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책을 했습니다. 큰 소리를 내며 기차가 지나갑니다. 기차를 따라가던 눈길에 작은 마당이 보입니다. 마당 한가득 꽃밭입니다. 동네 이웃집 마당에 이렇게 예쁜 꽃밭이 있다는 걸 오늘 처음 알았습니다. 그냥 스쳐지났겠지요. 살면서 스쳐 지난 게 얼마나 많을까 잠시 자책도 했습니다.
지난 일요일 밭에 풀을 잡았습니다. 게을러 또는 바빠서 냅뒀던 풀은 무릎까지 자라 바닥이 보이지 않습니다. 에일리는 뱀 나올까 무섭다고 하더군요. 더 두고 봐서는 안 될 것 같아 몸에 익은 예초기를 들고 풀을 벴습니다. 칼날이 풀을 건드리니 힘없이 풀이 넘어집니다. 키만큼 자란 굵은 잡초도 예초기 칼날 몇 번을 버티지 못하고 옆으로 쓰러집니다.
풀을 베고 나면 가야할 곳이 있습니다.
밭의 풀을 모두 베고 예초기를 짊어진 채 밭을 거슬러 언덕을 올라갔습니다. 이 언덕을 넘어 가면 집이 너무 예뻐 10년 가까이 세들어 살았던 은행나무집이 나옵니다.
가는 길이 험합니다. 하우스 사이 좁은 길로 질러가면 되는데 좁은 하우스 길은 큰 나무가 바람에 자빠져 가지가 길을 막고 있습니다. 가지를 피해 하우스 옆동으로 가려는데 그 길은 자빠진 나무의 밑둥이 길을 막아 도저히 지나갈 수가 없습니다.
예초기를 메고 한참을 망설이다 가지를 헤치고 길을 뚫었습니다. 등에 맨 예초기가 걸리고, 옷이 걸리고, 팔이 긁히고 나서야 겨우 널찍한 마당 앞에 도착했습니다.
은행나무집 마당엔 잡풀이 웃자라 마당을 덮고 있습니다. 지혜롭고, 부지런했고, 손재주 뛰어났던 은행나무집 주인이 살아있었다면 상상할 수도 없는 일입니다.
먼저 떠난 그를 떠올리며 예초기 시동을 걸었습니다.
풀이 베고 있으려니 웃는 게 나이에 맞지 않게 해맑았던 은행나무집 주인의 얼굴이 떠오릅니다. 풀 베는 소리를 듣고 그의 아내가 나옵니다. 더운데 왠 고생이냐고 저를 말립니다. 저는 남편과 약속을 했다고 말하고 풀을 계속 벴습니다.
그가 떠나기 전, 수척한 모습을 보여주기 싫어했던 그를 보지 못하고 영정 사진과 마주했습니다. 영정사진을 보며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마당의 풀은 내가 잡을 테니 마음 편히 떠나시라'고요...
플을 베고 하우스 사이 지름길을 피해 한바퀴 돌아 밭으로 왔습니다. 밭에서 저를 본 에일리가 도대체 어디있었냐고 큰소리를 냅니다. 걱정과 안도의 느낌이 섞여있습니다. 풀 베러 간 제가 안 보이니, 더위에 풀 베다 지쳐 쓰러진 줄 알고 옆밭 할아버지까지 불러 저를 찾으러 다녔다더군요. 참...
남은 밭의 풀을 베고 있는데 둘째까지 옵니다. 아빠가 쓰러졌을지 모른다고 연락을 받은 둘째가 저를 찾으러 온 것이죠. 한참 웃었습니다.
에일리는 아직도 저를 모릅니다.
'힘들면 잽싸게 도망가면 도망갔지, 절대 쓰러질 때까지 일할 제가 아니란 걸요...'
남들도 다 아는 걸 왜 아직도 모르는지 저도 모르겠습니다. 무슨 말이든 해야 할 것 같아 한마디 했습니다.
"그러니까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있을 때 잘 해!"
김용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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