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우를 초월해 협공하는 기득권 생태계의 용혜인 마녀사냥

장기영 기자

등록 2026-09-05 10:25

위성정당 출신의 30대 여성, 소수정당의 대표가 성평등가족부 수장으로 지명된 사건은, 계파와 서열과 나이로 자리가 결정되어 온 기존 정치 문법에 대한 도전이다. 그동안 여성가족부 장관은 주로 여성사회단체장들의 점유물이었었다. 그런데 이 지명 이후 벌어진 일은 '체제를 바꾸려는 시도'가 한국 정치에서 어떤 식으로 흡수되고 무력화되는지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AI생성이미지=제미나이

조란 맘다니와 프란체스카 홍은 양당제의 골이 깊어지는 미국 정치 지형 속에서 전통적인 엘리트 정치의 균열을 파고드는 새로운 정치 세력이 부상이다.


뉴욕 시장에 당선된 조란 맘다니(Zohran Mamdani)와 위스콘신주 하원의원 프란체스카 홍(Francesca Hong)은 기득권 정당 구조에 갇힌 미 민주당의 한계를 정면으로 타격하며 차세대 진보 정치의 아이콘으로 주목받고 있다.  


미국 정치는 우경화된 공화당과 기득권 타협주의에 빠진 민주당 사이에서 갈피를 잡지 못한 지 오래되었다. 민주당은 고학력·워싱턴 엘리트 중심의 관료주의에 안주하며 서민 삶의 팍팍함을 외면해 왔다. 이러한 민주당의 구조적 문제점은 노동자층의 이탈과 정치적 불신을 심화시켰다.  


조란 맘다니의 뉴욕 시장 당선 돌풍은 이 같은 주류 민주당에 대한 대중적 거부감의 결정판이다. 맘다니는 계급적 문제와 주거, 대중교통 등 생계 밀착형 이슈를 직격하며 기존 주류 정치인들을 제치고 시민들의 열광적인 지지를 끌어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위스콘신주의 첫 아시아계 여성 주하원의원인 프란체스카 홍의 부상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셰프 출신의 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노동자 및 돌봄 노동의 가치를 정치의 중심 과제로 끌어올린 홍은, 정체성 정치에 갇히지 않고 진정한 구조적 변혁을 열망하는 서민층의 목소리를 대변한다. 그는 당내 좌파 세력과 서민 노동자들을 잇는 강력한 고리로 작동하며 미래 미국 정치의 새로운 축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뉴욕 시장에 당선된 조란 맘다니와 위스콘신주 하원의원 프란체스카 홍의 부상은 기득권 정당 구조에 갇힌 미국 민주당의 한계를 정면으로 타격했다는 점에서 상징적이다. 맘다니는 계급 문제와 주거, 대중교통이라는 생계 밀착형 이슈를 직격하며 워싱턴 엘리트 정치에 지친 유권자들의 열광을 끌어냈고, 셰프 출신인 프란체스카 홍은 노동과 돌봄의 가치를 정치의 중심 의제로 끌어올리며 당내 좌파와 서민층을 잇는 고리로 자리 잡았다. 둘 다 기존 시스템 내에서의 자리 이동이 아니라, 시스템 자체를 흔드는 밑으로부터의 변혁을 대표한다.


반면 한국 정치권에서는 이재명 대통령을 비롯해 한국의 대중정치인들 역시 끊임없이 '변혁'과 '개혁'을 말해왔다. 그러나 맘다니나 홍에 견줄 만한, 체제 자체를 흔드는 인물은 좀처럼 등장하지 못했다. 이는 단순히 인물의 역량 문제가 아니다. 강고한 진영 논리, 제왕적 정당 구조, 그리고 정체성 정치와 사회운동이 결합하지 못하는 구조적 한계가 그 자리를 대신 채우고 있기 때문이다. 이 진단이 추상적인 주장에 그치지 않는다는 것을, 최근 성평등가족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된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을 둘러싼 정치권의 반응이 고스란히 보여준다.


용혜인이라는 시험대


용혜인이 맘다니 시장이나 프란체스카 홍 만큼 '시스템 자체를 흔드는 밑으로부터의 변혁'할 수 있는 인물인가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하지만 용혜인의 지명은 한국 정치에서 보기 드문 실험임은 분명하다. 위성정당 출신의 30대 여성, 소수정당의 대표가 성평등가족부 수장으로 지명된 사건은, 계파와 서열과 나이로 자리가 결정되어 온 기존 정치 문법에 대한 도전이다. 그동안 여성가족부 장관은 주로 여성사회단체장들의 점유물이었었다. 그런데 이 지명 이후 벌어진 일은 '체제를 바꾸려는 시도'가 한국 정치에서 어떤 식으로 흡수되고 무력화되는지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국민의힘은 그를 "탐욕"으로 규정했고, 진보 진영 일부 정당은 "편법 정치의 수혜자"라며 지명 철회를 요구했다. 보수 논객은 "사회의 기생충"이라 불렀고, 언론은 "꼼수 절세"라는 제목으로 세금 납부 내역을 파헤쳤다. 심지어 유전적 요인이라고 이미 여러 차례 해명된 흰머리조차 "이미지 메이킹"이라는 의혹으로 재소환되었다. 


좌우와 여야, 원내와 원외를 가리지 않는 이 융단폭격은 하나의 사실을 증명한다. 한국 정치에서 기존 판을 흔드는 인물이 등장했을 때, 거대 양당과 그 주변 생태계는 이념의 좌우를 초월해 협공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강고한 진영 논리'의 실체다. 진영 논리는 좌우 대립으로만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기득권 대 비기득권의 구도에서 훨씬 더 완강하게 작동한다.


숫자로 드러난 제왕적 정당 구조


"11억씩 받아 가고 있다"는 나경원 의원의 발언은 이 문제의 핵심을 정확히 드러낸다. 실제 기본소득당이 받는 경상보조금은 8천만 원 수준이며, 11억이라는 수치는 의원 개인에게 배정되는 세비와 의원실 운영비까지 모두 합산한, 소속 정당과 무관하게 모든 국회의원에게 공통 지급되는 금액이다. 이 역시 용혜인 의원이 장관직까지 겸직할 때에는 장관 급여를 받을 것인지, 국회의원 세비를 받을 것인지 둘 중 하나만을 선택해야 한다. 장관 급여와 국회의원 세비 둘 다 받는 것은 불가능하다.   


반면 국고보조금 배분 구조를 보면 원내 1, 2당이 절반을 우선 나눠 갖고 나머지 절반도 의석수에 따라 배분받는 이중 수혜 구조여서, 거대 양당은 매년 500억 원에 달하는 보조금을 가져간다. 8천만 원짜리 소수정당의 존립 문제는 "탐욕"으로 낙인찍히고, 500억 원을 가져가는 거대 양당 구조는 누구도 문제 삼지 않는다.


이 비대칭은 우연이 아니다. 이것이야말로 '제왕적 정당 구조'가 실제로 작동하는 방식이다. 제왕적 정당 구조란 단지 총재나 대표 한 사람의 권력이 강하다는 의미를 넘어, 거대 양당이 제도와 예산과 의석 승계 규칙까지 설계해 소수정당의 생존 공간 자체를 원천적으로 좁혀놓는 구조를 뜻한다. 


용혜인이 비례대표직을 사퇴하면 승계권은 기본소득당이 아니라 민주당의 다음 순번으로 넘어간다. 그의 거취는 개인의 명예나 이해관계 문제가 아니라, 소수정당이 원내 교섭 기반을 유지할 수 있는지를 가르는 정당 생존의 문제다. 기본소득당으로 의원이 된 최혁진 의원이 배신하고 민주당으로 가려 했다가 거절 당해 무소속으로 남은 일을 거론조차 하지 않은 채,  이 특수성을 "탐욕"이라는 한 단어로 납작하게 짓눌렸다. 시스템 자체를 바꾸려는 소수 세력이 기존 시스템의 문법 안에서 재단당하는 전형적인 장면이다.


정체성 정치와 사회운동이 결합하지 못하는 이유


한국 정치의 한계로 '정체성 정치 및 사회운동과의 결합 부족'을 지적할 수 있다. 용혜인 사태는 왜 이 결합이 어려운지를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흰머리에 대한 의혹, "가족 정당"이라는 조롱, 통상적인 정치자금 세액공제를 "꼼수 절세"로 몰아가는 프레임은 정책 검증과 무관한 인신공격이다. 


이런 공격이 반복되는 이유는 단순하다. 청년 여성 정치인이 노동, 돌봄, 소수정당의 생존권 같은 구조적 의제를 들고 나올 때, 기존 정치 생태계는 그 의제 자체를 논박하기보다 그의 정체성과 이미지를 공격함으로써 논의 자체를 봉쇄하는 편이 훨씬 손쉽다는 것을 학습해왔기 때문이다.


프란체스카 홍이 노동자·돌봄 노동의 가치를 정치 의제로 끌어올리며 당내 좌파와 서민 노동자를 잇는 고리로 기능할 수 있었던 것은, 미국의 정치 지형에서 사회운동 세력과 진보 정치 세력이 상대적으로 유기적인 연결 통로를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반면 한국에서는 용혜인처럼 사회운동과 원내 활동을 병행해온 정치인이 등장해도, 진보 진영 내부의 원외 정당들조차 "위성정당 편법의 수혜자"라는 프레임으로 그와 거리를 둔다. 


소수정당 간의 연대나 사회운동과 원내 정치 사이의 결합이 이루어지기도 전에, 기득권 양당 구도가 만들어놓은 '편법 대 정당성'이라는 낡은 잣대가 먼저 작동해버리는 것이다. 이는 진영 논리가 좌우 진영 내부에서도 새로운 세력의 결합을 가로막는 방식으로 작동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중 잣대가 드러내는 한국 정치 구조의 민낯


이 사태에서 가장 뚜렷하게 드러나는 것은 힘 있는 자와 힘없는 자에게 적용되는 잣대의 비대칭이다. 12·3 계엄 사태 이후 조희대 대법원장이 보인 이례적 행보나, 한동훈 의원의 이른바 '아이폰 비밀번호' 사건에 대해서는 "심증은 가지만 물증이 없으니 신중해야 한다"는 태도가 사회적으로 상당한 지지를 받았다. 반면 용혜인 의원에게는 정반대의 잣대가 적용된다. 8천만 원이 11억으로 부풀려져도, 이미 해명된 흰머리 의혹이 재소환되어도, 제도가 허용한 절세가 "꼼수"로 낙인찍혀도 공세는 좀처럼 잦아들지 않는다.


이 비대칭은 단순한 감정적 반응이 아니라, 기존 기득권 시스템이 자신을 방어하는 방식 그 자체다. 시스템 내부의 기득권자에게는 증거주의라는 절제의 원칙이 적용되고, 시스템 바깥에서 들어온 도전자에게는 의혹만으로도 충분한 공격의 근거가 된다. 이것이 바로 '기존 시스템 내에서의 권력 재편에 그치는' 한국 정치의 본질이다. 시스템은 내부자를 보호하고 외부의 도전자를 솎아내는 방식으로 스스로를 재생산한다.


도박에 가까운 실험, 그리고 남는 과제


이재명 대통령이 청년 비대위원장, 청년비서관, 청년 최고위원 등 거듭 실패해온 청년 정치 실험의 계보 위에서 굳이 위성정당 출신 소수정당 대표를 장관으로 지명한 것은, 계파와 서열로 자리가 결정되는 낡은 정치 문법에 균열을 내려는 시도로 읽을 수 있다. 여성가족부가 성평등가족부로 개편된 것 역시 여성만이 아니라 세대와 젠더 갈등 전반을 아우르겠다는 의도가 담겨 있다는 점에서, 이 인선은 상징적 안배를 넘어선 실질적 세대교체 시도에 가깝다.


물론 이런 해석에 대한 반론도 존재한다. 노동당·녹색당·정의당 등 원외 진보정당들이 제기하는 문제의식, 즉 위성정당이라는 제도적 편법이 소수정당의 정치적 공간을 잠식해온 구조적 병폐라는 지적은 감정적 공세가 아니라 선거제도 원칙에 대한 진지한 문제 제기다. 비례대표 승계 관행을 지켜야 한다는 주장에도, 특정 정당의 존속을 위해 원칙을 예외로 두어서는 안 된다는 나름의 형평성 논리가 있다. 이런 반론들은 마땅히 청문회 과정에서 진지하게 다뤄져야 할 사안이다.


그러나 이런 정당한 문제 제기와, 흰머리나 배우자의 당직 이력, 부풀려진 숫자 같은 소재를 뒤섞어 한 인물 전체를 "탐욕"과 "기생충"으로 낙인찍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다. 검증과 마녀사냥의 경계를 구분하지 못하는 정치 생태계에서는, 체제를 바꾸려는 어떤 시도도 결국 기존 시스템의 자기방어 기제에 흡수되고 만다.


밑으로부터의 결합이 없다면 혁신과 변혁은 신기루로 남는다


맘다니와 프란체스카 홍의 사례가 보여주듯, 체제를 흔드는 변혁적 리더십은 단지 스타성 있는 개인의 등장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생계 밀착형 의제, 사회운동과의 유기적 결합, 그리고 그 인물을 지지 기반으로 감싸안는 밑으로부터의 조직화가 함께 작동할 때에만 지속 가능한 힘을 갖는다. 


용혜인 사태는 한국 정치에 이런 조건이 아직 갖춰지지 않았음을 역설적으로 증명한다. 진영을 초월한 협공, 제도와 예산으로 뒷받침되는 양당의 과점 구조, 그리고 정체성 정치와 사회운동 사이의 미약한 연결 고리 — 이 세 가지가 겹쳐질 때, 아무리 담대한 인선과 개혁 의지가 있어도 그 시도는 청문회 문턱을 넘기도 전에 마녀사냥의 소재로 소비되고 만다.


결국 한국 정치에 필요한 것은 새로운 인물 한 명의 등장이 아니라, 그 인물을 검증이 아닌 낙인으로 지워버리려는 구조 자체에 대한 성찰이다. 밑으로부터의 현장 운동과 담대한 정책적 비전이 결합한 진정한 변혁적 리더십은, 그 리더십이 등장했을 때 이를 흡수하지 않고 지켜낼 수 있는 정치 생태계가 함께 만들어질 때에만 신기루가 아닌 현실이 될 수 있다.


장기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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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자2024-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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