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원도 원주시 문막읍 반계리 들판을 천년 넘게 지켜온 천연기념물 제167호 '반계리 은행나무'가 마침내 인간의 언어로 긴 침묵을 깨뜨렸다.
오랜 사료 추적과 고문헌 조사, 현장 기록을 바탕으로 거목의 시선을 담아낸 신간 『반계리 은행나무, 천 년의 침묵 비망록』(바른북스)이 출간됐다. 36년간 현장을 누빈 언론인이자 역사학을 전공한 심규정 저자가 '천 년의 대필가'를 자임하며 빚어낸 역사 팩션(Faction) 형태의 생태 비망록이다.
이 책에서 반계리 은행나무는 단순한 고목이나 관람 대상을 넘어 1,319년이라는 억겁의 세월을 견뎌낸 살아 있는 역사의 증인으로 등장한다. 왕조의 흥망성쇠와 숱한 전쟁, 인간사의 희로애락을 한자리에서 묵묵히 지켜본 거목의 뿌리와 줄기, 나이테 속에는 인간의 한 생으로는 감히 헤아릴 수 없는 시간이 켜켜이 스며 있다.
저자는 책 속에서 이 나무를 과거를 고스란히 품어낸 ‘숨 쉬는 타임캡슐’이자, 누구나 다가가 펼쳐 읽을 수 있는 ‘열려 있는 아카이브’로 정의한다. 계절마다 푸른 수액을 밀어 올리며 새로운 잎을 틔우듯, 나무는 과거를 품은 채 오늘을 살아가고 미래를 향해 끊임없이 시간을 쌓아 올린다.
책은 금성대군의 비극이 서린 사료적 내용부터 현대 문명이 가져온 위협과 파괴의 현장에 이르기까지, 거목이 목도한 시대의 명암을 입체적으로 풀어낸다. 압도적인 황금빛 잎사귀 뒤에 잠겨 있던 침묵의 기록들을 길어 올려 modern 독자들에게 생명의 존엄함과 인내의 미학을 전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