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의 인스타그램에 쏟아진 "인민배우 해라"…'암살자(들)'를 둘러싼 매카시 광풍

장기영 기자

등록 2026-10-01 01:18

가족과 함께, 세대를 넘어 '암살자(들)'를 보고 이야기하자



9월 29일, 배우 류혜영이 인스타그램에 "암살자들도 너무 재밌다"고 썼다. 댓글창에는 "북에 가서 인민배우 해라", "멸공", "보이콧"이 달렸다. 영화 얘기는 한 줄도 없었다. 그 시각 버거킹은 유해진이 출연한 광고 영상 다섯 편의 댓글창을 닫았고, 이영애와 김고은의 SNS에는 "역사 공부 좀 해라"는 말이 쏟아졌다. 


영화평론가 이동진은 7천여 개의 댓글에 리뷰 영상을 비공개로 돌렸고, 구독자 400만이 넘는 유튜버는 영상을 지웠다. 또 다른 유튜버는 "정치적으로 무지했다"며 해명 영상을 올렸다가 그것마저 회원 전용으로 돌렸다.


이런 장면들에 우리가 불편해해야 하는 이유는 영화가 옳은지 그른지와 별개다. 영화를 보고 재미있다고 말한 사람, 출연한 사람, 평점을 매긴 사람이 사과와 삭제를 강요받는 사회는, 영화가 사실과 얼마나 다른지를 따지기 전에 이미 무언가 크게 잘못된 사회다.


국민의힘 의원들이 일으키는 억지 잡음들


논쟁이 이 지경에 이른 데는 정치권의 책임이 크다. 주진우 의원은 유해진을 두고 한 누리꾼이 과거 출연작을 언급하자 "북한상"이라는 답글을 달았다. 얼굴 생김새로 사람의 사상을 가늠한다는 발상은 비판이 아니다. 우리가 오래전에 청산했다고 믿었던 색깔론의 가장 저급한 형태다.  이진숙 의원은 "좌파 진영이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역사를 다시 쓰려고 한다"고 말했고, 그 과정에서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소환됐다. 


김태규 원내수석대변인은 영화 관계자들을 향해 "반인륜적, 패륜적 작태"라는 표현을 썼다. 이인선 의원실은 전국 시도교육청을 통해 학교에 '암살자(들)' 단체 관람 현황을 제출하라고 요구했다. 개봉 일주일도 안 된 12세 이상 관람가 영화의 학교 단체 관람 현황을 그것도 "해당 없음"까지 필수 제출로 받겠다는 것은, 교사들이 지적한 대로 교육 활동에 대한 부당한 압박이라는 의심을 피하기 어렵다.


여기에 감독과 제작진 고발, 상영금지 가처분 검토, 국정감사 증인 채택, 심지어 영화 관람을 지원했다는 이유의 기업 고발까지 이어졌다. 영화 하나에 국회, 경찰, 교육청, 법원이 동원되는 이 속도와 밀도는 '역사 바로 세우기'로 설명되지 않는다. 그것은 영화가 논쟁의 대상이 아니라 제거의 대상이 되었음을 보여준다.


가장 착잡한 대목은 같은 날 나온 또 다른 뉴스다. 김태규 의원은 한 유튜브 방송에서 전두환 신군부의 내란은 대법원 확정판결이 있음에도 "내란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나중에 그는 "균형을 잡기 위한 답변"이었다고 해명했다. 한쪽에서는 영화 속 가정 하나를 두고 "역사 왜곡"을 외치면서, 다른 쪽에서는 사법부가 확정한 역사를 부정하는 발언이 나온다. 역사 왜곡에 분노하는 것이 원칙이라면 그 원칙은 어디에나 똑같이 적용되어야 한다. 원칙이 특정 방향으로만 작동한다면, 사람들은 그것을 원칙이 아니라 정치라고 부를 것이다.


"그때는 뭐 했나"


'암살자(들)'이 던진 질문은 새롭지 않다. MBC '이제는 말할 수 있다'는 2005년에 '육영수와 문세광' 편을 방송했고, SBS '그것이 알고 싶다'도 2005년과 2020년에 이 사건의 남은 의혹을 다뤘으며,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도 2021년에 이 사건을 다뤘다. 문세광이 쏜 탄환의 궤적, 사라진 탄환, 수사 과정에서 중앙정보부의 개입 등 영화가 가져온 소재는 대부분 이 다큐들이 이미 시청자 앞에 내놓았던 것이다. 그때 지상파 다큐에 대해 상영 중단이나 고발이 있었다는 이야기는 들리지 않는다.


물론 다큐와 극영화는 다르다. 극영화는 감정과 인상을 만들고, 그 힘이 더 크다. 그래서 영화에 더 엄격한 검증을 요구하는 것은 합당하다. 하지만 그 엄격함은 "왜 이 영화가 이런 인상을 주는가"를 묻는 비평의 형태여야지, "이 영화를 만든 자들을 처벌하라"는 형태여서는 안 된다. 2005년의 박근혜 의원은 활발히 활동하던 정치인이었고, 2021년의 국민의힘은 정권 교체의 기세를 올리던 정당이었다. 그때 침묵했던 사람들이 지금 이토록 격렬하다면, 그 격렬함이 어디에서 왔는지를 묻는 것도 시민의 권리다.


중요 논점은 영화의 내용이 아니라 영화를 둘러싼 폭력


진중권 교수는 칼럼에서 이 영화의 논리 구조를 케네디 암살 음모론에 견줬다. 총성의 횟수, 사라진 증거, 감시하고 있었는데도 막지 못했다는 정황 같은 패턴이 겹친다는 지적에는 일리가 있다. 음모론이 "사이비 이성의 옷"을 입는다는 경고도 새겨들을 만하다. 공식 기록상 문세광 외의 별도 저격범이 있었다는 증거가 확인되지 않는다는 점도 우리가 솔직하게 인정해야 할 사실이다.


그러나 이 칼럼에는 동의하기 어려운 대목이 셋 있다.


첫째, 케네디 사건과의 비교는 양날의 칼이다. 미국인의 65%가 여전히 음모가 있었다고 믿는 사회에서도 올리버 스톤의 'JFK'는 상영금지되지 않았고, 감독은 고발되지 않았다. 그 영화가 잘못된 믿음을 강화했다고 비판하는 것과, 그 영화를 만든 사람에게 국가 권력이 개입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진 교수 자신도 "배우들은 건드리지 말라"고 했다. 그렇다면 논점은 결국 영화의 내용이 아니라 영화를 둘러싼 폭력이어야 한다.


둘째, '건국전쟁'과의 비교는 무리가 있다. '건국전쟁'은 다큐멘터리라는 이름으로 사실을 주장했고, '암살자(들)'은 자신을 극영화로 규정하며 가상의 인물과 상황을 섞었다고 밝혔다. 물론 '(들)'이라는 제목이 이미 결론을 암시한다는 지적, 그리고 그 괄호가 책임을 피하는 장치라는 지적은 일리가 있다. 하지만 장르가 다르면 검증 방식도 달라야 한다. 양쪽을 같은 저울에 올려놓는 것이 공정해 보일 수는 있어도 정확하지는 않다.


셋째, "양쪽의 두 극단이 서로 다르지 않다"는 균형감은 지금의 비대칭을 가린다. 영화를 비판하는 글이 나오는 것은 아무 문제가 없다. 문제는 비판이 배우의 SNS 테러, 광고 압박, 평론가의 영상 삭제, 학교 자료 제출 요구로 확장되는 비대칭이다. 양쪽이 똑같이 시끄럽다고 말하는 순간, 누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가 흐려진다.


그럼에도, 영화에 대한 비판은 정당하다


공정하게 말하면 영화를 향한 문제 제기가 모두 색깔론인 것은 아니다. 방송에서 지적된 것처럼 방탄 연설대나 경호 지침 변경 시점, 결말부의 동아일보 해직 기자 장면이 관객에게 사실과 다른 인상을 줄 수 있다는 비판은 구체적이고 검증 가능하다. 


유족이 생존해 있는 실존 사건을 다루면서 남편이 아내의 죽음에 개입했다는 인상이 만들어질 수 있다면, 그 상처를 이야기하는 것은 정치 공세가 아니라 인간적 도리다. 제작진과 감독이 "박 전 대통령의 지시를 그린 것은 아니다"라고 밝혔음에도, 의도와 해석이 다를 수 있다는 점 또한 인정해야 한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이 논쟁은 극장 안에서, 토론장에서, 역사 자료 위에서 벌어져야 한다. 고발장이나 댓글 폭력의 형태여서는 안 된다. 앞서 법원이 각색 사실을 분명히 명시한 작품은 상영금지 대상이 아니라는 취지로 판단해 온 것도, 사회가 오랜 시행착오 끝에 도달한 상식이다.


영화가 영화를 넘어설까 봐 두려운가


전찬일 평론가는 '박성태의 뉴스쇼'에서 한 편의 영화가 영화를 넘어서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도가니'가 법을 바꾸고, '택시운전사'가 광주의 기억을 넓혔다는 것이다. 그는 이번 논란의 배경에 그 두려움이 있을 수 있다고 짚었다. 이는 하나의 해석이며, 증명된 사실이 아니다. 그러나 이 영화 하나를 향한 반응의 크기를 설명하는 가설로는 충분하다. 1,300만 관객이 본 '서울의 봄'은 전두환 신군부가 일으킨 12·12 쿠데타를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 사이의 간극을 좁혔고, 그 경험은 한국 현대사와 계엄을 바라보는 관객의 인식에 큰 영향을 주었다. 국민의힘 의원들은 이걸 두려워 하는 것일까? 


현대사는 교과서 몇 쪽으로 배우는 것이 아니라, 영화와 다큐, 증언과 논쟁, 기록의 대조를 거치며 사회가 함께 익혀 가는 것이다. 그 과정에는 잘못된 인상도 섞인다. 그래서 필요한 것은 차단이 아니라 검증이다. 영화가 틀렸다고 믿는 사람은 어디가 어떻게 틀렸는지를 자료로 보여주면 된다. 그런 반박이 설득력을 가질수록 영화의 영향력은 줄어든다. 반대로 영화를 막으려는 시도는 오히려 관심을 키웠다. '난리 나니 더 본다'는 관객의 반응이 그것을 말해 준다.


가족과 함께, 세대를 넘어 '암살자(들)'를 보고 이야기하자


그래서 제안한다. 이 영화를 보자. 영화가 옳다고 믿어서가 아니다. 논쟁에 참여하려면 먼저 봐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직접 보자. 소문과 발췌, 댓글로 판단하지 말고 두 시간을 들여 끝까지 보자. 보고 나서 마음에 안 들면 그렇다고 말하면 된다. 지지하든 반대하든 그것은 관객의 정당한 권리다.


보고 나서 확인하자. 영화가 그린 총성, 탄환, 수사 과정이 공식 수사 기록과 어떻게 다른지, 어디까지가 기록이고 어디부터가 상상인지 따로 짚어 보자. MBC와 SBS의 다큐도, 당시 수사 결과와 외교문서도 함께 보자. 영화에 대한 가장 좋은 비평은 영화 밖의 자료에서 나온다.


가족과 함께, 세대를 넘어 이야기하자. 1974년을 기억하는 세대와 그렇지 않은 세대가 같은 영화를 보고 서로 다르게 읽는다면, 그 차이가 곧 대화의 출발점이다. 영화의 결론에 동의하지 않는 부모와 동의하는 자녀가 저녁상에서 나눈 논쟁은, 어떤 캠페인보다 오래 남는다.


관객과 창작자를 지키자. 영화를 봤다는 이유로, 좋다고 말했다는 이유로 공격받는 사람이 없도록 하자. 악성 댓글 앞에서 영상을 내리는 평론가와 유튜버를 보며 우리는 이미 비용을 치르고 있다. 그 비용은 다음 영화, 다음 평론, 다음 질문을 하려는 사람의 위축으로 돌아온다.


영화에 대한 비판도 인정하자. 영화에 반대하는 사람이 자기 목소리를 내는 것 역시 보호받아야 한다. '보기 운동'은 '보지 말자 운동'을 없애자는 것이 아니라, 두 운동이 같은 극장 앞에서 마주 서서 토론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자는 것이다.


한 편의 영화가 국회, 경찰, 학교, 기업, 배우의 SNS를 뒤흔드는 지금, 이 소란과 매카시 광품이 남기는 질문은 "1974년에 무슨 일이 있었는가"만이 아니다. 우리는 불편한 질문을 던지는 작품 앞에서 어떤 시민이 될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극장의 어둠 속에서, 그리고 극장을 나서는 길에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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