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사는 종종 거대한 숫자의 장막 뒤로 본질을 숨긴다. 폭탄의 톤수, 사망자 수, 정권의 존속 기간 같은 기하학적 수치들은 그 이면에 숨겨진 개별 인간의 숨결과 고통을 소거하기 마련이다. 안젤리나 졸리가 감독하고, 캄보디아 출신의 인권 운동가이자 작가인 룽웅의 자전적 회고록을 바탕으로 한 2017년 작 넷플릭스 영화 <첫 번째 그들이 아버지를 죽였다>(First They Killed My Father)는 이 거대 역사학의 함정을 정면으로 돌파하는 작품이다.
영화는 1970년대 캄보디아를 피로 물들인 크메르 루즈 정권의 광기를 철저히 다섯 살 소녀 룽웅의 시선으로 포착해 낸다. 카메라의 앵글은 성인의 눈높이가 아닌, 끊임없이 흔들리고 낮게 가라앉은 유년의 눈망울에 머문다. 이 낮고 좁은 시선을 통해 관객이 마주하는 것은 20세기 역사상 가장 기괴하고 역설적이었던 비극의 전말이다.
이 영화의 미학적, 역사적 성취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영화가 끊임없이 환기하는 '역설(Paradox)'의 구조를 파헤쳐야 한다. 그것은 중립국을 향한 강대국의 무차별적 폭격이 어떻게 자국민을 도살하는 괴물 정권을 탄생시켰는가에 대한 정치적 역설이며, 새로운 세상을 꿈꾸었던 민중의 염원이 어떻게 거대한 강제 수용소라는 지옥으로 귀결되었는가에 대한 사회적 역설이다. 그리고 이 모든 파국 속에서 "우린 그냥 노동자야"라고 읊조리며 존재를 지워야만 했던 인간 존엄의 역설이다.
폭탄이 잉태한 괴물: 미국의 비밀 폭격과 크메르 루즈의 탄생
영화의 서사는 1975년 크메르 공화국의 수도 프놈펜에서 시작된다. 룽웅의 가족은 론놀 정권, 즉 크메르 공화국 소속 헌병대 대위였던 아버지 '파' 덕분에 비교적 유복하고 평화로운 일상을 누리고 있었다. 1970년 론놀 장군이 시아누크 국왕을 축출하고 왕정을 폐지한 이래, 캄보디아는 이미 공화정 체제였다는 점에서 아버지의 신분은 '왕당파'가 아니라 신생 공화국 정부 요인이었다는 사실이 이후 서사의 핵심 긴장을 이룬다.
팝 음악이 흐르고 아이들이 웃음 짓던 도시는 미국의 베트남 전쟁 여파로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된다. 미군이 북베트남군의 보급로를 차단한다는 명목으로 이웃 중립국이었던 캄보디아 영토에 무차별적인 폭격을 가했기 때문이다. 미국의 대사관 철수와 함께 프놈펜을 점령한 크메르 루즈군은 주민들에게 "미군의 폭격이 임박했으니 사흘간 도시를 떠나라"며 기만적인 강제 이주를 명령한다.
여기서 영화는 캄보디아 비극의 시발점을 명확히 짚고 넘어간다. 엔딩 크레딧에서 자막으로 제시되는 역사적 사실은 이 영화가 단순한 한 소녀의 수난사가 아님을 웅변한다. 미 공군 자료를 인용해, 270만 톤에 달하는 폭탄이 중립국이었던 캄보디아에 비밀리에 투하됐다는 사실이 제시된다.
이는 실제 역사적으로도 확인되는 수치로, 예일대학교 벤 커넌 교수 등의 연구에 따르면 1965년부터 1973년까지 미군이 캄보디아에 투하한 폭탄의 양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연합군이 독일과 일본(히로시마·나가사키 원폭 포함)에 투하한 폭탄 총량인 약 200만 톤을 웃돈다. 의회의 승인도 없이 감행된 이 비밀 폭격은 캄보디아 농촌 사회를 철저히 파괴했고, 수많은 민간인 사상자를 내며 반미 감정의 기름을 부었다.
영화 속 강제 이송 과정에서 만난 한 마을 주민의 대사는 당대 캄보디아 민중이 처했던 절박한 인식의 오류를 고스란히 드러낸다.
"여긴 미군한테 몇 년째 폭격 맞는 중이야. 며칠 연속으로 떨어질 때도 있지. 우리 집이 날아가고 소도 여럿 죽었어. 난 그래서 크메르 루주 혁명을 지지해. 새 캄보디아를 보고 싶으니까."
이 주민의 목소리는 크메르 루즈라는 극단적인 공산주의 무장 단체가 어떻게 민중의 지지를 얻으며 권력의 중심부로 진입할 수 있었는지를 설명하는 핵심적인 열쇠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미군의 폭탄을 피할 길이 없던 농민들에게, 반미와 자급자족, 그리고 평등한 농민 천국을 부르짖는 크메르 루즈는 구원자처럼 보였을 것이다. '새 캄보디아'에 대한 이 소박하고도 간절한 염원은 그러나 역사상 가장 잔혹한 배신으로 돌아온다. 미국의 폭격이라는 외부의 폭력이, 자국민 4분의 1을 학살하는 내부의 거대한 괴물을 잉태한 꼴이 되었기 때문이다.
"우린 그냥 노동자야": 생존을 위한 자아의 소멸
도시를 떠난 난민들은 자급자족을 표방하는 농업 공동체, 실상은 현대판 노예 수용소로 끌려간다. 지식인, 군인, 공무원, 도시 중산층은 '부르주아 반동'으로 낙인찍혀 즉결 처형되거나 숙청의 대상이 되었다. 룽웅의 아버지는 자신이 론놀 정권의 헌병대 요인이었다는 사실을 숨겨야만 했다. 그 신분과 세련된 언어는 이제 목숨을 앗아가는 단두대가 되었다.
강제 이송의 행렬 속에서 아버지가 딸 룽웅에게 조용히 건네는 대사는 이 지옥도에서 살아남기 위한 유일한 생존 규칙이었다.
"우린 그냥 노동자야. 말대꾸하지 말고 하라는 대로 해."
이 짧은 문장은 크메르 루즈 정권이 강제한 '인간 개조'의 본질을 압축한다. 정권은 개인의 역사, 지식, 감정, 심지어 가족 간의 유대마저 전면 부정했다. 모든 이는 똑같은 검은 옷을 입어야 했고, 사유재산은 몰수되었으며, 안경을 썼거나 손이 고우면 지식인이라는 이유로 처형당했다. 아버지가 딸에게 "우린 그냥 노동자"라고 주입하는 장면은 생존을 위해 스스로의 인간성을 거세하고 무지한 존재로 위장해야 하는 비극적 역설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말대꾸를 하지 않는 것, 즉 주체적인 언어를 잃고 기계적인 노동 세포로 전락하는 것만이 죽음의 지뢰밭을 피해 가는 유일한 방법이었던 것이다.
영화는 이 노동 수용소의 가혹한 현실을 집요하게 비춘다. 모든 농작물은 '앙카(Angkar, 크메르 루즈의 조직·정권을 뜻하는 말)'의 전투 부대로 보내지고, 정작 땅을 일군 주민들은 묽은 죽 한 그릇으로 연명한다. 배고픔을 참지 못해 타로 가치를 훔쳐 먹은 룽웅의 오빠는 군인들에게 무자비하게 구타당한다. 웅은 이 폭력을 숨죽여 목격한다. 혁명이 약속했던 '평등한 새 캄보디아'는 오직 굶주림과 공포의 평등이었을 뿐이다. 생명을 구하는 서양 의약품은 외세의 유산이라 하여 금지되었고, 이질에 걸린 웅의 언니 키브는 치료 한번 받지 못한 채 서서히 죽어간다.
유년의 타락과 전쟁의 순환 구조
영화의 후반부는 웅이 가족과 분리되어 크메르 루즈의 소년병 캠프로 보내지면서 더욱 비극적인 국면으로 치닫는다. 크메르 루즈는 아이들의 순수함을 세뇌하기 가장 좋은 도구로 여겼다. 웅은 그곳에서 글을 배우는 대신 총을 쥐고, 대전차 지뢰를 매설하는 법을 배우며, 베트남인에 대한 증오를 주입받는다.
이 소년병 캠프의 묘사는 정권의 또 다른 기만성을 폭로한다. 평등을 외치던 정권은 자신들의 체제를 수호할 어린 군인들에게는 일반 노동 수용소의 노동자들보다 더 많은 식량과 나은 대우를 제공한다.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해 아이들은 기꺼이 괴물의 부품이 되기를 선택한다. 다섯 살 소녀의 작고 고운 손이 치명적인 살상 무기인 지뢰를 조립하는 장면은, 인간이 어디까지 타락할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처절한 시각적 충격을 안긴다.
결국 베트남군의 진격으로 캠프가 파괴되고 웅은 다시 피난길에 오른다. 그 길에서 그녀가 목격하는 것은 자신이
직접 매설했을지도 모를 지뢰에 다리가 잘려 나가고 목숨을 잃는 아비규환의 민간인들이다. 폭력은 이처럼 인과를 알 수 없는 순환 구조 속에서 무고한 이들의 삶을 파괴한다. 적십자 난민 수용소에서 웅은 분노한 군중이 포로로 잡힌 크메르 루즈 병사를 집단 린치하는 장면을 목격한다. 웅의 눈에 그 피투성이가 된 병사의 얼굴은 처형당한 아버지의 얼굴로 오버랩된다. 가해자와 피해자의 경계가 무너지고, 전쟁이 남긴 증오만이 괴물처럼 번져가는 순간이다.
국내외 비평가 및 관람객의 다각적 반응
영화 <첫 번째 그들이 아버지를 죽였다>는 공개 당시 전 세계 비평가들과 관람객들로부터 뜨거운 찬사와 동시에 심도 깊은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로튼 토마토 집계 기준으로 이 작품은 대체로 호평을 받았다. 다수의 평론가들은 안젤리나 졸리의 연출을 그의 필모그래피 중 가장 원숙한 성취로 꼽았고, 캄보디아 배우들을 전면에 내세우고 대사 대부분을 크메르어로 진행함으로써 서구 감독들이 흔히 빠지는 '백인 구원자 서사'의 함정을 상당 부분 피해 갔다는 점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미국의 저명한 영화평론가 로저 이버트가 설립한 매체(RogerEbert.com)는 이 작품을 졸리의 연출작 중 최고작으로 꼽으며, 아이의 시선과 의식에 온전히 밀착해 국가적 비극을 그려낸 보기 드문 전쟁 영화라고 극찬했다. 촬영감독 안소니 도드 만들(<슬럼독 밀리어네어>로 아카데미상을 수상)이 구현한, 풍요로운 색감에서 점차 잿빛과 흑색으로 탈색되어 가는 색채 설계 역시 여러 매체에서 특별히 언급되며 호평받았다.
특히 비평가들은 영화가 정치적 프로파간다에 머물지 않고 인간의 내면에 집중했다는 점을 높이 평가했다. 미군의 폭격과 크메르 루즈의 학살이라는 거대 거시사를 다루면서도, 감독이 정치적 단죄보다 한 아이의 영혼이 전쟁 속에서 어떻게 마모되고 살아남는가라는 미시적 서사에 집중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이는 영화를 단순한 역사 고발 다큐멘터리가 아닌 보편적인 인간애의 영역으로 끌어올렸다는 것이다.
반면 일부 매체는 다른 시각을 내놓기도 했다. 버라이어티(Variety)는 백인 시선을 피한 접근 방식은 인정하면서도, 스타 배우의 부재와 절제된 서사, 그리고 반복되는 고통의 묘사가 상영 시간 내내 관객을 붙잡아 두기에는 다소 아쉬웠다는 취지의 지적을 내놓았다. 어린 주인공 룽웅의 내면이 충분히 입체적으로 그려지지 못했다는 비판도 이 리뷰에 포함되어 있었다. 이런 시각은 웅의 시선을 고수하는 연출이 몰입감을 주는 동시에, 크메르 루즈 정권 전반의 정치적 맥락을 파악하기에는 다소 불친절할 수 있다는 우려와도 맞닿아 있다.
관람객들의 반응은 한층 더 감정적이고 뜨거웠다. 다수의 관람평은 아역 배우 사레움 스레이 모흐의 눈빛이 대사 이상의 것을 전달했다고 입을 모았으며, 킬링필드에 대해 잘 알지 못했던 스스로를 돌아보게 됐다는 반응도 적지 않았다. 미국 관람객들 사이에서는 엔딩 크레딧에 명시된 자국의 폭격 책임을 마주하며 불편함과 반성을 동시에 느꼈다는 후기가 다수 눈에 띄었다.
캄보디아계 관람객들의 반응은 이 영화가 지닌 사회적 무게감을 특히 부각시켰다. 실제로 크메르 루즈 시절을 겪은 부모 세대를 둔 이들 중 다수가, 영화 속 검은 옷과 묽은 죽, 강제 노동의 풍경이 자신이 부모에게서 전해 들은 기억과 정확히 겹친다는 반응을 보였다.
"캄보디아의 딸은 기억한다. 아무도 잊지 않도록"
영화는 전쟁이 끝난 후 성인이 된 웅과 살아남은 세 형제자매가 불교 사원의 폐허 속에서 승려들과 함께 잃어버린 가족을 위해 향을 피우고 기도하는 장엄한 시퀀스로 막을 내린다. 카메라는 마침내 웅의 눈높이를 벗어나 하늘 높이 앵글을 넓히며, 폐허가 된 사원과 그 속에서 살아가는 캄보디아의 대지를 비춘다. 그것은 상처 입은 영혼들을 향한 위령이자, 살아남은 자들이 짊어져야 할 기억의 의무에 대한 시각적 선언이다.
그리고 영화는 마지막 자막을 통해 관객에게 묵직한 숙제를 던진다. 크메르 루즈가 조직적인 처형과 굶주림, 강제 노동을 통해 캄보디아 인구의 약 4분의 1을 죽였다는 사실, 그리고 캄보디아의 딸은 그 모든 것을 기억하며 아무도 잊지 않게 하겠다는 다짐이다.
이 영화가 지닌 진정한 가치는 단순히 과거의 참상을 자극적으로 재현하는 데 있지 않다. 그것은 미국의 270만 톤 비밀 폭격이라는 '원인'과 크메르 루즈의 킬링필드라는 '결과' 사이에 놓인 역설적인 인과관계를 밝히고, 그 속에서 스러져간 평범한 인간들의 목소리를 복원해 낸 데 있다. "새 캄보디아를 보고 싶다"던 소박한 주민의 소망은 정권의 광기에 오염되었고, "우린 그냥 노동자"라며 숨죽여야 했던 아버지는 차가운 집단 무덤에 묻혔다.
그러나 정권이 그토록 지우려 했던 인간의 정체성과 기억은 끝내 말살되지 않았다. 다섯 살 소녀의 눈에 박힌 공포와 슬픔, 그리고 생존을 향한 의지는 수십 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한 편의 영화로 부활했다. <첫 번째 그들이 아버지를 죽였다>는 역사의 광풍 속에서 개인이 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저항은 다름 아닌 '기억하는 것'임을 보여준다. 캄보디아의 딸 룽웅의 기억은 이제 영화를 본 전 세계 관객들의 기억으로 확장되었으며, 그리하여 그 비극은 역사 속에서 결코 잊히지 않는 불멸의 증언으로 남게 되었다.
uapp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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