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News 캡처화면
지각변동은 실리콘밸리의 중심부에서 시작됐다. 지난 7월 24일(현지시간) 미국 샌프란시스코 도그패치 지구의 복합 문화·컨퍼런스 공간 '더 미드웨이'에서 열린 '샌프란시스코 AI 서밋'은 단순히 거대 기술 기업들의 기술력을 과시하는 자리가 아니었다.
이재명 대통령,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이해진 네이버 이사회 의장 등 한국 재계를 대표하는 리더들과 샘 올트먼 오픈AI CEO, 젠슨 황 엔비디아 CEO, 혹 탄 브로드컴 CEO, 다리오 아모데이 앤스로픽 CEO 등 글로벌 빅테크 수장들이 한자리에 모여, AI가 재편할 문명사적 대전환의 미래와 이를 뒷받침할 '글로벌 거버넌스'의 가치를 정면으로 다룬 이정표였다. 사티아 나델라 마이크로소프트 CEO는 영상 메시지로 힘을 보탰다.
이날 이재명 대통령은 기조연설에서 "대한민국을 대체 불가능한 글로벌 AI 공급망의 핵심 국가이자 글로벌 AI 허브로 도약시키겠다"며 5천만 국민이 참여하는 'AI 기본 사회' 구상을 밝혔다. 젠슨 황 엔비디아 CEO는 "HBM 메모리 혁신이 없었다면 엔비디아의 슈퍼컴퓨터도 존재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한국은 AI 시대의 황금기를 맞이했다"고 강조하고, SK그룹과 5,000억 달러 규모의 AI 인프라 협력 확대를 발표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이에 화답해 "대한민국의 AI 투자 프로젝트는 무모한 것이 아니라 매우 현실적인 비전에 기반한 것"이라며 국민 1인당 AI 에이전트 보유를 목표로 한 인프라 확장 계획을 밝혔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미국의 원천 기술·플랫폼과 한국의 반도체·제조 경쟁력이 결합할 때 혁신의 속도가 빨라진다는 점을 강조했고, 혹 탄 브로드컴 CEO는 삼성전자와의 양해각서 체결을 통해 프론티어 모델 개발 및 맞춤형 컴퓨팅 액셀러레이터 구축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은 엔비디아·웨이모·구글 딥마인드 등과의 협력 강화와 국내 대규모 투자를 통해 한국을 '피지컬 AI' 중심지로 육성하겠다고 선언했다.
샘 올트먼 오픈AI CEO는 "AI 혁명은 한국의 역량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라며 한국의 선제적 인프라 투자에 공감을 표했고, 다리오 아모데이 앤스로픽 CEO는 "민주주의 국가 간 연대를 통해 공동 가치에 기반한 AI 발전을 이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해진 네이버 이사회 의장은 엔비디아와 브룩필드로부터 100억 달러 규모의 투자를 유치했다고 밝히며, 소수 기업에 지배되지 않는 다양한 AI 생태계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오늘날 AI 기술은 개별 기업의 연구실이나 특정 국가의 독점적 자산을 넘어섰다. 소프트웨어 알고리즘과 초거대 컴퓨팅, 고성능 메모리 반도체, 에너지 인프라, 그리고 피지컬 AI에 이르기까지 복잡하게 얽힌 전 지구적 공급망을 바탕으로 작동한다. 이번 서밋에서 공유된 글로벌 리더들의 발언은 거대해진 AI 생태계를 어떻게 지속 가능하고, 안전하며, 포용적으로 이끌어갈 것인가에 대한 명확한 이정표를 제시한다.
첫째, AI 거버넌스의 핵심 가치는 '기술 독점'이 아닌 '다양성과 생태계의 포용성'에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대한민국을 세계 최고의 반도체 역량을 바탕으로 한 AI 공급망 핵심 거점으로 삼는 동시에, 국민 모두가 AI 혜택을 누리는 'AI 기본 사회'를 제안했다. 이는 AI 혁신의 결실이 특정 계층이나 국가에 상속되지 않도록 하는 민주적 거버넌스의 정수를 보여준다. 이해진 이사회 의장 역시 인터넷과 AI가 한두 집단에 지배되지 않고 각 국가와 개인의 다양성이 지켜져야 한다며 기술 주권과 스케일업의 조화를 강조했다.
둘째, 지속 가능한 거버넌스를 위해서는 안정적인 글로벌 공급망과 비용 절감이라는 현실적 기반이 필수적이다. 젠슨 황 CEO는 한국의 HBM 혁신을 언급하며 초거대 인프라와 풀스택 기술 연대가 AI 황금 시대를 열고 있다고 말했고, 최태원 회장과 혹 탄 CEO, 사티아 나델라 CEO는 데이터센터 확충과 맞춤형 칩 공동 설계를 통해 AI 이용 비용을 낮추는 실질적 인프라 협력을 공언했다. 거버넌스는 공리공담(空理空談)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누구나 부담 없이 AI 기술에 접근할 수 있도록 인프라의 진입장벽을 낮추는 연대야말로 거버넌스의 실질적 동력이다.
셋째, AI의 영역이 디지털을 넘어 현실 세계로 확장됨에 따라 안전과 윤리적 책임성이 거버넌스의 시급한 과제로 떠올랐다. 정의선 회장이 제시한 '피지컬 AI'와 자율주행·로보틱스 생태계는 디지털 공간의 인공지능이 물리적 삶과 도시 인프라로 결합할 때 필요한 신뢰 구축의 중요성을 보여줬다. 샘 올트먼 CEO와 다리오 아모데이 CEO가 공통으로 강조했듯, 기술 발전의 속도가 인간의 상상을 초과하는 상황에서 거대 권력의 집중을 막고 민주적 가치를 공유하는 국가 간의 연대를 강화하는 것은 미룰 수 없는 시대적 요구다.
이재명 대통령은 이날 마무리 발언에서 "인공지능 도입은 불의 발견과도 같은 문명사적 변화"라며 대한민국이 글로벌 AI 황금 시대를 선도하는 모범이 되겠다고 재차 강조했다. 인류 역사상 '불의 발견'에 비견되는 AI 혁명 앞에서 인류는 갈림길에 서 있다. 무한 경쟁을 통한 파편화의 길을 걸을 것인가, 아니면 상호 연결된 공급망과 민주적 가치를 바탕으로 공존의 길을 모색할 것인가. 샌프란시스코 AI 서밋은 인류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 후자임을 분명히 했다.
기술과 자본, 그리고 가치가 선순환하는 글로벌 AI 거버넌스의 구축. 그것은 더 이상 미래의 선택지가 아닌, 인류가 공동의 번영을 위해 지금 당장 완성해야 할 가장 담대한 약속이다.
장기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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