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인류학자 출신 작가 엘리자베스 M. 토마스의 대표작 『세상의 모든 딸들』(원제: Reindeer Moon)은 국내에서만 200만 부 이상 판매되며 시대를 초월한 고전으로 자리 잡은 이 작품은, 후기 구석기시대를 살았던 한 여인의 삶을 통해 오늘날 여성의 정체성을 되묻는다.
저자는 1950년대 아프리카 칼라하리사막의 원주민 부시먼 부족과 함께 생활하며 얻은 인류학적 지식과 통찰을 바탕으로 이 소설을 집필했다. 시베리아 대륙의 가혹한 환경을 무대로 펼쳐지는 주인공 '야난'의 짧고도 격렬했던 삶은, 시대와 공간을 초과하여 여성이라는 존재가 짊어져 온 운명적 궤적을 선명하게 드러낸다.
이 소설의 배경은 인류가 막 지구에 자리를 잡아가던 약 2만 년 전, 후기 구석기시대다. 저자는 시베리아를 무대로, 짧지만 강렬했던 삶을 살다 간 주인공 야난의 이야기를 그려낸다. 출산 도중 목숨을 잃는 어머니가 어린 딸에게 남긴 유언은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메시지를 압축해서 보여준다. 남자가 고기와 오두막을 지배해 위대해 보일지 몰라도, 세상 모든 사람의 어머니인 여자는 그와 다른 방식으로 거룩하다는 것이다.
수만 년의 시간차에도 불구하고 이 이야기가 오늘의 독자에게 깊은 울림을 주는 이유는, 여자로 태어나 겪어야 했던 숙명적인 궤적이 시대를 초월해 반복돼왔기 때문이다. "엄마처럼 살지 않겠다"고 눈물로 다짐하던 딸들이 결국 어머니의 길을 되밟게 되는 그 아이러니를, 작품은 담담하지만 힘 있는 서사로 풀어낸다.
출산 중 목숨을 잃어가는 어머니가 어린 야난에게 남기는 유언은 이 소설을 관통하는 핵심 메시지를 담고 있다. "남자가 고기를 지배하고 오두막을 지배해서 여자보다 위대한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남자가 위대하다면 여자는 거룩하다. 왜냐하면 세상의 모든 딸들은 이 세상 모든 사람의 어머니이니까!"라는 문장은 태초의 야성 속에서도 훼손되지 않은 여성으로서의 자부심과 숭고함을 증언한다.
이 소설은 여성의 절망을 고발하는 비극에 머무르지 않는다. 가혹한 자연환경 속에서도 용기 있게 살아가는 원시인들의 원초적 생명력과, 주인공의 격렬했던 생애가 섬세하게 교차하며 오히려 깊은 감동을 만들어낸다. 구호를 앞세우지 않으면서도 여성의 존재와 헌신을 정면으로 응시하는 저자의 문장은 여성 독자뿐 아니라 남성 독자에게도 성평등의 본질적 관계를 돌아보게 한다.
미국 보스턴 출신인 작가는 스미스 여자대학과 래드클리프 여자대학에서 영문학과 인류학을 공부했다. 1950년대 초 문화인류학자였던 아버지를 따라 아프리카 칼라하리사막으로 이주해 부시먼의 삶을 오랫동안 관찰했으며, 이 경험을 바탕으로 쓴 『무해한 사람들(The Harmless People)』로 소수 인종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킨 바 있다. 이후 부시먼과 함께 살며 얻은 통찰을 시베리아라는 공간으로 옮겨 완성한 소설이 바로 『세상의 모든 딸들』이며, 이 작품은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됐다. 이어 발표한 『개들의 숨겨진 삶』은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목록에 40주 연속 이름을 올리며 저자를 미국을 대표하는 작가 반열에 올려놓았다.
3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꾸준히 읽히는 이 작품은, 먼 과거의 이야기를 통해 오늘을 사는 모든 딸들에게 "나는 누구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다시 던진다.
또한 이 책이 흥미로운 점은 작가가 구석기시대 인간과 동물, 특히 '개(늑대)' 사이의 원초적 관계를 문화인류학적 시선으로 세밀하게 포착해 내고 있다는 점이다.
작품 속에서 개는 인간에게 지배받는 가축이나 단순한 애완동물이 아니다. 구석기 환경에서 야생 늑대와 인간은 생존 경쟁을 벌이는 적대자이자, 가혹한 자연을 함께 견뎌내는 동반자로 그려진다. 주인공 야난과 동생이 부모를 잃고 버려진 오두막에서 야생 늑대 어미 및 새끼와 어쩔 수 없이 한 공간을 공유하며 공존을 모색하는 장면은, 훗날 야생 늑대가 인간과 길들여진 관계로 발전해 가는 '개의 가축화 과정'의 시초를 생생하게 상징한다.
작가의 세계관 내에서 인간과 동물 사이의 경계는 지극히 유연하다. 죽은 자의 영혼이 동물의 몸에 빙의하거나 동물의 형상으로 변신해 이승을 떠도는 영적 세계관이 바탕에 깔려 있다. 영혼이 된 야난 역시 동물들의 눈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며, 인간과 개(늑대)가 자연의 거대한 생명력 아래 서로의 영역과 규칙을 존중하고 교감하는 평등한 존재임을 보여준다.
이 작품과 함께 작가가 쓴 또 다른 책 『개들의 숨겨진 삶(The Hidden Life of Dogs)』에서도 문화인류학자 특유의 동물 행동 관찰력리 작품 전반에 녹아 있다. 인간 중심적인 시각에서 벗어나 늑대와 개의 원초적 야성, 인간과 동물이 나누는 언어 이전의 영적 유대감을 정교한 문장으로 그려냈다. 30년이 지났지만 『세상의 모든 딸들』(원제: Reindeer Moon)과 『개들의 숨겨진 삶(The Hidden Life of Dogs)』은 모든 사람에게 거듭 추천해주고 싶은 명작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