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이 말하는 진실 — 지아장커의 『천주정(天注定)』이 비춘 중국의 그림자

아모스 기자

등록 2026-09-05 15:31



조용한 사실주의자의 돌연변이


지아장커(賈樟柯)는 오랫동안 '변화하는 중국의 서기(書記)'로 불려온 감독이다. 『소무』, 『플랫폼』, 『스틸 라이프』, 『세계』로 이어지는 필모그래피는 도시화와 자본주의화의 물결 속에서 밀려나는 보통 사람들을 정적이고 관조적인 카메라로 응시해왔다. 


그런 그가 2013년, 돌연 유혈이 낭자한 앤솔러지 영화 『천주정(A Touch of Sin, 天注定)』을 들고 나타났을 때, 평단은 일제히 술렁였다. 제목 그대로 옮기면 '하늘이 정한 것'이라는 뜻이지만, 영어 제목은 무협 거장 킹 후(胡金銓) 감독의 1971년작 『협녀(A Touch of Zen)』를 정면으로 인용한다. 관조적인 다큐멘터리 작가가 갑자기 무협의 문법과 유혈의 스펙터클을 빌려온 셈이다.


이 영화는 2013년 칸 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되어 각본상을 수상했고, 이후 로튼 토마토에서 92명의 비평가 리뷰를 집계해 95%의 신선도를 기록하며 비평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었다. 로튼 토마토의 총평은 이 영화가 각본의 정교함보다는 액션 시퀀스의 안무가 두드러지며, 스타일리시한 폭력의 쾌감으로 거친 부분들을 밀어붙이는 데 성공했다고 요약한다. 하지만 이 영화가 던진 질문은 훨씬 무겁다 — 조용한 관찰자였던 감독은 왜 폭력을 선택했는가. 그리고 그 폭력은 과연 정당한가.


네 개의 실화, 하나의 중국


『천주정』은 느슨하게 연결된 네 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각은 실제로 중국에서 벌어진 사건들, 특히 웨이보(중국판 트위터) 등에서 회자된 뉴스를 원형으로 삼는다.


첫 번째 에피소드의 주인공 다하이(장우 분)는 산시성의 탄광촌에서 부패한 관리들과 광산주에게 맞서는 노동자 대표다. 마을 사람들의 몫이었던 이익이 관리들의 뇌물과 횡령으로 사라지는 것을 목격한 그는 베이징 중앙위원회에 고발하겠다고 선언하지만, 돌아오는 것은 조롱과 매수 시도뿐이다. 결국 그는 산탄총을 들고 마을을 돌며 자신을 무시했던 이들을 하나씩 처단한다. 이 이야기는 2001년 실제로 부패에 항의하며 살인을 저지른 후원하이(胡文海) 사건에 뿌리를 두고 있다.


두 번째 에피소드의 주인공 산얼(왕바오창 분)은 총으로 사람을 쏘고 금품을 빼앗는 것을 생업으로 삼는 유랑하는 살인자다. 설을 맞아 고향 충칭에 돌아와 가족과 시간을 보내지만, 다시 길을 떠나 낯선 이들을 무심하게 살해한다. 이는 2004년부터 2012년까지 여러 건의 살인과 강도를 저지른 실존 인물 저우커화(周克華) 사건을 변주한 것이다.


세 번째 에피소드의 샤오위(자오타오 분)는 후베이성의 사우나 안내원으로, 유부남 애인과의 관계에 지쳐 있다. 어느 날 그녀는 자신에게 성상납을 강요하며 폭행하는 지역 관리를 과일칼로 찔러 죽이고, 곧바로 경찰에 자수한다. 이 사건은 2009년 실제로 발생해 중국 전역의 여론을 뒤흔든 덩위자오(鄧玉嬌) 사건을 바탕으로 한다.


네 번째 에피소드의 샤오후이(뤄란산 분)는 광둥성의 공장 노동자로, 작업 중 사고를 낸 뒤 빚을 갚기 위해 여러 직장을 전전하다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이는 2010년부터 2013년 사이 폭스콘 공장에서 이어진 연쇄 노동자 자살 사건들을 참조하고 있다.


네 이야기는 표면적으로는 별개의 인물과 지역을 다루지만, 공통적으로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지점'에 도달한 개인이 폭력을 통해서만 자신의 존엄을 되찾으려 하는 구조를 공유한다.


무협의 옷을 입은 사실주의


지아장커 자신은 이 영화를 '동시대 중국을 위한 무협영화'라 부른 바 있다. 딥포커스리뷰(Deep Focus Review)의 평론은 이 지점을 정교하게 파고든다. 킹 후의 『협녀』가 협객들의 명예와 구도(求道), 불교적 초월을 다루는 사극이었다면, 지아장커의 『천주정』은 자본주의 체제 아래 부패와 굴욕, 절망에 노출된 인물들을 앤솔러지 형식으로 그린다는 점에서 표면적으로는 이질적으로 보인다. 그러나 평론은 자오타오가 칼을 쥐는 자세가 『협녀』의 여전사 쉬펑(徐楓)의 동작을 연상시킨다는 점, 그리고 이 영화가 경극(京劇)의 의상과 몸짓에서도 영향을 받았다는 학자 왕샤오핑의 지적을 인용하며, 지아장커가 리얼리즘적 소재에 영웅서사의 원형을 겹쳐놓고 있다고 분석한다.


사이트 앤 사운드(Sight & Sound)에 실린 앤드류 트레이시의 평론 역시 이 영화가 지아장커의 필모그래피 안에서 급진적 단절이라기보다는 연속성의 산물이라고 짚는다. 『플랫폼』, 『스틸 라이프』, 『아이 위시 아이 뉴』를 관통해온 잔잔한 애가(哀歌) 속에 흐르던 사회 비판의 저류가, 이 작품에 이르러 분노와 혐오의 교향곡으로 격렬하게 터져 나온 것뿐이라는 해석이다.


갈라진 비평 — 걸작인가, 과잉인가


『천주정』을 둘러싼 비평은 뜨거운 찬사와 날 선 유보가 공존한다.


뉴욕타임스의 마놀라 다지스(Manohla Dargis)는 이 영화가 비명 같은 헤드라인의 긴급함을 지니면서도 시각적 서정성과 감정적 무게, 그리고 개인의 권리에 대한 믿음으로 새겨져 있다고 평했다. LA타임스의 데니스 림(Dennis Lim) 역시 스타일은 달라졌을지언정, 이 영화가 딛고 있는 문제의식은 지아장커의 이전 작품들이 쌓아온 사회 비판 위에 세워져 있다고 지적한다.


NPR의 영화평은 이 작품을 '경극조(調)의 복수와 살인의 이야기'로 규정하며, 지아장커가 킹 후의 무협 영화에 경의를 표하면서도 아직 '중국의 타란티노'가 되지는 않았다고 평했다. 타임아웃(Time Out) 런던의 평론 역시 이 영화를 '지아장커의 가시 돋친 절규'라 부르며, 유혈이 그 순간에는 과도해 보일 수 있지만 누적될수록 힘과 예리함을 얻는다고 호평했다.


로저 에버트(RogerEbert.com)에 실린 마샤 매크레디의 리뷰는 이 영화가 고속철도 사고처럼 중국 정부가 쉬쉬해온 사건들을 텔레비전 화면 속 스쳐 지나가는 이미지로 슬쩍 담아내는 방식에 주목하며, 이런 장면이 스크린에 오른다는 사실 자체가 일종의 '작은 기적'이라고 표현했다. 할리우드 리포터의 칸 영화제 리뷰 역시 부유층과 빈곤층 사이에 벌어지는 격차, 그리고 그로 인한 절망과 폭력이라는 주제가 보편적 울림을 지닌다고 평가하면서도, 지아장커가 던지는 통찰이 모든 대목에서 고르게 힘을 발휘하지는 못한다고 조심스럽게 지적했다.


반면 버라이어티(Variety)의 칸 리뷰는 훨씬 회의적이다. 이 영화가 조용하고 예리한 관찰자로 이름을 알려온 감독에게 있어 '설득력은 다소 부족하지만 대담한 방향 전환'이라 평하며, 각기 다른 무게를 지닌 네 이야기가 불균질하게 묶여 있고 종국에는 그랑기뇰(그로테스크한 유혈극)의 영역으로 미끄러진다고 비판했다. 페이스트 매거진(Paste Magazine) 역시 이 작품을 지아장커가 처음으로 국영 상하이필름그룹의 지원을 받아 만든 '보다 상업적인 시도'로 규정하면서도, 그 기저에는 여전히 그의 오랜 관심사 — 급격한 경제 발전에 적응해야 하는 평범한 중국인들의 삶 — 가 자리하고 있다고 짚었다.


중국 안에서 보는 중국


시네마 이스케이피스트(Cinema Escapist)의 평론가는 이 영화가 칸에서 각본상을 받으며 국제적 갈채를 받는 동시에, 중국 정부로부터는 비난을 받는 이중적 위치에 놓여 있다고 평했다. 실제로 이 영화는 2013년 5월, 11월 9일 개봉이 예고되며 검열 통과라는 이례적인 소식으로 화제를 모았으나, 그해 12월까지도 최종 승인이 나지 않았다. 딥포커스리뷰에 따르면 중국영화국은 처음에는 개봉을 승인했다가, 이 작품이 '사회적 불안을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 속에 태도를 바꾼 것으로 알려졌다. 칸에서 각본상을 받은 영화가 정작 자국에서는 스크린에 오르지 못할 위기에 처했다는 사실은, 이 영화가 다루는 주제 — 침묵당한 자들의 폭발 — 를 영화 바깥에서 그대로 반복하는 아이러니로 읽힌다.


스크린 밖의 목소리들 — 관객이 남긴 흔적


비평가들의 평가 못지않게 흥미로운 것은 실제 관객들이 이 영화를 어떻게 받아들였는가이다. IMDb에 남겨진 리뷰들은 찬사와 실망, 그리고 그 사이의 복잡한 감정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한 관람객은 ACMI(호주 빅토리아 예술센터)에서 이 영화를 본 뒤, 지아장커의 과거작이 지녔던 명상적이고 서정적인 스타일을 그리워하는 동시에, 이 새로운 잔혹하고 냉소적인 접근 방식에도 매력을 느꼈다고 고백한다. 그는 이 영화의 살인 장면들이 모두 감독이 블로그에서 읽은 실제 사건에 기반했다는 점을 언급하며, 결국 이 영화는 소외와 계급 격차, 부패라는 하나의 거대한 주제를 담아내는 그릇이라고 평했다. 흥미롭게도 그는 이 영화를 김기덕 감독의 『피에타』와 나란히 놓으며, 두 작품 모두 폭력을 무겁게 다루면서도 상징적인 순간들을 통해 관객에게 사회 문제를 환기시키는 명상적인 태도를 잃지 않는다고 비교했다.


또 다른 리뷰어는 이 작품을 지아장커의 최고작으로 꼽으며, 실화에 기반했다는 사실이 오히려 사건들을 비현실적으로 느껴지게 만드는 동시에 주인공들에 대한 깊은 연민을 자아낸다고 썼다. 그는 이 영화 속에서 어떤 믿음도, 사랑도, 성취도 온전히 남아있지 않다는 점을 강조하며, 설령 인물들이 복수나 정의를 이뤄낸다 해도 그들은 씁쓸하고 공허한 채로 남는다고 분석했다. 특히 그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 — 경극 공연을 무심히 구경하는 군중의 얼굴을 비추며 '너 자신을 탓하라'는 대사가 반복되는 장면 — 을 지아장커가 침묵하는 관객, 즉 방관하는 중국인 전체를 향해 던지는 질문으로 해석했다.


세 번째 리뷰어는 이 영화를 '충격적이고 허무주의적인 중국 옴니버스'라 규정하며, 대부분의 중국 주류 영화가 프로파간다와 국가적 가치 선전에 몰두하는 것과 달리 이 작품은 훨씬 거칠고 침울하다고 평했다. 그는 네 이야기 중 장우가 연기한 다하이의 에피소드를 영화 『데스 위시』식의 복수극에 비유하며 가장 뛰어난 대목으로 꼽았다.


하지만 모든 관객이 이 영화에 완전히 설득된 것은 아니다. 한 관람객은 이 영화의 첫 1분이 그 해에 나온 웬만한 영어권 영화 전체보다 뛰어나다고 극찬하면서도, 전체적으로는 실망스러웠다고 털어놓는다. 그는 이 영화가 여러 개의 독립된 단편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이 오히려 깊이의 부족을 드러낸다고 지적하며, 각 이야기의 결말이 지나치게 손쉬운 인과응보로 처리된다는 점을 가장 큰 약점으로 꼽았다. 비슷한 맥락에서 또 다른 리뷰어는 감독이 너무 많은 것을 표현하려 한 나머지 영화가 다소 산만해졌다고 지적하며, 배우들의 편차 — 특히 왕바오창의 연기가 충분히 사나워 보이지 않는다는 점 — 를 아쉬움으로 언급하면서도 지아장커와 이 작품에 경의를 표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비교적 최근에 이 영화를 접한 한 리뷰어는 이 작품이 폭력 자체보다는 벼랑 끝에 몰린 사람들이 어떻게 폭력과 마주치게 되는지를 그린 슬라이스 오브 라이프 드라마에 가깝다고 재해석했다. 그는 이 영화가 IMDb나 레터박스드 같은 사이트에서 '액션'으로 분류되는 것이 다소 부적절하다고 지적하며, 폭력적인 사건과 죽음이 등장한다고 해서 그것이 곧 '액션'을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꼬집었다.


폭력을 빌려 말한 것


이처럼 엇갈리는 반응들을 관통하는 공통된 질문이 있다. 지아장커는 왜 관조적 리얼리즘의 자리에서 내려와 유혈의 스펙터클을 택했는가. 답은 아마도, 그가 그리고자 했던 현실 자체가 이미 폭력적으로 변해버렸다는 사실에 있을 것이다. 21세기 초 중국을 관류해온 압축적 경제성장은 부의 재분배 실패, 만연한 부패, 노동 착취라는 그림자를 남겼고, 그 그림자 속에서 개인이 선택할 수 있는 마지막 수단이 종종 폭력이었다는 사실을 이 영화는 냉정하게 기록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의 유혈은 장르적 쾌감을 위한 장치라기보다, 침묵을 강요당한 목소리가 터져 나오는 유일한 통로에 가깝다.


『천주정』은 2013년 카이에 뒤 시네마(Cahiers du Cinéma)가 선정한 그해의 톱10 영화에 이름을 올렸고, 2017년에는 뉴욕타임스가 선정한 '21세기 최고의 영화 25편' 중 하나로 재조명되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이 영화가 만들어졌던 순간의 논쟁적 열기는 가라앉았지만, 그 자리에는 하나의 질문이 여전히 남아 있다. 급격한 성장의 이면에서 존엄을 잃어가는 개인들에게, 사회는 폭력이 아닌 다른 출구를 마련해줄 수 있는가. 지아장커가 카메라를 통해 다시 던진 이 질문은, 중국이라는 특정한 시공간을 넘어 오늘날 우리 모두를 향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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