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파동 골목 모퉁이의 작은 편의점 ALWAYS. 서울역 노숙인이던 사내가 이곳의 야간 알바가 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주요 서점 종합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르고 해외 18개국에 판권이 수출된 김호연 작가의 『불편한 편의점』이 벚꽃 에디션으로 다시 독자를 찾았다. 소설은 줄거리보다 문장으로 먼저 기억되는 책이다. 책 속 장면을 따라가며 이 작품이 오래 사랑받는 이유를 살펴본다.
알코올성 치매로 과거를 잃은 독고는 지갑을 찾아준 인연으로 70대 편의점 사장 염 여사를 만난다. 일을 해달라는 제안에 그는 머뭇거리며 되묻는다. "나를 나도 모르는데…… 믿을 수 있어요?" 정년퇴임한 역사 교사인 염 여사의 대답은 짧다. "사람 보는 눈 있어요. 독고 씨는 술만 끊으면 잘할 수 있을 거예요." 모두가 외면하던 사람에게 건넨 이 믿음이 소설 전체를 움직이는 출발점이 된다.
말도 어눌하고 행동도 굼뜬 독고는 의외로 하룻밤 만에 담배 이름을 "구구단 외우듯" 줄줄 외워 20대 알바 시현을 놀라게 한다. 진상 손님을 물리치는 모습에 시현은 "통쾌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들과 대화가 끊겨 속을 태우던 오 여사에게는 삼각김밥 하나를 직접 사서 건네며 "편지…… 같이 줘요"라고 조언한다. 그 순간 오 여사에게 독고는 "착한 큰 개"처럼 보인다. 서툰 말투 아래 놓인 진심이 사람들의 마음을 하나씩 움직인다.
회사와 집 양쪽에서 존재감을 잃은 세일즈맨 경만은 편의점 야외 테이블의 '참참참' 혼술에서 위안을 얻는다. 독고가 마련해둔 온기 앞에서 그는 이렇게 느낀다. "경만은 왕따였지만 이곳에서만큼은 왕따가 아니었다." 슬럼프에 빠진 희곡작가 인경은 독고와 새벽마다 나눈 대화를 수첩에 적으며 "글을 쓸 수 있을 거라는 용기"를 되찾는다. 편의점을 팔아치우려는 염 여사의 아들 민식과 독고가 반말을 주고받는 장면에서는 작가 특유의 유머가 빛난다.
소설은 일곱 명의 시선으로 독고를 비춘 뒤 독고의 독백으로 끝을 맺는다. 코로나19가 대구를 덮친 시기, 기억을 되찾아가던 그는 이렇게 고백한다. "죽음이 창궐하자 삶이 보였다." 그에게 편의점은 "인간들의 주유소"였고, 그는 "기름만 넣은 것이 아니라 아예 차를 고쳤다". 고쳤으니 이제 다시 길을 가야 한다.
『망원동 브라더스』에 이은 '동네 이야기' 시즌 2인 이 작품은 손님과 직원이 서로에게 구원이 되는 공간을 그린다. 정여울 작가는 추천사에서 독고의 진짜 재능을 "많은 사람을 너끈히 구할 수 있는 눈물겹도록 따스한 마음"이라고 말했다. 국립중앙도서관 2022 올해의 책, 전국 37개 도시 올해의 책으로 선정됐고 연극과 뮤지컬로도 무대에 올랐다. 벚꽃 에디션은 삶은 관계이자 소통이고 행복은 곁에 있는 사람과 마음을 나누는 데 있다는 메시지를 봄날의 표지에 담아 다시 전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