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과를 대하는 마음

진주 기자

등록 2025-08-02 22:08

  

 비바람이 불고 천둥번개 치던 7월의 어느 밤에 모과나무 가지가 꺾였다. 작년에 태풍으로 휘었던 가지가 사단이 난 것이다. 날이 새면서 비바람이 멎길래 밤새 별일은 없었나 보다 하고 태연했는데, 출근하려고 보니 대문 밖 인도에 꺾인 모과나무 가지와 함께 주먹만한 열매들이 길바닥에 널려 있다. 세어보니 모두 일곱 개다. 7월의 태양을 머금은 짙은 풀빛의 열매들이 어린아이의 보송한 얼굴처럼 예쁘고 탐스럽다. 가지가 꺾여 떨어지지 않았다면 노랗게 잘 익어 가을에 수확할 것들이다. 산뜻한 황록색을 향해 달려가던 중 비운의 밤을 겪은 모과들을 주워다가 현관문 앞에 늘어놓았다. 빗방울이 묻은 모과는 갓 세수하고 아직 수건으로 물기를 닦기 전의 어린아이 얼굴처럼 청초하기만 하다.


   아침 일찍 현관 앞에 놓은 작은 화분들에 물을 주면서나 퇴근길에 집에 들어올 때마다 거기 놓여있는 모과들을 일별하곤 한다. 일없이 앉아 표면에 묻었던 빗물이 말라가는 모습, 머금고 있는 수분을 잃어가면서 표면 색상이 조금씩 갈색으로 짙어가는 모습, 그러면서 나날이 땡글땡글 단단하게 말라가는 모습을 들여다보는 사이 팔월이 되었다.

 

   볕에 노출된 모과의 표면은 잘 익은 가지 색깔을 닮았다. 그렇다고 가지처럼 반짝반짝 윤기가 나는 것은 아니다. 갈색과 보라색이 잘 섞인 듯한데 무광이어서 오히려 고급스럽다. 마치 좌절을 견디며 오히려 단단하고 성숙해지는 사람의 내면 같아서 자꾸 눈길이 간다


   가만히 뒤집어 보니 바닥에 닿아 있던 아래쪽 면은 수분을 머금은 채 아직 퍼런 부분들이 있다. 햇볕에 때글때글 잘 말라가고 있는 것 같지만 아직 볕이 충분히 닿지 못한 반대편을 보노라니 가슴이 뭉클하다. 나 아직 아파요, 나뭇가지 위에서 나날이 영글어 가던 날들의 기억이 아직 가슴 한 켠에 생생하거든요 하며 자신의 얘기를 하고 있는 것 같다. 안쓰럽다


   공연히 폭우와 폭염과 땡볕에 시달리느라 여름내 잡초들마저 시원스레 키워내지 못하는 화단을 들여다 본다. 무성한 풀들을 쑥쑥 뽑아 쌓은 풀 더미 위에 던져놓고 잊고 있다가 어느 한가한 날 마른 풀더미들과 함께 다시 흙 속에 묻혀 버려야 했을 낙과들에 대하여 숙연해진다. 열매가 되지 못한 낙오자들을 들여다보기만 할 뿐, 그들에 대하여 어떠한 결단도 내리지 못하고 칠월을 다 보냈다. 햇살은 이 어쩌지 못하는 마음과는 아랑곳없이 지치지 않고 더욱 이글이글 타오를 것이며, 가지에 잘 붙어있는 열매들은 성과를 향해 녹황색으로 금빛으로 쉬지 않고 달려갈 것이다.  바야흐로 팔월이니까.

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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