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하루 동안 당신은 누군가를 방관했는가, 아니면 누군가의 손을 잡아주었는가

uapple 기자

등록 2026-05-17 13:17

라이 루소 영(Ry Russo-Young) 감독의 '일곱 번째 내가 죽던 날'(Before I Fall)


시간의 유한성과 인간관계의 복잡성을 여고생의 타임루프라는 독특한 틀로 풀어낸 라이 루소 영 감독의 2017년 작 '일곱 번째 내가 죽던 날'(Before I Fall)은 청춘 영화의 외피를 두르고 있으나, 그 내면에는 철학적 통찰을 담아낸 수작이다. 


로런 올리버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이 영화는 개봉 당시 평단과 관객 사이에서 엇갈린 반응을 얻었으나, 시간이 흐를수록 단순한 하이틴 로맨스 릴레이를 넘어선 묵직한 인간학적 텍스트로 재평가받고 있다. 10대의 삶에 내재된 잔인함과 연약함, 그리고 매일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구원의 가능성을 탐색하는 주인공 사만다 킹스턴(조이 도이치 분)의 여정은 오늘을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강렬한 질문을 던진다.


영화는 큐피드의 날로 불리는 2월 12일의 아침으로 시작된다. 주인공 사만다는 Lindsay, Ally, Elody 등 소위 학교에서 잘나가는 무리와 함께 화려하고 부러울 것 없는 하루를 보낸다. 남자친구 롭과의 특별한 밤을 계획하며 들뜬 마음으로 향한 파티, 하지만 그곳에서 그들이 '싸이코'라 부르며 배척하던 아웃사이더 줄리엣 사익스(엘레나 캠푸리스 분)와의 거친 충돌이 발생한다. 맥주 세례를 받으며 모욕당한 줄리엣은 눈물을 흘리며 사라지고, 집으로 돌아가던 사만다 일행의 자동차는 의문의 사고로 전복된다. 그리고 암전. 사만다는 다시 2월 12일의 아침 알람 소리에 눈을 뜬다.


이 영화에서 타임루프는 단순한 SF적 설정이나 오락적 장치가 아니다. 영화 초반 사만다가 듣는 수업의 주제인 '시시포스 신화'는 이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거대한 은유다. 신들을 속인 죄로 영원히 거대한 바위를 산꼭대기로 밀어 올려야 하는 시시포스처럼, 사만다는 매일 아침 같은 하루를 시작하고 밤이 되면 죽음 혹은 사고라는 절벽 아래로 추락한다.


초기 루프에서 사만다는 이 상황을 단순한 악몽으로 치부하거나, 환경을 바꾸어 사고를 피하려 든다. 친구들과 파티에 가지 않고 파자마 파티를 열며 죽음을 피해 보려 하지만, 그날 밤 줄리엣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비보를 접하게 된다. 자신이 피한 비극이 다른 형태로 발현되는 것을 목격한 사만다는 깨닫는다. 이 굴레는 물리적인 회피나 도망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님을 말이다. 아무리 바위를 밀어 올려도 다시 떨어질 뿐이라는 절망감 속에서 사만다는 폭주하기도 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독설을 퍼붓기도 하며, 허무주의에 빠져들기도 한다. 이러한 전개는 인간이 운명의 거대함과 부조리함을 마주했을 때 겪는 심리적 단계(부정-분노-타협-우울-수용)를 충실히 추적한다.


개봉 당시 비평가들의 평가는 다소 양면적이었다. 로튼 토마토에서 64%의 신선도 지수를 기록하고 메타크리틱에서 100점 만점에 58점을 받는 등 수치상으로는 미지근한 반응처럼 보였으나, 세부적인 비평을 들여다보면 감독의 연출력과 주연 배우의 호연에 대한 찬사가 주를 이룬다.


전반적으로 비평가들은 익숙한 타임루프 서사('그라운드 호그 데이'나 '엣지 오브 투모로우' 등에서 변주된)가 10대 여성의 시각(YA: Young Adult Perspective)을 통해 신선하게 재생산되었다는 점을 높이 평가했다. 로저에버트닷컴의 수잔 블로스치나는 이 영화에 별 3개를 부여하며 하이틴 영화의 전형적인 틀을 깨고 나온 스크립트의 깊이를 칭찬했다. 업록스의 애비 벤더 역시 결말부에 대해서는 일부 이견이 있을 수 있으나, 라이 루소 영 감독이 포착해 낸 10대 소녀들의 연대감과 그들을 둘러싼 울창하고 몽환적인 자연의 시각적 묘사가 매우 훌륭하다고 평했다.


특히 평단이 만장일치로 극찬한 대목은 주인공 사만다를 연기한 조이 도이치의 압도적인 스크린 장악력이다. 사만다는 단순한 피해자도, 전형적인 악녀도 아니다. 단짝 친구 린지(할스턴 세이지 분)의 주도하에 벌어지는 은근하고 잔인한 학교 폭력과 따돌림에 동조하거나 최소한 방관해 온 인물이다. 조이 도이치는 매일 반복되는 하루 속에서 자신이 저지른 무지와 방관의 대가를 목격하며 점차 내면적으로 각성해 나가는 복잡한 감정선을 섬세하게 표현해 냈다. 비평가들은 그녀의 연기가 자칫 유치해질 수 있는 하이틴 드라마의 격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고 입을 모았다.


카메라 워크와 음악에 대한 호평도 이어졌다. 영화 전반을 감싸는 차가운 푸른빛의 톤과 워싱턴주의 울창한 숲, 비 내리는 날씨 등의 미장센은 사만다가 갇힌 시간의 폐쇄성과 우울함을 시각적으로 대변한다. 세련된 신시사이저 스코어와 감각적인 팝 사운드트랙은 감정의 진폭을 증폭시키는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일반 관객들의 리뷰는 더욱 뜨겁고 다채로운 담론을 형성했다. IMDb와 각종 영화 커뮤니티의 관객 리뷰에서 가장 빈번하게 언급되는 키워드는 '학교 폭력(Bullying)'과 '방관', 그리고 '결말에 대한 해석'이다.


상당수의 시청자는 영화 속 학교 폭력의 묘사가 지나치게 과장되지 않고 오히려 현실적이어서 더 소름 끼쳤다는 반응을 보였다. 극 중 사만다와 친구들은 물리적인 폭력을 행사하기보다 눈빛, 비웃음, SNS를 통한 조롱, 그리고 사소한 언어폭력으로 줄리엣을 벼랑 끝으로 몰아넣는다. 많은 관객은 "내가 학교에 다닐 때 저지르거나 목격했던 방관의 순간들이 떠올라 마음이 불편했다", "단순한 악당이 나오는 영화가 아니라, 평범하고 매력적인 주인공 무리가 누군가에게는 지옥을 선사하는 가해자라는 점이 현실을 관통한다"는 리뷰를 남겼다.


영화 중반부 사만다의 행보 역시 관객들의 큰 공감을 샀다. 루프가 지속되면서 자신이 무슨 짓을 해도 다음 날이면 리셋된다는 것을 알게 된 사만다가 어머니에게 짜증을 내는 대신 진심 어린 포옹을 건네고, 어린 여동생의 눈을 맞추며 다정한 대화를 나누고, 늘 자신을 바라봐 주던 복고풍 소년 켄트(로건 밀러 분)의 순수한 사랑을 받아들이는 과정은 보는 이들의 감정적 정화를 이끌어낸다.


그러나 결말부에 대해서는 관객들 사이에서 격렬한 논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주인공 사만다가 최종적으로 루프를 깨기 위해 선택한 방식, 즉 줄리엣을 구하고 자신이 대신 트럭에 치여 죽음을 맞이하는 결말에 대해 일부 관객들은 충격과 아쉬움을 토로했다. "결국 주인공이 죽어야만 끝나는 비극적인 굴레가 가혹하다", "더 나은 사람이 된 사만다가 살아가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는 의견이 존재했다. 반면, 이 결말을 대단히 숭고하게 받아들인 관객들은 사만다의 죽음이 단순한 소멸이 아닌 '완성'이라고 반박했다. 줄리엣이 죽어 가던 사만다를 향해 "네가 날 구했어"라고 말할 때, 사만다가 마음속으로 "아니, 네가 날 구한 거야"라고 답하는 장면은 이 영화의 백미로 꼽힌다. 타인을 구함으로써 비로소 자신의 영혼을 방관과 무지의 죄로부터 구원해 냈다는 실존적 가치의 실현이라는 해석이다.


영화는 사만다의 각성을 통해 인물들의 숨겨진 이면을 하나씩 들추어낸다. 가장 입체적인 인물은 무리의 리더인 린지다. 겉보기에는 완벽하고 잔인하며 거침없는 가해자처럼 보이지만, 루프를 거듭하며 사만다가 발견한 린지의 내면은 부모의 끊임없는 불화와 이혼으로 인해 깊은 상처를 입은 유약한 아이에 불과했다. 과거 린지와 줄리엣은 단짝 친구였으나, 캠핑장에서 부모의 싸움으로 인한 스트레스로 소변을 지린 린지가 자신의 수치심을 감추기 위해 그 죄를 줄리엣에게 뒤집어씌우고 그때부터 따돌림을 주도했다는 슬픈 과거가 밝혀진다.


이러한 설정은 영화의 메시지를 한층 풍성하게 만든다. 피해자와 가해자의 구도를 이분법적으로 나누는 대신, 상처받은 인간이 어떻게 타인에게 상처를 주는 괴물이 되는지, 그리고 그 상처의 연쇄고리를 끊기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사만다는 린지를 원망하거나 단죄하는 대신, 그녀가 왜 그토록 날이 서 있는지 이해하게 되고, 마지막 루프에서 친구들에게 진심 어린 사랑의 고백을 건넨다. 가해자를 향한 징벌이 아닌, 그들의 아픔까지 품어 안는 성숙함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또한, 늘 사만다를 향해 헌신적인 사랑을 보내왔던 켄트와의 관계 회복은 영화 속에서 가장 따뜻한 순간을 선사한다. 켄트는 과거 아버지를 잃고 힘들어하던 시절, 자신을 유일하게 방어해 주고 위로해 주었던 사만다를 기억하며 언젠가 그녀의 영웅이 되겠노라 다짐했던 소년이다. 사만다는 매일 반복되는 하루 속에서 진정한 가치가 어디에 있는지 깨달아가며, 겉만 번지르르하고 이기적인 남자친구 롭과의 관계를 정리하고 켄트의 진심을 받아들인다. 진정한 관계는 외적인 화려함이 아닌, 서로의 상처를 알아보고 위로하는 데서 출발한다는 평범하지만 위대한 진리를 영화는 잔잔하게 설파한다.


사만다는 마침내 자신이 무엇을 해야 이 영원한 굴레를 끝낼 수 있는지 완전히 이해한 채 마지막 아침을 맞이한다. 그녀의 얼굴에는 더 이상 두려움이나 짜증이 없다. 오직 차분함과 깊은 이해만이 감돈다. 사만다는 주변의 모든 이들에게 친절을 베풀고, 친구들에게 사랑을 고백하며, 줄리엣을 구하기 위해 망설임 없이 몸을 던진다.


차가운 아스팔트 위에서 숨을 거두어가는 사만다의 시선 위로, 그녀가 살아오며 마주했던 가장 아름답고 행복했던 순간들, 기억하고 싶고 기억되고 싶은 찰나의 파편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그리고 영화의 막이 내리기 직전, 사만다의 목소리로 담담하게 흐르는 엔딩 내레이션 전문은 이 영화가 관객에게 던지는 최종적인 핵심 메시지이자, 유한한 삶을 살아가는 모든 인간을 향한 엄숙한 헌사다.


—당신에겐 내일이 있을지도 모른다. 

남은 날이 1,000일, 3,000일, 혹은 10,000일 하지만 어떤 이들에게 오늘 하루 뿐이다. 

그래서 오늘이 가장 중요하다.  그 순간이… 곧 영원이니까. 

내 행복했던 순간들이 보이고 

기억하고 싶은 순간들이 보이고 기억되고 싶은 순간들이 보인다. 

영원한 순간도 있다는 걸 바로 그때 깨닫는다. 

끝난 후에도 계속 된다는 것을 그 순간들엔 의미가 있다.


이 내레이션은 영화 전체를 요약하는 동시에 하이틴 드라마라는 장르적 한계를 완전히 초월하여 보편적인 인간의 실존을 웅변한다. 우리는 흔히 우리에게 무한한 내일이 주어져 있는 것처럼 행동한다. 오늘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고, 오늘 소중한 사람의 눈을 외면하면서도 '내일 사과하면 되지', '다음에 잘하면 되지'라며 미룬다. 사만다 역시 루프에 갇히기 전에는 수많은 '내일'을 당연하게 여기며 방관과 무심함으로 하루를 낭비했던 인물이다.


그러나 어떤 이들에게는 오늘이 삶의 마지막 날일 수 있으며, 우리가 무심히 보낸 오늘 하루가 누군가에게는 영원한 상처가 되거나 생의 마침표가 될 수 있다. 사만다는 죽음의 반복을 통해 비로소 '지금, 여기(Hic et nunc)'의 절대적인 가치를 깨달았다. 그녀의 유체이탈된 영혼이 줄리엣을 바라보며 나지막이 되뇌는 고백은, 결국 타인을 구원하는 행위가 곧 나 자신의 삶에 완전한 의미를 부여하고, 그 순간을 영원으로 박제하는 유일한 길임을 보여준다. 육체는 소멸할지언정, 그녀가 남긴 선의와 사랑의 기억은 살아남은 줄리엣과 친구들, 가족들의 삶 속에 '끝난 후에도 계속'될 것이기 때문이다.


'일곱 번째 내가 죽던 날'은 타임루프물의 형식을 빌려와 청소년기의 미성숙함과 그로 인한 파장을 밀도 있게 그려낸 수작이다. 라이 루소 영 감독은 자칫 얄팍한 교훈극으로 흐를 수 있는 서사를 세련된 영상미와 인물들의 깊이 있는 심리 묘사를 통해 묵직한 철학적 에세이로 완성해 냈다.


평론가들이 극찬한 연출과 연기력, 관객들이 뜨겁게 토론한 방관과 구원의 테마는 이 영화가 단순한 10대들의 전유물이 아님을 증명한다. 영화 속 사만다의 대사처럼 우리에게 남은 날이 1,000일이든, 10,000일이든 간에 중요한 것은 그 유한함 속에서 우리가 어떤 선택을 내리고 주변을 어떻게 대하느냐에 달려 있다.


오늘 하루 동안 당신은 누군가를 방관했는가, 아니면 누군가의 손을 잡아주었는가. 사만다가 던진 이 묵직한 질문은 영화가 끝난 후에도 차가운 여운이 되어 관객들의 가슴속에 길게 일렁인다. 매일 아침 눈을 뜨는 당연한 일상이 실은 매 순간 영원을 만들어갈 수 있는 유일한 기회임을, 이 영화는 사만다의 숭고한 여정을 통해 나지막이 역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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