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량한 사막의 붉은 흙과 타오르는 태양 아래에서 인간은 어디까지 잔혹해질 수 있으며, 생존을 향한 갈망은 어떻게 무기가 되는가. 조나스 쿠아론 감독의 2015년 작 영화 디시에르토(Desierto)는 멕시코와 미국의 국경지대라는 지정학적 비극의 공간을 배경으로, 인간 사냥이라는 충격적인 소재를 다룬 서스펜스 스릴러다.
이 작품은 단순히 국경을 넘으려는 자와 이를 막으려는 자의 대립을 넘어, 미국 사회가 마주한 제노포비아(외국인 혐오)의 광기와 고립된 인간의 본질적인 공포를 미니멀리즘적인 연출로 극대화했다. 실제로 조나스 쿠아론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이 영화를 "대사와 인물이 거의 없이도 더 큰 이야기를 전달하는 액션 영화"로 구상했다고 밝힌 바 있다. 1시간 반에 달하는 러닝타임 동안 영화는 구구절절한 설명이나 정치적 수사를 배제한 채, 오직 헐떡이는 숨소리와 살벌한 총성, 그리고 끝없는 모래바람으로 관객의 숨통을 조여온다.
디시에르토는 개봉 당시 평단과 관객 사이에서 뜨거운 논쟁을 불러일으켰으며, 2015년 제40회 토론토국제영화제에서 국제영화비평가연맹(FIPRESCI)상-특별한 발표 부문을 수상하고, 2016년 제8회 본 국제스릴러영화제에서 심사위원 특별상을 공동 수상하는 등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멕시코는 이 작품을 제89회 아카데미 시상식 외국어영화상 부문 자국 출품작으로 선정하기도 했다(다만 최종 후보에는 오르지 못했다).
알폰소 쿠아론과 조나스 쿠아론의 세계
조나스 쿠아론 감독을 논할 때 그의 아버지이자 거장인 알폰소 쿠아론의 이름을 빼놓을 수는 없다. 알폰소 쿠아론은 <칠드런 오브 맨>, <로마>, <해리포터와 아즈카반의 죄수> 등을 연출하며 아카데미 감독상을 두 차례(<그래비티>, <로마>) 수상한 영화계의 거목이다.
조나스 쿠아론은 이러한 아버지의 예술적 DNA를 고스란히 물려받았으며, 실제로 아버지가 연출한 전설적인 우주 생존 영화 <그래비티>(2013)의 각본을 공동 집필하며 전 세계에 자신의 존재감을 각인시켰다.
<그래비티>는 우주라는 극한의 공간에서 홀로 살아남아야 하는 라이언 스톤 박사(산드라 블록 분)의 처절한 사투를 그린 작품이다. 이 영화 속에는 전 세계 관객들의 심금을 울린 숨겨진 명장면이 존재하는데, 바로 그린란드의 이누이트(Inuit)족 남성과의 무선 교신 장면이다. 정확히는 영화 속에 이누이트족 남성이 직접 모습을 드러내지는 않는다. 주인공 라이언 스톤 박사가 지구로 귀환하기 위해 소유즈 우주선 안에서 필사적으로 무선을 시도하던 중 우연히 연결된 지구의 인물로 등장할 뿐이다.
이 이누이트족 남성의 이름은 '아난강'으로, 그린란드의 외딴 피오르드에 거주하며 썰매개들과 함께 생활하는 어부다. 스톤 박사와 아난강은 서로의 언어가 통하지 않아 깊은 대화를 이어가지 못한다. 하지만 정적만 가득한 우주 공간에서 울려 퍼지는 아난강의 목소리와 그의 곁에서 들려오는 아기 울음소리, 그리고 개 짖는 소리는 우주에서 고립되어 죽음을 앞둔 스톤 박사에게 커다란 심적 위안과 삶에 대한 마지막 의지를 안겨주는 명장면으로 꼽힌다.
이 장면에 대한 깊은 인기로 인해, 조나스 쿠아론은 이누이트 어부 아난강의 시점에서 바라본 단편 영화 <아난강(Aningaaq)>을 스핀오프 형식으로 직접 연출하기도 했다. 해당 단편 영화에서는 아난강이 얼어붙은 피오르드에서 늙고 병든 썰매개를 안락사시켜야 하는 상황에 놓인 채, 우주에서 걸려온 스톤 박사의 무선을 받는 장면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광막한 우주와 얼어붙은 북극이라는 대척점의 공간에서 일어난 두 인간의 보이지 않는 연결은 조나스 쿠아론이 인간의 고립과 생존, 그리고 소통의 부재라는 주제에 얼마나 깊은 관심을 두고 있는지를 증명하는 대목이다.
이러한 영화적 탐구는 조나스 쿠아론의 단독 연출작인 디시에르토로 이어진다. <그래비티>가 무중력의 끝없는 우주 공간을 배경으로 한 생존기였다면, 디시에르토는 중력이 지배하는 가장 뜨겁고 황량한 지구의 사막을 배경으로 한 생존기다. 우주선이라는 폐쇄 공간에서 뻗어 나오는 심리적 압박감이 디시에르토에서는 숨을 곳 하나 없는 광활한 사막의 개방감 속에서 역설적인 폐쇄 공포로 치환된다. 거장의 그늘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날 선 감각을 증명해 낸 조나스 쿠아론은 디시에르토를 통해 생존 스릴러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지옥이 된 낙원, 멕시코 국경 사막의 잔혹한 묵시록
영화의 줄거리는 매우 직관적이고 군더더기가 없다. 멕시코와 미국의 국경지대를 넘어 미국에 두고 온 아들을 다시 만나기 위해 밀입국을 시도하는 주인공 '모세'(가엘 가르시아 베르날 분)는 다른 이주민들과 함께 트럭을 타고 국경으로 향한다. 하지만 이들을 태운 트럭이 갑작스럽게 고장 나면서, 이주민들은 도보로 살벌한 국경지대의 사막을 건너기 시작한다.
이들이 마주한 것은 가혹한 자연환경만이 아니었다. 사막 한가운데에는 토끼 사냥으로 소일하며 분노와 피해의식, 그리고 비뚤어진 애국심으로 살아가는 미국인 킬러 '샘'(제프리 디언 모건 분)이 버티고 있었다. 샘은 자신의 영역에 발을 들인 멕시코 이주민들을 마치 유해동물 사냥하듯 스코프가 달린 M1 개런드 소총으로 무참히 총살하기 시작한다. 이주민 무리를 몰살시킨 뒤 그가 총을 내려놓으며 내뱉는 대사는 짧지만 소름 끼치는 여운을 남긴다.
"Welcome to the land of the free." (자유의 땅에 온 걸 환영한다.)
순식간에 사막은 피로 물들고, 비명과 총성이 난무하는 학살의 현장으로 변모한다. 숨을 죽이고, 뜨거운 땅바닥을 기어서 처절하게 도망친 끝에 가까스로 살아남은 모세와 생존자 아델라는 자신들을 끊임없이 겨냥하는 킬러의 총구와 그의 사나운 사냥개 '트래커'를 피하기 위해 몸을 숨길 곳을 찾는다. 그러나 사막에는 몸을 완전히 숨길 만한 거대한 엄폐물이 없다. 선인장과 거친 바위틈, 뜨거운 태양볕 아래에서 쫓고 쫓기는 광활한 사막의 치열한 생존 스릴러가 본격적으로 전개된다.
영화는 오프닝부터 사막의 아름다움과 잔혹함을 동시에 포착한다. 조나스 쿠아론 감독은 이 사막을 단순한 배경이 아닌, 인물들을 압박하는 하나의 거대한 등장인물로 고안했다. 이주민들에게 사막은 아메리칸드림을 향해 가기 위해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통과의례이자 목숨을 걸어야 하는 도박판이며, 킬러 샘에게는 자신의 왜곡된 정의를 실현하는 피비린내 나는 사냥터다.
광기와 침묵의 대결 — 대사보다 강렬한 인물들
디시에르토가 지닌 강력한 서스펜스의 중심에는 제프리 디언 모건이 연기한 저격수 샘이 있다. 샘은 단순한 악당이라기보다는 현대 미국 사회, 나아가 전 세계적으로 고개를 들고 있는 극우 민족주의와 인종차별적 광기가 외형화된 인물이다. 그는 자신의 트럭에 성조기를 걸어두고, 컨트리음악을 들으며 사막을 배회한다.
그에게 국경을 넘는 이주민들은 법을 어긴 범법자를 넘어, 자신의 순결한 영토를 더럽히는 외래종에 불과하다. 흥미로운 지점은, 이 영화가 인물의 내면을 설명하는 대사를 극도로 아꼈다는 사실이다. 감독은 인터뷰에서 각본을 쓰며 캐릭터들의 대사와 서사를 최소화하는 대신, 몸짓과 행동, 그리고 사막이라는 환경 자체로 이야기를 전달하고자 했다고 밝혔다.
그 결과 샘이 내뱉는 몇 안 되는 말들—예컨대 앞서 언급한 "자유의 땅에 온 걸 환영한다"는 한마디—은 오히려 그가 가진 소유욕과 배타성, 그리고 뒤틀린 정의감을 더욱 선명하게 드러낸다. 원주민의 피와 이민자들의 노동력으로 세워진 미국의 역사를 망각한 채, 자신이 딛고 선 땅에 대한 맹목적인 소유권을 주장하는 그의 태도는 현대 제노포비아의 논리적 모순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반면, 가엘 가르시아 베르날이 연기한 모세는 샘의 광기에 맞서는 인간성의 마지막 보루다. 모세는 거창한 정치적 이념이나 혁명을 위해 국경을 넘는 것이 아니다. 그의 품에는 미국에 두고 온 아들이 건네준, 목소리가 나오는 곰 인형이 들어있다. 오직 가족을 다시 만나고, 아버지로서의 책임을 다하기 위해 그는 목숨을 걸고 사막에 들어섰다. 샘의 무차별적인 저격으로 동료들이 순식간에 목숨을 잃는 아비규환 속에서도, 모세는 두려움에 마비되기보다 생존을 위한 본능을 깨운다. 그는 말보다 행동으로 자신의 의지를 증명하는 인물이며, 이 침묵의 밀도야말로 영화가 관객에게 전달하려는 실존적 공포와 생존 의지를 가장 효과적으로 응축한 지점이다.
거친 자연과 소리가 만들어내는 서스펜스
디시에르토에 대한 국내외 평단과 관객들의 공통적인 평가는 이 영화가 인물들의 말이나 대사보다는 황량한 사막의 환경, 사냥개의 거친 숨소리, 그리고 총성이 만들어내는 압도적인 긴장감이 대사를 넘어선 묵직한 사회적 메시지를 전달한다는 점이다. 영화는 플래시백이나 인물들의 과거사를 설명하는 구구절절한 독백을 과감히 생략했다. 인물들의 성격은 그들이 위기 상황에서 내리는 선택과 육체적인 반응을 통해 직관적으로 드러난다.
특히 사냥개 '트래커'의 존재감은 엄청나다. 사람이 접근하기 힘든 바위틈까지 냄새를 맡으며 맹렬하게 쫓아오는 사냥개의 거친 숨소리와 으르렁거리는 소리는 사막의 고요함을 깨뜨리며 관객들의 말초신경을 자극한다.
촬영감독 다미안 가르시아는 사막의 거친 질감과 인물들의 살갗에 흘러내리는 땀방울, 핏자국을 극도로 사실적으로 포착해 냈다. 낮에는 살을 태울 듯한 폭염으로, 밤에는 뼈를 깎는 듯한 추위로 다가오는 사막의 이중성은 인간이 만든 국경선이라는 장벽이 자연 앞에서는 얼마나 무력하고 부질없는 것인지를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장르적 쾌감과 정치적 은유 사이의 엇갈린 평가
디시에르토에 대한 비평가들의 반응은 실제로 크게 엇갈렸다(로튼토마토 63%, 메타크리틱 51점의 '평이하거나 엇갈린 평가'). 로저 이버트닷컴 등 일부 매체는 시대적 이슈를 정면으로 다룬 소재의 대담함은 인정하면서도, 인물의 동기와 서사가 지나치게 단순화되어 있다는 점, 그리고 초반부의 신묘한 명사수였던 샘이 후반부로 갈수록 총을 자주 빗맞히는 등 개연성이 흔들린다는 점을 아쉬움으로 꼽았다. 반면 다른 평자들은 대사를 극도로 절제한 미니멀리즘 연출과 사막이라는 공간을 활용한 추격전의 밀도에 높은 점수를 주었다.
관객들의 반응 역시 뚜렷하게 갈렸다. 많은 관객이 이 영화가 다루는 현실적인 공포—실제로 존재할 법한 국경 지역의 폭력—에서 오는 몰입감을 높이 평가한 반면, 일부는 영화가 미국인을 지나치게 일차원적인 인종차별적 인물로 그렸다는 점, 국경·이민 문제가 지닌 복잡한 정책적 맥락을 단순화했다는 점을 비판하기도 했다.
이 영화는 현재 진행형이다
디시에르토의 결말에서, 살아남은 모세는 부상당한 아델라를 등에 업고 소금 호수를 건너 마침내 국경 너머 문명의 흔적을 향해 나아간다. 처절한 사투 끝에 살아남은 자와 사막의 모래더미 속에 영원히 잠든 자의 명암이 교차하는 순간, 관객들은 깊은 한숨과 함께 묵직한 질문을 마주하게 된다. 인간이 만든 가상의 선인 '국경'은 도대체 누구를 위한 것이며, 그 선을 지키기 위해 혹은 넘기 위해 흘리는 수많은 피의 대가는 과연 정당한가.
17세기에 자신들도 이민자에 불과했던, 아니 원주민 학살자였던 미국인들이, 오늘은 사상 최대 규모의 이민세관단속국(ICE) 요원을 배치하여 '샘'(제프리 디언 모건 분)과 같은 폭력으로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나서고 있다. 그런 점에서 2015년 작 디시에르토(Desierto)는 영화로 끝나지 않고 현재 진행 중인 현실이다.
아모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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