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량한 사막의 붉은 흙과 타오르는 태양 아래에서 인간은 어디까지 잔혹해질 수 있으며, 생존을 향한 갈망은 어떻게 무기가 되는가.
조나스 쿠아론 감독의 2015년 작 영화 디시에르토(Desierto)는 멕시코와 미국의 국경지대라는 지정학적 비극의 공간을 배경으로, 인간 사냥이라는 충격적인 소재를 다룬 서스펜스 스릴러다.
이 작품은 단순히 국경을 넘으려는 자와 이를 막으려는 자의 대립을 넘어, 미국 사회가 마주한 제노포비아(외국인 혐오)의 광기와 고립된 인간의 본질적인 공포를 미니멀리즘적인 연출로 극대화했다. 1시간 반에 달하는 러닝타임 동안 영화는 구구절절한 설명이나 정치적 수사를 배제한 채, 오직 헐떡이는 숨소리와 살벌한 총성, 그리고 끝없는 모래바람으로 관객의 숨통을 조여온다.
디시에르토는 개봉 당시 평단과 관객 사이에서 뜨거운 논쟁을 불러일으켰으며, 2015년 제40회 토론토국제영화제에서 국제영화비평가연맹(FIPRESCI)상-특별한 발표 부문을 수상하고, 2016년 제8회 본 스릴러 국제영화제에서 심사위원 상을 거머쥐는 등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알폰소 쿠아론과 조나스 쿠아론의 세계
조나스 쿠아론 감독을 논할 때 그의 아버이자 거장인 알폰소 쿠아론의 이름을 빼놓을 수는 없다. 알폰소 쿠아론은 <칠드런 오브 맨>, <로마>, <하리포터와 아즈카반의 죄수> 등을 연출하며 아카데미 감독상을 두 차례나 수상한 영화계의 거목이다.
조나스 쿠아론은 이러한 아버지의 예술적 DNA를 고스란히 물려받았으며, 실제로 아버지가 연출한 전설적인 우주 생존 영화 <그래비티>(2013)의 각본을 공동 집필하며 전 세계에 자신의 존재감을 각인시켰다.
<그래비티>는 우주라는 극한의 공간에서 홀로 살아남아야 하는 라이언 스톤 박사(산드라 블록 분)의 처절한 사투를 그린 작품이다. 이 영화 속에는 전 세계 관객들의 심금을 울린 숨겨진 명장면이 존재하는데, 바로 북극의 소수민족인 이누이트(Inuit)족 남성과의 무선 교신 장면이다. 정확히는 영화 속에 이누이트족 남성이 직접 모습을 드러내지는 않는다. 주인공 라이언 스톤 박사가 지구로 귀환하기 위해 소유즈 우주선 안에서 필사적으로 무선을 시도하던 중 우연히 연결된 지구의 인물로 등장할 뿐이다.
이 이누이트족 남성의 이름은 ‘아난강’으로, 그린란드에 거주하는 사냥꾼이다. 스톤 박사와 아난강은 서로의 언어가 통하지 않아 깊은 대화를 이어가지 못한다. 하지만 정적만 가득한 우주 공간에서 울려 퍼지는 아난강의 목소리와 그의 곁에서 들려오는 아기 울음소리, 그리고 개 짖는 소리는 우주에서 고립되어 죽음을 앞둔 스톤 박사에게 커다란 심적 위안과 삶에 대한 마지막 의지를 안겨주는 명장면으로 꼽힌다.
이 장면에 대한 깊은 인기로 인해, 조나스 쿠아론은 이누이트 사냥꾼 아난강의 시점에서 바라본 단편 영화 <아난강(Aningaaq)>을 스핀오프 형식으로 직접 연출하기도 했다.
해당 단편 영화에서는 아난강이 얼어붙은 피오르드에서 병든 개를 안락사시키려던 중 우주에서 걸려온 스톤 박사의 무선을 받는 상황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광막한 우주와 얼어붙은 북극이라는 대척점의 공간에서 일어난 두 인간의 보이지 않는 연결은 조나스 쿠아론이 인간의 고립과 생존, 그리고 소통의 부재라는 주제에 얼마나 깊은 관심을 두고 있는지를 증명하는 대목이다.
이러한 영화적 탐구는 조나스 쿠아론의 단독 연출작인 디시에르토로 이어진다. <그래비티>가 무중력의 끝없는 우주 공간을 배경으로 한 생존기였다면, 디시에르토는 중력이 지배하는 가장 뜨겁고 황량한 지구의 사막을 배경으로 한 생존기다. 우주선이라는 폐쇄 공간에서 뻗어 나오는 심리적 압박감이 디시에르토에서는 숨을 곳 하나 없는 광활한 사막의 개방감 속에서 역설적인 폐쇄 공포로 치환된다. 거장의 그늘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날 선 감각을 증명해 낸 조나스 쿠아론은 디시에르토를 통해 생존 스릴러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지옥이 된 낙원, 멕시코 국경 사막의 잔혹한 묵시록
영화의 줄거리는 매우 직관적이고 군더더기가 없다. 멕시코와 미국의 국경지대를 넘어 미국에 있는 아들을 만나기 위해 밀입국을 시도하는 주인공 '모세'(가엘 가르시아 베르날 분)는 다른 이주민들과 함께 트럭을 타고 국경으로 향한다. 하지만 이들을 태운 트럭이 갑작스럽게 고장 나면서, 이주민들은 도보로 살벌한 국경지대의 사막을 건너기 시작한다.
이들이 마주한 것은 가혹한 자연환경만이 아니었다. 사막 한가운데에는 사냥으로 끼니를 해결하며 분노와 피해의식, 그리고 비뚤어진 애국심으로 살아가는 미국인 킬러 '샘'(제프리 디언 모건 분)이 버티고 있었다. 샘은 무전기로 국경 수비대의 동향을 살피며, 자신의 영역에 발을 들인 멕시코 이주민들을 마치 유해동물 사냥하듯 스코프가 달린 장총으로 무참히 총살하기 시작한다.
순식간에 사막은 피로 물들고, 비명과 총성이 난무하는 학살의 현장으로 변모한다. 숨을 죽이고, 뜨거운 땅바닥을 기어서 처절하게 도망친 끝에 가까스로 살아남은 모세와 몇몇 생존자들은 자신들을 끊임없이 겨냥하는 킬러의 총구와 그의 사나운 사냥개 '트래커'를 피하기 위해 몸을 숨길 곳을 찾는다. 그러나 사막에는 몸을 완전히 숨길 만한 거대한 엄폐물이 없다. 선인장과 거친 바위틈, 뜨거운 태양볕 아래에서 쫓고 쫓기는 광활한 사막의 치열한 생존 스릴러가 본격적으로 전개된다.
영화는 오프닝부터 사막의 아름다움과 잔혹함을 동시에 포착한다. 카메라가 비추는 국경의 새벽녘은 장엄하지만, 해가 뜨는 순간 그곳은 물 한 모금조차 허락하지 않는 지옥으로 돌변한다. 조나스 쿠아론 감독은 이 사막을 단순한 배경이 아닌, 인물들을 압박하는 하나의 거대한 등장인물로 고안했다. 이주민들에게 사막은 아메리칸드림을 향해 가기 위해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통과의례이자 목숨을 걸어야 하는 도박판이며, 킬러 샘에게는 자신의 왜곡된 정의를 실현하는 피비린내 나는 사냥터다.
◇광기와 집착의 언어, 인간 사냥꾼 샘의 대사
디시에르토가 지닌 강력한 서스펜스의 중심에는 제프리 디언 모건이 연기한 저격수 샘이 있다. 샘은 단순한 악당이라기보다는 현대 미국 사회, 나아가 전 세계적으로 고개를 들고 있는 극우 민족주의와 인종차별적 광기가 외형화된 인물이다. 그는 자신의 트럭에 성조기를 걸어두고, 컨트리음악을 들으며 사막을 배회한다.
그에게 국경을 넘는 이주민들은 법을 어긴 범법자를 넘어, 자신의 순결한 영토를 더럽히는 외래종에 불과하다. 영화 속에서 샘이 사냥개 트래커와 함께 이민자들을 추격하며 내뱉는 대사들은 이민자에 대한 왜곡된 적대감과 광기를 고스란히 드러낸다.
"여긴 내 땅이다. (This is my land.)"
이 한 마디는 샘이 가진 소유욕과 배타성의 핵심을 찌른다. 그는 국가의 법집행기관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스스로를 국경의 주인이자 수호자로 임명했다. 원주민의 피와 이민자들의 노동력으로 세워진 미국의 역사를 망각한 채, 현재 자신이 딛고 선 땅에 대한 맹목적인 소유권을 주장하는 이 대사는 현대 제노포비아의 논리적 모순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내가 말했지, 여긴 너희 집이 아니라고. (I told you, this is not your home.)"
쓰러진 이주민들을 향해 조소하듯 던지는 이 대사는 불법 이민자에 대한 철저한 배척을 의미한다. 집이라는 공간이 주는 안늑함과 안전함을 이주민들에게는 허락하지 않겠다는 선언이며, 그들을 영원한 이방인이자 부랑자로 낙인찍는 폭력적인 언사다. 샘의 총구는 이주민들의 신체만을 겨냥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품은 인간으로서의 존엄성과 정착의 희망까지 처단하려 한다.
"도망쳐 봐, 어차피 지치게 돼 있어. (Run, you're just going to get tired.)"
끝까지 살아남아 도망치는 모세를 향해 사냥개와 함께 압박을 가하며 뱉는 이 대사는 샘이 느끼는 가학적 유희와 절대적인 우월감을 대변한다.
움직이는 과녁을 쫓는 사냥꾼의 여유가 묻어나는 동시에, 가혹한 사막 환경 속에서 이주민들이 처한 물리적 한계를 정확히 꿰뚫고 있는 잔인한 예언이기도 하다. 샘에게 이 사냥은 정의의 실현인 동시에, 지루한 일상 속에서 자신의 존재 가치를 확인하는 광기 어린 오락이다.
◇살아남아야 하는 자의 맹세, 모세의 대사에 깃든 숭고한 생존 의지
반면, 가엘 가르시아 베르날이 연기한 모세는 샘의 광기에 맞서는 인간성의 마지막 보루다. 모세는 거창한 정치적 이념이나 혁명을 위해 국경을 넘는 것이 아니다. 그의 품에는 미국에 두고 온 아들의 장난감 곰 인형이 들어있다. 오직 가족을 다시 만나고, 아버지로서의 책임을 다하기 위해 그는 목숨을 걸고 사막에 들어섰다.
샘의 무차별적인 저격으로 동료들이 순식간에 목숨을 잃는 아비규환 속에서, 모세는 두려움에 마비되기보다 생존을 위한 본능을 깨운다. 극한의 상황에서 살아남기 위해, 그리고 집요하게 쫓아오는 샘의 추격을 뿌리치기 위해 그가 남은 생존자들과 스스로에게 던지는 다짐의 대사들은 영화의 정서적 기둥 역할을 한다.
"우린 절대 멈추지 않는다. (We don't stop.)"
이 대사는 단순히 물리적인 걸음을 멈추지 않겠다는 의미를 넘어선다. 발바닥이 부르트고 목이 타들어 가는 한이 있더라도, 샘의 총구가 머리 뒤를 겨냥할지라도 결코 삶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실존적인 선언이다. 멈추는 순간 다가오는 것은 죽음뿐임을 알기에, 모세는 절망의 무게에 짓눌리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
"그가 우리를 다 죽이려 해. 살아남으려면 움직여야 해. (He's trying to kill us all. We need to move if we want to survive.)"
상황을 냉정하게 인식하고 생존자들을 독려하는 이 대사는 영화의 긴장감을 최고조로 끌어올린다. 상대가 대화나 타협이 불가능한 맹수와 같은 존재임을 깨달은 순간, 모세는 철저하게 생존주의자로 거듭난다.
여기서 '움직임'은 곧 생명력의 다른 이름이다. 정적인 사막에서 움직이는 것은 표적이 되기 쉽지만, 움직이지 않으면 샘의 사냥개에게 목덜미를 내어주어야 한다. 이 역설적인 상황 속에서 모세의 대사는 관객들에게도 똑같은 생존의 압박감을 전달한다.
◇거친 자연과 소리가 만들어내는 서스펜스
디시에르토에 대한 국내외 평단과 관객들의 공통적인 평가는 이 영화가 인물들의 말이나 대사보다는 황량한 사막의 환경, 사냥개의 거친 숨소리, 그리고 총성이 만들어내는 압도적인 긴장감이 대사를 넘어선 묵직한 사회적 메시지를 전달한다는 점이다. 영화는 플래시백이나 인물들의 과거사를 설명하는 구구절절한 독백을 과감히 생략했다. 인물들의 성격은 그들이 위기 상황에서 내리는 선택과 육체적인 반응을 통해 직관적으로 드러난다.
특히 사냥개 '트래커'의 존재감은 엄청나다. 사람이 접근하기 힘든 바위틈까지 냄새를 맡으며 맹렬하게 쫓아오는 사냥개의 거친 숨소리와 으르렁거리는 소리는 사막의 고요함을 깨뜨리며 관객들의 말초신경을 자극한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날아오는 샘의 M1 개런드 소총의 날카로운 총성은 사막의 광활한 공간감 속에서 메아리치며 두려움을 배가시킨다.
촬영감독 다미안 가르시아는 자연광만을 활용하여 사막의 거친 질감과 인물들의 살갗에 흘러내리는 땀방울, 핏자국을 극도로 사실적으로 포착해 냈다. 낮에는 살을 태울 듯한 폭염으로, 밤에는 뼈를 깎는 듯한 추위로 다가오는 사막의 이중성은 인간이 만든 국경선이라는 장벽이 자연 앞에서는 얼마나 무력하고 부질없는 것인지를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조나스 쿠아론은 시각과 청각을 자극하는 미니멀리즘적 연출을 통해, 생존 스릴러가 도달할 수 있는 감각적 쾌감의 정점을 선사한다.
◇장르적 쾌감과 정치적 은유 사이의 찬사
디시에르토에 대한 비평가들의 리뷰는 영화가 가진 장르적 완성도와 그 밑바닥에 깔린 묵직한 시의성에 주목했다. 영화 비평 전문 사이트 및 IMDb의 외부 비평가 리뷰들을 살펴보면, 이 작품이 선사하는 날 것 그대로의 에너지를 높이 평가하는 목소리가 주를 이룬다.
많은 평론가들은 조나스 쿠아론이 <그래비티>에서 보여주었던 극한의 서스펜스 유도 능력을 지상으로 완벽하게 이식했다고 찬사를 보냈다. 한 평론가는 "디시에르토는 군더더기가 전혀 없는 린앤민(Lean and Mean) 스릴러의 모범 답안이다. 감독은 관객에게 정치적 올바름을 훈계하려 하지 않는다. 대신 킬러의 총구 앞에 관객을 직접 세워둠으로써, 국경 이주민들이 느끼는 날것의 공포를 피부로 느끼게 만든다"라고 평했다.
또한 제프리 디언 모건과 가엘 가르시아 베르날의 연기 대결에 대한 호평도 이어졌다. "가엘 가르시아 베르날은 대사 없이도 눈빛과 처절한 몸짓만으로 관객을 비극의 한복판으로 끌어들이는 대단한 흡인력을 보여준다"라는 평가와 함께, "제프리 디언 모건은 자칫 평면적일 수 있는 악역에 가공할 만한 위압감과 기괴한 현실성을 부여했다. 그가 연기한 샘은 공포영화의 슬래셔 살인마보다 더 무서운, 우리 이웃에 실제로 존재할 것 같은 증오의 괴물이다"라는 분석이 뒤를 이었다.
반면 일부 평론가들은 지나친 미니멀리즘으로 인해 서사의 깊이나 인물들의 입체성이 부족하다는 지적을 제기하기도 했다. 추격과 생존이라는 단조로운 구조가 반복되다 보니 중반 이후 서사의 긴장감이 다소 느슨해진다는 의견도 있었으나, 사막이라는 제한된 공간을 활용한 카메라 워킹과 음향 효과의 탁월함에는 대부분의 비평가가 이견 없이 동의했다.
◇관람객들, 현실적인 공포가 주는 충격과 뜨거운 논쟁
IMDb의 관람객 리뷰 페이지는 비평가들의 글보다 훨씬 더 감정적이고 뜨거운 논쟁의 장이 되었다. 영화가 다루는 멕시코-미국 국경의 이민자 문제와 인종 갈등이 실제 현실의 정치적 이슈와 밀접하게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많은 관객들은 영화가 주는 현실적인 공포에 큰 충격을 받았다고 토로했다. 한 관람객은 "영화를 보는 내내 손에 땀을 쥐었다. 좀비나 귀신이 나오는 호러 영화보다 디시에르토가 훨씬 더 무서운 이유는, 사막 저편에서 나를 향해 장총을 겨누는 미치광이가 실제로 존재할 수 있다는 현실감 때문이다"라며 영화의 몰입감을 극찬했다. 또 다른 관객은 "사냥개가 쫓아오는 장면에서는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음향 감독에게 상을 주어야 한다. 인간의 원초적인 생존 본능을 이토록 생생하게 자극하는 영화는 오랜만이다"라며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그러나 정치적 시각에 따른 관객들의 호불호 갈림도 명확히 드러났다. 일부 관객들은 영화가 미국인을 지나치게 가학적이고 인종차별적인 인물로 일반화했다며 불만을 표시하기도 했다. "국경 수비나 불법 이민 문제는 훨씬 복잡한 정책적, 사회적 맥락이 있는데 영화는 이를 단순히 '미친 미국인 사냥꾼 대 불쌍한 이주민'의 구도로 단순화했다"라는 비판적인 의견이 존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다수의 관객은 이 영화를 정치적 프로파간다가 아닌 하나의 뛰어난 서스펜스 영화로 소비해야 한다는 점에 주목했다. 한 리뷰어는 "이 영화를 정치적 잣대로만 재단하는 것은 감독의 연출력을 모독하는 일이다. 디시에르토는 본질적으로 '생존'에 대한 영화다. 국적과 인종을 떠나, 극한의 상황에 처한 인간이 발휘하는 끈질긴 생명력에 경의를 표하게 만드는 웰메이드 스릴러다"라며 작품의 본질을 짚어냈다.
◇이 영화는 현재 진행형
디시에르토의 마지막 장면에 이르러, 카메라는 마침내 사막을 벗어나 멀리 보이는 문명의 경계를 비춘다. 처절한 사투 끝에 살아남은 자와 사막의 모래더미 속에 영원히 잠든 자의 명암이 교차하는 순간, 관객들은 깊은 한숨과 함께 묵직한 질문을 마주하게 된다. 인간이 만든 가상의 선인 '국경'은 도대체 누구를 위한 것이며, 그 선을 지키기 위해 혹은 넘기 위해 흘리는 수많은 피의 대가는 과연 정당한가.
17세기에 자신들도 이민자에 불과했던, 아니 불법 이민자에 원주민 학살자였던 미국인들이, 오늘은 사상 최대 규모의 이민세관단속국, ICE 요원을 배치하여 '샘'(제프리 디언 모건 분)과 같은 폭력으로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나서고 있다. 그런 점에서 2015년 작 디시에르토(Desierto)는 영화로 끝나지 않고 현재 진행 중인 현실이다.
아모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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