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콘스탄틴(Constantine, 2005)의 감독으로 잘 알려진 프란시스 로렌스가 2007년에 내놓은 신작 <나는 전설이다>는 극장 상영판과 감독판의 결론이 판이하게 다르다.
극장 상영판은 주인공 로버트 네빌이 좀비가 된 벤 코트만의 습격을 받고 지하 실험실에서 마지막 저항을 한다. 더 이상 버틸 수 없음을 안 로버트 네빌은 자신이 개발한 백신을 생존자에게 주고 그들을 탈출시킨다. 대신 자신은 좀비들과 함께 자폭한다. 인류에게 희망을 안겨주고 자신을 희생시킨다는 점에서 <나는 전설이다>라는 형식적 메시지는 그래도 유지한 셈이다.
반면 감독판의 결말은 극장 상영판과 많이 다르다.
로버트 네빌이 좀비가 된 벤 코트만의 습격을 받고 지하 실험실에서 마지막 저항을 한다. 마지막 저지선인 유리방화벽을 깨려던 벤 코트만은 자신의 여자 친구가 아직 살아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잠시 공격을 멈춘다.
로버트 네빌은 유리방화벽 문을 열고 벤 코트만의 여자 친구를 넘겨준다. 이 과정에서 로버트 네빌과 벤 코트만은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게 된다. 벤 코트만과 그의 동료들은 조용히 퇴각한다. 로버트 네빌과 생존자들은 백신을 들고 그 도시를 떠난다.
극장 상영판과 감독판의 이런 차이는 프란시스 로렌스 감독이 이 작품의 원작을 어떻게 영화화할 것인가를 매우 고심했던 흔적이다. 하지만 두 가지 결론 모두 리처드 매드슨의 장편소설 원작의 철학과 맛을 살리는 데에는 실패한 것으로 보인다.
1954년에 발표한 리처드 매드슨의 장편소설 <나는 전설이다>는 그동안 모두 세 번 영화로 만들어 졌다.
1964년에 <지상 최후의 사나이>라는 제목으로 영화화 되었고, 1971년에 <오메가맨>으로 영화화가 되었다. 그리고 2007년에 <나는 전설이다>로 다시 만들어져 세상에 선보였다.
리처드 매드슨의 원작소설은 세 편이 영화 뿐만 아니라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이나 <새벽의 저주> <28일 후> <레지던트 이블> 같은 다양한 좀비 영화 탄생이 크게 기여를 했다.
영화 뿐만 이 아니라 스티븐 킹 같은 작가에게도 큰 영향을 끼쳤다. 이 원작소설의 어떤 힘이 그러한 파장을 일으켰던 것일까?
핵전쟁 이후 인류는 변종 바이러스에 감염돼 좀비로 변한다. 그러나 로버트 네빌만 유일하게 바이러스에 감염되지 않는다. 밤이 되면 온 도시가 좀비로 뒤덮이고, 낮이 되면 로버트 네빌은 도서관 등을 찾아다니며 백신을 찾아내기 위해 연구를 한다. 낮과 밤의 교차, 로버트 네빌과 벤 코트만의 끊임없는 사투, 그 과정에서 주인공의 바이러스에 대한 치밀하고 끈기있는 추적과 내면적 슬픔이 뼈 속 깊이 파고든다.
이러한 설정은 영화와 원작소설은 많이 닮아 있다. 하지만 영화와 원작소설이 근본적으로 달라지는 데에는 세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로 벤 코트만에 대한 설정이다.
영화에서의 벤 코트만은 자신의 여자 친구를 납치해 간 네빌과 끊임없는 신경전을 벌이다가 결국은 그를 습격한다. 유일하게 남은 생존자와 좀비의 대립이 '여자 친구' 때문으로 축소되고 만다.
반면 원작소설에서의 벤 코트만은 핵전쟁 이전에는 네빌과 절친했던 인물로 그려진다. 평범한 미국 중산층이었던 두 사람이 핵전쟁 이후 극단을 달리며 갈라진 두 개의 세계로 양분된다. 네빌은 코트만을 비정상적 인 세계로 인식하고, 코트만은 네빌을 새로운 세계를 위협하는 위험 인물로 인식한다.
둘째로 원작소설의 '루스'와 영화의 '루스' 에 대한 설정이 다르다.
영화에서는 네빌이 개발 한 백신을 전달하고 '전설'을 증거하는 인물로 그려진다. 반면 원작소설에서는 새로운 세계를 이끌고 있는 고위직으로 그려진다.
전자와 후자의 설정은 영화와 원작소설의 흐름을 바꾸는 데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 원작소설에서 루스는 네빌에게 이렇게 말한다.
"새로운 세계란 늘 원시적이죠. 그 점을 아셔야 해요. 어떤 점에서 우리는 혁명 전사와 같죠. 폭력으로 사회를 재편하려는, 그건 불가피한 거예요. 당신도 폭력에는 익숙하지 않나요? 살인을 했죠. 그것도 여러 번이나.”
루스의 이 발언은 네빌로 하여금 자신이 새로운 세계에서는 비정상적인 인물이며, 제거되어야할 인물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준다.
셋째로 결론에 대한 설정이 가장 크게 다르다.
영화는 극장 상영판과 감독판이 다르긴 하지만 두 개의 결론 모두 원작소설과 근본적으로 다르다. 앞서 루스가 새로운 세계를 이끌고 있는 고위직으로 등장해 네빌의 파멸을 주도하고, 그 과정에서 네빌은 "나는 이제 비정상적인 존재다. 정상이라는 것은 다수를 의미한다. 다수의 기준이지 한 사람의 기준이 아닌 것이다." 라는 새로운 자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인류의 마지막 생존자이자 정상인이 었던 네빌이 새로운 인류가 장악하고 있는 세계에서는 비정상이라는 자각은 이 원작소설의 메시지를 압축하고 있다. 이 원작소설의 끝 문장에서 작가는 핵전쟁 이전에 인류가 흡 혈귀에 대한 전설을 간직하고 있듯이, 신인류에게 네빌은 이제 전설이 되고 있다는 것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로버트 네빌은 이 땅의 신인류를 내다보았다. 그는 처음부터 그들에게 속할 수 없는 존재였다. 좀비와 마찬가지로 그 역시 파괴돼야 할 아나테마(가톨릭에서의 저주)이자 검은 공포였다. 생각이 거기에 미치자 그는 고통 속에서도 기쁘다는 생각이 들었다. (중략) 그래. 또 다른 시작인 거야. 죽음 속에서 태어난 새로운 공포 영원한 요새를 정복한 새로운 미신. 이제 나는 전설이야.'
이런 작가의 메시지는 세 편의 리메이크된 영화나 좀비나 미래의 묵시록을 담은 여타 영화에서는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원작의 힘이라고 볼 수 있다.
신정희 기자 다른 기사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