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미나이 이미지시커먼 산, 검은 강물이 흘렀던 태백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면 기억나는 아이가 하나 있습니다. 이름은 종도(가명입니다~ㅎ)입니다.
6천명 정도의 애들이 오전/오후반을 나눠 학교를 다닐 때 종도와 저는 1학년 때 같은 반이었습니다. 다들 너무 가난해 촌스럽고 땟국물이 줄줄 흐를 때 종도는 언제나 깔끔한 옷과 얼굴로 학교에 왔습니다. 촌스럽고 땟국물 줄줄 흘렀던 제가 종도와 어떻게 친해졌는지 기억엔 없지만, 80명 가까이 되는 같은 반 아이들 중에서 종도와 저는 제법 가깝게 지냈습니다. 놀기도 함께 놀았고 집에 갈 때도 종종 함께 가곤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그날도 함께 학교를 파하고 집에 가는데 종도가 자기 집에 놀러가지 않겠냐고 묻더군요. 저는 좋다고 했습니다. 누군가에게 처음 초대를 받은 것이었고, 제가 살던 중앙시장 골목을 벗어나 처음으로 멀리 길을 떠나는 것이기도 했습니다.
지금 걸어 보면 어른 걸음으로 5분에서 10분도 채 안되는 거리지만 당시엔 골목 사이사이를 돌고 돌아 꽤 거리가 멀어 보였던 길입니다. 우리집이 어디쯤인지 가물가물 기억도 안 날 때쯤 앞서 걷던 종도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종도 - 여기가 우리집이다~
종도가 가리킨 집을 보는데 우와~저는 태어나서 그렇게 큰 집과 담벼락은 첨봤습니다. 걸어도 걸어도 끝이 보이지 않았고 담장의 높이도 어마무시했습니다. 가뜩이나 위엄이 있어 보이는 높은 담장 위에는 가시 돋친 철조망도 쳐 있었습니다. 감히 범접하기 어려운 집이었습니다.
예상대로 종도는 엄청난 부잣집 아들이었던 겁니다. 종도가 남달리 깔끔했던 게 종도네 담벼락 하나로 모두 설명이 됐습니다.
나 - 종도야! 니네 진짜 부자다! 우리집 백개보다 크다!
아마 이런 얘기를 종도에게 했던 것 같습니다. 종도는 부잣집 아이의 여유있는 얼굴로 그냥 빙긋이 웃고 말더군요...그렇게 그날 종도의 집 담벼락을 둘러보고 집에도 들어가나 했는데 집에는 들어가지 않고 둘은 그냥 헤어졌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났습니다. 초등학교 1학년이 중학생이 되었고 철도 좀 들었을 때입니다. 중학교 2~3학년 정도였을 때입니다. 사춘기 태백 청소년의 미래와 강원도의 앞날에 대해 깊은 고민을 하며 태백 시내를 걷다가 우연치 않게 종도네 집앞까지 오게 됐습니다.
종도네 집은 당시와 똑같이 엄청 크더군요. 종도는 잘 지내고 있을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종도를 생각하며 종도네 집 대문을 바라보는데 문패가 보이는 겁니다. 근데 종도의 성은 '김'인데 문패의 성은 '전'이었습니다. 그리고 문패도 보통 부잣집의 백배는 더 커보였습니다. 종도가 이사를 갔나 하고 문패를 자세히 들여다봤습니다. 문패에는 20년 넘게 붙어있었다는 종도 아버지의 존함이 선명하게 적혀있었습니다. 이렇게요...
- 전 매 청 -
종도 이 쫑간나×끼 전 그때서야 제가 종도에게 속았다는 걸 알았습니다. 종도는 전매청을 자기 집이라고 했던 것이죠 ㅎㅎ 저는 또 순진하게 그걸 믿었고요~~~ㅠㅠ
그 이후, 저는 전매청을 지날 때마다 종도 생각을 하며 웃곤했습니다. 그리고 종도는 어디서 어떻게 살까 궁금하기도 했었죠. 그렇게 시간이 지나다 제가 40대 중반이 되었을 때입니다. 주말에 어른들을 뵈러 가서 어머니 가게를 볼 때였습니다. 가게로 들어서는 중년의 남성! 가게로 들어서는 사내를 보는 순간 저는 그가 종도란 걸 단번에 알 수 있었습니다. 초등학교 이후 한번도 본 적이 없지만 저는 종도를 알아봤습니다. 종도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더구나 저는 전매청 사건으로 종도 이름까지 정확히 알고 있었죠.
나 - 너 종도 맞지?
종도 - 맞아..근데 니 이름이 뭐더라?
나 - 용석이다! 용석이!
종도 - 아 맞다. 용석이...
반갑게 악수하고 안부도 물으며 한참 이런저런 얘기를 했습니다. 그러다 너 옛날에 전매청을 니네 집이라고 했던 거 기억나냐고 물으니...기억이 없답니다. 저는 전매청 지날 때마다 '이 쫑간나×끼'라고 니 욕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종도 너 욕 많이 먹어 오래 살거라는 얘기도 했고요~ ㅎㅎ
한참 웃고 떠들다 헤어졌습니다. 종도는 유들유들한 성격답게 태백에서 오랫동안 다방을 운영했더군요~ ㅇㅇ다방과 ㅇㅇ다방 다방 두 개를 운영하는 그룹사 대표였습니다. 종도 돈 잘 버는 얘기 한참 듣고 헤어진 게 벌써 10년이 더 지났네요~~
종도 돈 많이 벌고 앞으로도 행복하게 잘 살아라~ㅎㅎ
김용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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