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로 그린 The Village의 한 장면
M. 나이트 샤말란의 2004년작 '빌리지'는 평온해 보이는 한 고립된 마을을 배경으로 인간의 공포가 어떻게 체제 유지의 도구로 변질되는지를 날카롭게 파헤친 정치적 우화다. 개봉 당시 많은 관객은 충격적인 호러 반전을 기대했으나, 이 영화가 남긴 진짜 충격은 괴물의 정체가 아니라 권력이 대중을 길들이는 방식에 있었다.
현재 민주당 내부에서 벌어지고 있는 합당 논쟁과 실체도 불분명한 ‘뉴이재명’을 둘러싼 낙인찍기는 영화 속 코빙턴 마을의 통제 방식과 놀라울 정도로 닮아 있다.
영화 속 마을 코빙턴은 외부 세계의 폭력으로부터 도망쳐 나온 이들의 유토피아처럼 묘사되지만, 이 공동체를 지탱하는 근간은 ‘조작된 공포’다. 원로들은 마을 주민들이 밖으로 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 숲속에 ‘말할 수 없는 괴물들’이 살고 있다는 프레임을 설계했다. 이는 오늘날 정치권에서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배신자’, ‘작전세력’, ‘갈라치기’ '뉴이재명'이라는 상상의 적을 만들어내고, “대오를 이탈하면 위험하다”는 위협으로 내부 결속을 다지는 수법과 본질적으로 같다.
최근 정청래 대표의 합당 제안과 이를 뒷받침하는 김어준, 유시민 등 대형 스피커들의 행보는 코빙턴의 원로들을 연상시킨다. 조국혁신당과의 합당이라는 거대 담론을 던져놓고, 이에 대해 절차적 정당성이나 부작용을 지적하는 절반의 목소리를 ‘갈라치기 세력’으로 몰아세우는 행태가 그렇다.
괴물의 정체가 실상 원로들이 번갈아 입었던 ‘분장’이었듯, 그들이 주장하는 ‘단일대오’의 명분 이면에는 8월 전당대회 당권 유지와 이재명 대통령에게 해코지를 했던 이낙연계 사람들을 당내에 집중 배치하여 자신들의 영향력 보존이라는 추악한 권력욕이 숨어 있다는 지적에는 "우연의 일치다" "몰랐다"며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특히 ‘뉴이재명’ 논쟁은 공포 정치의 정점을 보여준다. 이재명 대통령의 중도 확장 노선을 지지하며 외연을 넓히려는 시도를 ‘리박스쿨 등의 공작’이라 규정하고 사상 검증을 가하는 모습은, 마을에서 특정 색상을 금기시하며 주민들의 사고를 마비시키던 통제 행위와 다를 바 없다. 정보를 독점한 대형 스피커들이 일방적 낙인찍기와 주장의 칼날을 휘두를 때, 당내 민주주의는 실종되고 ‘민주당판 빌리지’만이 강요된다.
영화에서 앞을 보지 못하는 주인공 아이비는 시각적 공포 프레임에 갇히지 않고 마을을 벗어나 진실을 향해 나아간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대형 스피커들이 만든 공포의 장벽을 무너뜨리는 아이비의 용기다. 특정 인물을 성역화하고 비판을 봉쇄하는 ‘공포의 정치’는 결코 스스로 멈추지 않는다. 영화의 마지막, 거짓 시스템을 유지하기로 결의하는 원로들의 모습은 권력의 오만함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를 경고한다.
결국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것은 ‘숲속의 괴물’이나 ‘내부의 배신자’가 아니다. 오히려 안전과 단결이라는 명목하에 개인의 비판적 사고를 저당 잡고, 공포를 발명해 지지자들을 가두려 하는 기득권 권력의 오만함이다. 이제는 ‘동지의 언어’를 회복하고, 조작된 괴물의 가면을 벗겨내야 할 때다.
uapple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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