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시크 모멘트에서 체제로
2025년 1월, 중국 인공지능 스타트업 딥시크(DeepSeek)가 공개한 언어 모델 R1은 세계 기술 질서에 충격을 안겼다. 미국 GPT-4o에 맞먹는 성능을 수십 분의 1 비용으로 구현한 데다, 고성능 GPU인 H100이 아닌, 중국 내에서도 확보 가능한 H800으로 훈련을 마쳤다는 점은 결정적이었다. 자원의 양이 아닌 구조의 효율이 경쟁력을 결정짓는 국면으로의 전환이었다.
딥시크는 ‘전문가 혼합(MoE)’ 구조를 통해 연산량과 메모리 사용을 획기적으로 줄였고, 이는 중국의 자원 현실에 맞춘 전략이기도 했다. 마치 인텔의 전력 중심 시대에서 ARM 기반 모바일 컴퓨팅으로 전환됐던 것처럼, 기술 효율을 중심에 둔 새로운 패러다임이 등장한 셈이었다.
이 변화는 단순한 기술의 진보가 아니었다. R1은 MMLU, GPQA, HumanEval 등 주요 평가에서 메타의 LLaMA, 오픈AI 모델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특히 실시간 대화에서의 맥락 이해 능력은 교육, 상담, 콘텐츠 제작 등 실용 영역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다. 1월 27일, R1은 애플 앱스토어 세계 157개국에서 다운로드 1위를 기록했고, 마크 앤드리슨은 이를 “AI의 스푸트니크 순간”이라 명명했다.
실리콘밸리 주요 인사들도 반응했다. 오픈AI의 카르파티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저렴한 방식으로 최첨단 AI를 구현했다”고 평가했고, Y콤비네이터의 개리 탠, MS CEO 나델라, 애플 CEO 팀 쿡까지 딥시크의 설계와 사용자 경험을 긍정적으로 언급했다. 엔비디아 주가가 흔들렸고, AI 기술주 전반에 긴장이 퍼졌다.
미래에셋증권은 딥시크를 “GPT급 성능을 98% 저렴하게 제공한 바겐세일”이라며, 기술력뿐 아니라 비용 구조와 설계 전략이 시장을 좌우할 시대가 도래했음을 지적했다. AI 패권 경쟁의 조건이 바뀐 것이다. 더는 자본과 GPU만으로 최고 성능에 도달하던 시대가 아니며, 전략적 설계가 국가 경쟁력의 핵심이 되었다.
중국은 이 변화를 체계적으로 준비해왔다. ‘중국제조 2025’와 ‘차세대 인공지능 발전계획’을 통해 AI를 국가전략의 중심에 놓았고, 초·중등 교육부터 대학까지 AI 교육을 제도화했다. 칭화대 ‘야오반’, 북대 ‘투링반’은 최고 수준의 인재를 배출하고 있으며, 연간 50만 명 규모의 AI 인재가 양성되고 있다. 4,700개가 넘는 AI 기업이 이러한 생태계에서 실험과 실행을 수행하는 장치이자 주체로 기능하고 있다.
정책 집행 체계도 빠르다. 중앙이 방향을 잡고, 지방이 실험하고, 효과적인 모델은 빠르게 확산시키는 순환 구조다. 딥시크는 그 구조 속에서 탄생한 가장 인상적인 결과물이었다. 중국은 이미 ‘제2의 딥시크’를 위한 기반을 갖췄다.
스탠퍼드 HAI의 ‘AI 인덱스 2025’에 따르면, 중국과 미국 간 AI 모델 성능 격차는 1년 만에 9%에서 1%로 줄었고, 딥시크는 GPT-4 및 Gemini와 거의 동등한 평가를 받았다. 기술 추격이 아닌, 발전 속도의 압축이 실현되고 있다는 신호였다. 동시에 이는 미국의 반도체 제재가 효과를 잃고 있음을 암시하기도 했다. 고성능 GPU 없이도 최고 성능 모델이 등장한 것이다.
딥시크의 등장은 기술, 정책, 교육, 산업, 외교가 한 방향으로 정렬되는 시스템 단위 혁신의 전형이다. 단순한 기술의 진보가 아니라, 기술이 체제를 설계하고 질서를 새롭게 쓰는 방식의 변곡점이다. 중국은 AI를 통해 정치를, 교육을, 산업을 새롭게 정의하고 있으며, 그 실험의 첫 증거가 바로 ‘딥시크 모멘트’다.
이 책은 ‘딥시크 모멘트’라 불리는 충격과 논란에서 출발해, 중국이 어떻게 AI를 통해 국가를 설계하고, 권력을 재편하고, 산업과 교육, 통치 구조를 재구성했는지 그 전체 구조를 추적한다. 총 10부로 1부 딥시크 모멘트, 2부 딥시크 활용 사례, 3부 딥시크 천재들의 과제, 4부 제2의 딥시크 도전자들, 5부 기업 전쟁: BATX, 6부 문건 79호와 AI 정책 , 7부 천인계획과 인재 양성, 8부 AI 패권전쟁 2.0, 9부 중국 2030년 AI 미래, 10부 딥시크 모델 기술 분석 및 실무 활용 사례를 다룬다.
이 책은 기술 서사도, 산업 보고서도 아니다. 체제 전환의 동역학을 기록한 AI 시대의 통치 보고서다. AI가 인간을 대체하는가라는 질문이 아니라, AI가 국가를 어떻게 작동하게 만들고, 기술이 체제를 어떻게 다시 쓰는가라는 물음을 던진다. 그리고 그 물음의 출발점에 바로, 딥시크가 있다.
■ 배 삼 진
연합뉴스와 연합뉴스TV에서 올해로 기자 생활 20년째를 맞았다. 국회, 국방부, 서울시경찰청, 산업자원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보건복지부, 중소벤처기업부, 국토교통부, 방송통신위원회 등 주요 부처를 두루 출입하며 대한민국의 정치, 사회, 산업 현장을 깊이 있게 취재해 왔다.
산업 발전에 대한 깊은 관심을 바탕으로, 더 강한 대한민국을 만드는 데 작게나마 이바지하고자 하는 사명감으로 현장을 지켜온 저자는 2024년 1월부터 약 1년 반 동안 중국 베이징 특파원으로 근무하며 중국 사회를 심층적으로 관찰하고 있다. 특히 중국의 과학 기술력과 산업 발전 경로에 주목하며, 중국이 향후 어떤 선택을 할지에 대해 지속적으로 탐구하고 있다.
■ 박 진 호
동국대학교 컴퓨터 · AI학부에서 교수로 재직 중이며, 국방안전연구센터장과 AI · 양자보안연구소장을 맡고 있다. 대통령 직속 국가균형발전위원회 특별위원, 국회 4차산업혁명특별위원회 자문위원, 국무조정실 신산업/규제혁신위원, 과학기술정보통신부 AI중심산업융합집적단지조성사업 운영위원, 한국SW · ICT총연합회 공동대표, 한국IT정책경영학회 회장 등을 역임하였으며, 지금도 AI품질연구포럼 자문위원, 한국표준협회 AI품질인증(AI+) 심의위원, 한국IT융합연구원원장 등으로 활발히 활동 중이다.
주요 연구 분야로는 AI융합서비스, AI안전 · 품질, 국방 AI, 양자보안, 사이버무력화, SW/ICT정책 ·법제도개선 등이 있다.
“좋은 책에서는 저자의 10년 노하우를 읽을 수 있고, 훌륭한 사람에게는 평생 노하우를 들을 수 있다”는 말처럼 좋은 책과 훌륭한 사람들을 많이 만나보고 그들의 지혜를 얻어가기를 소망한다.
광문각출판미디어 배삼진/박진호 다른 기사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