' 서사로 개발할 수 있다. 밤에는 법주사의 고요함 속에서 사찰 음식을 먹으며 지식이 널리 퍼지는 의미를 생각하는 시간을 갖는다.
- 영화 〈나랏말싸미〉(2019)
훈민정음 창제 과정에 속리산의 신미대사가 관여했다는 설을 소재로 한 영화다. 이는 역사학계에서 논란이 있는 해석이므로 '하나의 상상'으로 소개해야 한다. 이를 바탕으로 '글자의 탄생과 인쇄의 지혜' 프로그램을 개발할 수 있다. 법주사와 속리산에서 글자를 둘러싼 이야기를 듣고, 청주에서 직지의 금속활자 인출을 체험한다. 글자가 만들어지고 퍼지는 과정을 한 흐름으로 보여 주는 구성이다.
12. 충청남도: 「백마강에 가라앉은 향로의 노래」
백제가 저물던 날, 한 장인이 용과 봉황이 새겨진 향로를 땅에 묻으며 "아름다움은 사라지지 않는다"고 속삭였다는 상상이다. 참가자는 황포돛배에 올라 백마강을 건너며 그 장인의 마음을 따라간다. 낙화암의 전설 속에서 백제의 마지막 이야기를 듣고 나면, 향 한 줄기가 그 시절의 숨결처럼 피어오른다. 이러한 문화유산을 기반으로, 황포돛배 유람과 향도 체험을 '묻힌 향로의 노래' 서사로 개발할 수 있다. 검소하지만 누추하지 않았던 백제의 미학을 향기로 기억하게 하는 프로그램이 된다.
- 드라마 〈서동요〉(2005)
백제 무왕의 설화를 바탕으로 한 사극으로, 백제의 사랑과 정치 이야기를 담았다. 아시아권 한류 초기 인기 사극 중 하나다. 이를 바탕으로 '서동의 노래를 따라 부여로' 코스를 개발할 수 있다. 황포돛배로 백마강을 건너 낙화암 이야기를 듣고, 금동대향로 양식의 향로에 향을 피운다. 백제의 우아함을 이야기, 소리, 향으로 기억하게 한다.
13. 전북특별자치도: 「어진을 모신 마을의 잔칫날」
조선 태조의 어진을 모신 마을에서 해마다 열린다는 가상의 '왕의 잔칫날'을 배경으로 한다. 참가자는 한복을 입고 손님으로 초대되어 마을을 돌며 잔치 준비를 돕는다. 비빔밥에 올릴 고명을 고르고 술을 빚는 일은 모두 왕에게 올릴 상차림의 일부다. 이러한 문화유산을 기반으로, 한복 스냅과 비빔밥·전통주 쿠킹 클래스를 '왕에게 올리는 잔칫상' 서사로 개발할 수 있다. 완성된 상을 직접 받아 먹는 순간 "먹는 문화유산"이 체험의 결말이 된다.
- 영화 〈식객〉(2007)
한국 전통 음식과 장인 정신을 다룬 작품으로, '한식이 곧 이야기'라는 관점을 보여 준다. 이를 바탕으로 '식객의 하루' 쿠킹 프로그램을 개발할 수 있다. 한복을 입고 전주 한옥마을과 경기전을 돌아본 뒤, 비빔밥 재료를 직접 고르고 전통주를 빚는다. 완성한 상차림을 사진으로 남기면 '먹는 문화유산'이 선명해진다.
14. 전라남도: 「성곽 마을의 하룻밤 주민이 되다」
낙안읍성에 도착한 여행자가 하룻밤만 '읍성 주민'으로 살아 보는 설정이다. 해 질 녘 아궁이에 불을 지피고, 밤에는 마을 소리꾼의 소리를 들으며 별을 올려다본다. 새벽 안개가 걷히면 이웃 주민들이 건네는 인사로 하루가 시작된다. 이러한 문화유산을 기반으로, 초가 민박과 판소리 배우기를 '읍성의 하룻밤 이웃' 서사로 개발할 수 있다. 추임새로 소리꾼과 호흡을 맞추는 순간 관객이 곧 공연자가 된다. 여수 진남관에서 이순신의 바다 이야기를 더하면 호국 서사까지 확장된다.
- 영화 〈서편제〉(1993)
판소리에 인생을 건 소리꾼 가족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로, 한국 영화사에서 판소리를 대중에게 알린 상징적 작품이다. 이를 바탕으로 '소리길 위의 하룻밤' 프로그램을 개발할 수 있다. 낙안읍성 초가에서 묵으며 소리꾼에게 판소리를 배우고, 추임새로 공연에 참여한다. 소리가 한(恨)을 풀어내는 힘이라는 영화의 정서를 밤하늘 아래서 체험하게 한다.
15. 경상북도: 「낮에는 탈을 쓰고, 밤에는 금관을 만나다」
하회마을에서 탈을 쓰면 신분이 사라지고 누구나 자유롭게 웃을 수 있다는 상상으로 시작한다. 낮의 참가자는 탈을 쓴 광대가 되어 양반을 풍자하며 마을 마당을 뛰논다. 해가 지면 탈을 벗고 신라의 밤으로 이동해, 대릉원 고분 사이를 청사초롱과 함께 걷는다. 이러한 문화유산을 기반으로, 하회탈춤 체험과 경주 야경 투어를 '낮의 탈, 밤의 금관' 서사로 이어 개발할 수 있다. 별을 관측하던 첨성대에서 천 년 전 사람들도 같은 하늘을 보았다는 이야기로 마무리하면 시간을 건너는 감동이 생긴다.
-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2019)
포항 구룡포 일본인 가옥거리가 촬영지로 알려져 있어 드라마 팬이 찾는 곳이다. 이를 바탕으로 '동백이의 바닷가 마을에서 신라의 밤까지' 코스를 개발할 수 있다. 구룡포에서 따뜻한 이웃의 정서를 느낀 뒤, 안동 하회탈춤으로 웃음을 나누고 경주 대릉원 야경으로 마무리한다. 사람 사는 온기라는 공통 주제로 세 장소가 이어진다.
16. 경상남도: 「전쟁을 이겨 낸 8만 장의 기도」
외적의 침입 속에서도 사람들이 한 자 한 자 정성껏 경판에 새겨 간 8만 장의 기도를 모티브로 한다. 참가자는 그 마지막 한 장을 찍어 내 완성하는 '마지막 인경사'가 된다. 먹을 바르고 한지를 올려 문지르면 천년의 시간이 한 장의 종이에 담겨 나온다. 이러한 문화유산을 기반으로, 해인사 인경 체험과 통영 나전칠기 공예를 '기도를 찍고, 빛을 새기다' 서사로 개발할 수 있다. 어두운 바탕 위에서 빛에 따라 색이 변하는 자개 공예는 "어둠 속에서도 빛나는 정신"을 상징하는 기념품이 된다.
영화 〈한산: 용의 출현〉(2022)
이순신 장군의 한산대첩을 다룬 영화로, 통영 앞바다는 그 역사의 현장이다. 이를 바탕으로 '한산도의 바다를 읽다' 프로그램을 개발할 수 있다. 통영 세병관에서 삼도수군통제영의 역사를 듣고 나전칠기 공예를 체험하며, 해인사에서는 인경으로 정신문화를 접한다. 전쟁 속에서 기록과 정성을 지킨 사람들이라는 서사로 두 지역을 묶는다.
17. 제주특별자치도: 「숨비소리로 연결된 바다의 약속」
바다 깊이 들어갔다 나오며 내뱉는 숨비소리가 "오늘도 무사히 돌아왔다"는 해녀들의 약속이라는 상상이다. 참가자는 그 약속의 증인이 되어 해녀와 함께 바다에 들어가 물속 세계를 만난다. 물에서 나온 뒤에는 바람과 돌이 만든 섬의 이야기를 현무암에 새긴다. 이러한 문화유산을 기반으로, 해녀 물질 체험과 돌하르방 각인 체험을 '숨비소리와 돌의 약속' 서사로 개발할 수 있다. 직접 새긴 돌하르방은 제주의 바다가 건넨 작은 부적처럼 간직된다.
- 넷플릭스 시리즈 〈폭싹 속았수다〉(2025)
1950년대부터 현재까지 제주에서 태어나 자란 한 여성과 그 곁을 지킨 사람의 일생을 사계절의 흐름으로 그린 드라마다. 제목은 제주 방언으로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라는 뜻이고, 영어 제목 〈When Life Gives You Tangerines〉처럼 귤이 삶의 상징으로 쓰인다. 해녀 어머니의 삶, 바다와 밭, 돌담 마을의 이웃 공동체는 제주 해녀문화와 화산섬의 생활 유산이 그대로 이어지는 배경이다. 이러한 작품과 문화유산을 바탕으로 '제주 한 사람의 사계절' 프로그램을 개발할 수 있다. 봄에는 돌담길을 걸으며 제주의 바람과 돌 이야기를 듣고, 여름에는 해녀와 함께 물질을 체험하며 숨비소리에 담긴 "오늘도 무사히 돌아왔다"는 약속을 듣는다. 가을과 겨울에는 감귤 수확과 귤밭 체험을 하고, 현무암에 돌하르방 문양을 새겨 '내 삶의 한 장면'을 기념품으로 남긴다. 마지막에는 참가자가 자기 삶에서 "수고했다"고 말해 주고 싶은 사람에게 제주 방언 "폭싹 속았수다" 엽서를 쓰게 하면, 작품의 정서를 체험의 결말로 이을 수 있다.
-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2022)
제주를 배경으로 해녀와 마을 사람들의 삶을 그린 옴니버스 드라마다. 이를 바탕으로 '블루스가 흐르는 제주 바다' 프로그램을 개발할 수 있다. 해녀와 함께 물질을 체험하고 숨비소리 이야기를 들은 뒤, 현무암에 돌하르방 문양을 새긴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바다 곁에서 어우러지는 정서를 직접 느끼는 구성이다.
18. 인천 강화도: 「하늘, 바다, 전쟁이 만난 섬의 시간 여행」
단군이 하늘에 제사를 올린 제단에서 시작해 선사 시대의 고인돌, 그리고 전쟁의 포성이 울렸던 해안까지, 섬 전체가 하나의 '시간 터널'이라는 상상이다. 참가자는 시간 여행자가 되어 고인돌 앞에서 선사인의 하루를 살아 보고, 토기를 빚으며 첫 번째 시간 열쇠를 얻는다. 광성보 해안길을 걸으며 병사들의 마지막 항전을 듣는 것이 두 번째 열쇠다. 이러한 문화유산을 기반으로, 토기 만들기와 호국 역사 트레킹을 '시간 열쇠 모으기' 서사로 개발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참성단에서 두 열쇠를 합치면 한반도 역사의 한 장면이 완성된다.
-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2018)
1871년 신미양요 장면으로 시작하는 드라마로, 광성보는 그 역사의 실제 현장이다. 이를 바탕으로 '그날의 광성보' 트레킹을 개발할 수 있다. 어재연 장군과 병사들의 항전 이야기를 들으며 해안길을 걷고, 고인돌에서 토기를 빚으며 시간의 폭을 넓힌다. 드라마의 극적 서사를 실제 역사에 대한 관심으로 연결하는 것이 핵심이다.
19. 경상남도 남해: 「바다가 길을 열어 주는 어부의 비밀」
물때가 되면 바다가 스스로 멸치를 몰아 주는 '비밀 어장'이 있다는 상상이다. 참가자는 어부의 아들이 되어 나무 말뚝으로 물길을 읽고 바다의 규칙을 배운다. 해가 기울면 가파른 비탈의 다랭이논으로 올라가 마을 어머니들이 차린 밥상을 받는다. 이러한 문화유산을 기반으로, 죽방렴 관람과 다랭이마을 농가 다이닝을 '바다와 땅이 차린 밥상' 서사로 개발할 수 있다. 노량 앞바다를 바라보며 이순신의 마지막 이야기를 들려주면 감동이 한층 깊어진다.
- 영화 〈노량: 죽음의 바다〉(2023)
이순신 장군의 마지막 해전을 다룬 영화로, 관음포는 그 최후의 장소다. 이를 바탕으로 '마지막 바다, 노량' 프로그램을 개발할 수 있다. 관음포에서 노량해전의 이야기를 듣고, 죽방렴으로 바다의 지혜를 확인한 뒤, 다랭이마을에서 밥상을 나누며 마무리한다. 숙연한 역사와 따뜻한 일상이 한 코스에 담긴다.
20. 섬 여행: 「바닷속에서 깨어난 보물선의 항해일지」
700년 전 바다에 가라앉았던 무역선이 "아직 도착하지 못한 항해"를 이어 가고 있다는 상상이다. 참가자는 보물선의 새 선원이 되어 도자기를 빚으며 선적 화물을 채운다. 이어 섬에서 갯벌 체험, 어촌 일상, 별 관측으로 항해일지의 빈 페이지를 채운다. 이러한 문화유산을 기반으로, 신안선 도자기 공예와 섬 생태 캠프를 '항해일지 완성하기' 서사로 개발할 수 있다. 마지막 밤 별빛 아래에서 일지를 낭독하면 보물선은 700년 만에 목적지에 닿는다.
- 영화 〈자산어보〉(2021)
흑산도 유배지에서 물고기를 연구한 정약전의 이야기를 흑백 화면에 담은 영화다. 촬영은 전남 완도 청산도 등에서 이뤄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를 바탕으로 '섬에서 쓰는 바다의 책' 캠프를 개발할 수 있다. 참가자는 갯벌과 어촌에서 바다 생물을 관찰해 기록하고, 신안선 이야기와 도자기 공예로 바다 교류의 역사를 더한다. 마지막 밤 별빛 아래서 자신만의 '어보'를 낭독한다.
21. 인천에서 출발하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루트: 「보따리 속에 담긴 나라, 26년의 이사」
참가자는 1919년부터 1945년까지 나라를 보따리처럼 품고 옮겨 다닌 사람들의 연락원이 되어, 이동로를 따라 '도장 여권'에 스탬프를 모은다. 첫 도장은 인천여객터미널에서 시작하여 상하이 임시정부 청사와 윤봉길 의사의 의거 현장인 훙커우공원(현 루쉰공원)에서 찍는다. 이후 항저우, 전장, 창사, 광저우, 류저우, 구이양, 치장을 거쳐 충칭에 이르는 여정이다. 도시마다 달라지는 청사 터와 기념 공간에서 쫓기면서도 정부의 기능을 멈추지 않았던 사람들의 이야기와 흔적을 따라간다. 이러한 문화유산을 기반으로, 경의선–단둥–베이징 구간 열차와 중국 고속철을 잇는 이동로 기차 답사, 도시별 스탬프 미션, 충칭 한국광복군 총사령부 터 방문을 '보따리 속의 나라' 서사로 개발할 수 있다. 충칭에서 마지막 도장을 찍고 귀국 열차에 오른 뒤, 서울 경교장에서 1945년 환국의 장면을 마주하면 "나라는 보따리가 아니라 사람들의 마음이었다"는 결말로 여정이 닫힌다.
- 영화 〈암살〉(2015)
1930년대 상하이와 경성을 배경으로 임시정부와 독립운동가들의 작전을 그린 영화로, 해외 관객에게도 독립운동을 '살아 있는 이야기'로 소개하는 입구가 된다. 이를 바탕으로 '상하이에서 충칭까지, 연락원의 지도' 코스를 개발할 수 있다. 상하이 청사와 훙커우공원에서 영화 속 시대 분위기를 따라가고, 이동로의 각 도시에서 임정 요인들의 행적을 확인한다.
22. 서울역, 또는 강릉 동해선에서 출발하는 실크로드 기차여행: 「이름 칸을 이어 달리는 유라시아 열차」
서울에서 평양, 신의주, 단둥을 지나 하얼빈으로 가는 열차의 마지막 객차는 이름이 적히지 않은 빈 '이름 칸'이라는 상상으로 시작한다. 참가자는 '유라시아 열차의 기억 차장'이 되어 객차마다 한 사람의 이름이 붙은 칸을 열어 본다. 첫 번째 칸은 1909년 하얼빈역에서 의거를 일으킨 안중근 의사의 칸이다. 하얼빈역의 의거 장소와 안중근 의사 기념관에서 그 순간을 마주한다. 또는 강릉 동해서 열차가 국경을 넘어 연해주에 닿으면 블라디보스토크 신한촌과 우수리스크의 최재형 선생 유적에서 독립운동가들의 거점을 만난다. 1937년 약 17만 명의 고려인이 화물열차에 실려 중앙아시아로 강제이동된 길을 되짚는 구간은 이 여정의 중심이다. 이러한 문화유산을 기반으로, 하얼빈 의거 현장 답사, 연해주 유적 탐방, 시베리아 횡단철도와 중앙아시아 철도 탑승, 타슈켄트 고려인 가정식(당근김치, 꾹시) 체험을 '이름 칸 잇기' 서사로 개발할 수 있다. 여정은 사마르칸트의 아프라시압 박물관에서 이어진다. 고구려 사신이 그려진 7세기 벽화 앞에서 한반도와 실크로드가 천 년 전부터 이어져 있었음을 확인한다. 마지막으로 참가자가 자신이 기억하고 싶은 한 사람의 이름을 빈 칸에 적으면 열차가 완성된다. 원한다면 이스탄불까지 이어 가는 확장 코스도 구성할 수 있다.
- 영화 〈하얼빈〉(2024)
안중근 의사의 의거와 그에 이르는 여정을 다룬 영화로, 하얼빈역은 그 역사의 실제 현장이다. 이를 바탕으로 '안중근의 길 위에서' 프로그램을 개발할 수 있다. 하얼빈역에서 의거의 순간을 듣고, 연해주의 독립운동 유적을 지나, 고려인 강제이동 열차 구간과 중앙아시아의 고려인 마을까지 이어 가는 구성이다. 고려인 강제이동은 아픈 역사이므로 가볍게 소비하지 않고, 그 땅에서 삶을 일군 사람들의 존엄과 생명력을 중심에 두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