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세포 연구자가 생로병사를 과학과 불교의 언어로 읽다

신정희 기자

등록 2026-10-25 17:18

세포 속에서 찾은 다시 시작할 용기

배수경 부산대 교수 신간 『우리는 모두 하나의 세포였다』(담앤북스)



가능성은 닫힌 것이 아니라 잠시 접혀 있을 뿐이다. "이 나이에 다시 시작해도 될까." 요즘 많은 이들이 스스로 던지는 질문이다. 커리어를 바꾸기엔 늦은 것 같다. 하루는 제자리에 멈춰 있다. 이미 너무 굳어버린 것 같다. 이 질문에 한 생물학자가 답을 내놓았다. 답은 뜻밖에도 우리 몸속 세포에 있다.


배수경 부산대학교 교수가 신간 『우리는 모두 하나의 세포였다』(담앤북스)를 펴냈다. 30년 넘게 현미경으로 세포를 들여다본 저자의 첫 인문 교양서다. 줄기세포, 유전자, 노화, 질병. 생명과학의 최전선 주제를 인간의 삶과 불교적 사유에 이어 풀어냈다.


책은 생(生)·노(老)·병(病)·사(死)의 네 흐름을 따라간다. 세포의 일생과 우리 삶의 궤적은 닮았다. 세포 하나에도 태어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전 과정이 들어 있다.


저자는 세포의 소멸을 쇠퇴로만 보지 않는다. 소멸은 새로운 순환의 시작이다. 변화는 삶이 흘러가는 한 과정이다. 저자는 이 사실을 감상이 아닌 과학의 언어로 보여준다.


구성이 독특하다. 각 장은 과학적 사실에서 출발한다. 이어 일상의 풍경을 지나 불교적 사유에 닿는다.


대표적인 장면이 역분화다. 2006년 일본의 야마나카 신야 교수는 다 자란 피부세포에 유전자 몇 개를 넣었다. 세포는 다시 무엇이든 될 수 있는 상태로 돌아갔다. 한번 굳어진 세포는 되돌릴 수 없다는 생물학의 오랜 믿음이 무너진 순간이다. 이 발견은 노벨상으로 이어졌다. 저자는 여기서 묻는다. 다 정해진 것 같은 지금의 나도 저 세포처럼 아직 유연하지 않을까.


저자는 줄기세포의 원리를 연기(緣起)와 잇는다. 세포의 운명은 안에 고정되어 있지 않다. 주변 환경이 주는 조건과 신호에 따라 매 순간 달라진다. 원인과 조건이 만나 결과를 이룬다는 불교의 가르침과 닮았다.


책은 이렇게 적는다. "세포는 결코 홀로 존재하지 않는다. 수십조 개의 세포가 모여 몸이라는 하나의 거대한 공동체를 이루고, 서로 의존하며 살아간다."


지금의 나는 고정된 존재가 아니다. 지금의 조건이 빚어낸 하나의 모습이다. 조건이 바뀌면 나도 달라진다. 세포가 과학으로 증명한 것을 불교는 오래전부터 말해왔다.


이 책은 값싼 위로를 건네지 않는다. 과학의 사실을 하나씩 짚으며 답을 찾는다. 그러다 보면 알게 된다. 정체되어 있다고 느낀 순간에도 몸속 세포는 쉬지 않고 움직이고 있었다.


저자 배수경 교수는 부산대학교 분자생물학과에서 학·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일본 교토대학교와 미국 국립보건원(NIH)에서 박사 후 과정을 마쳤다. 현재 부산대학교 치과대학·치의학전문대학원 교수로 있다. 줄기세포와 암세포, 세포 노화를 연구하며 과학과 인문을 잇는 강의와 글쓰기를 이어오고 있다.


커리어를 다시 고민하는 사람. 반복되는 하루에 지친 사람. 오래 제자리인 것 같아 답답한 사람. 책은 이들에게 같은 이야기를 건넨다. 변화는 특별한 사건이 아니라 생명이 원래 가진 능력이라고. 닫힌 줄 알았던 문은 접혀 있었을 뿐이다. 세포는 그 사실을 증명하고, 책은 그 사실을 우리에게 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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