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트리샤 스테인호프 저, 교양인 刊의 《적군파》가 일본 현대사의 어두운 단면을 조명한 객관적인 연구서로 평가받고 있다. 이 책은 1960년대 후반 일본 학생 운동의 분파로 등장해 요도호 사건, 텔아비브 공항 습격 사건 등 일련의 과격 투쟁을 주도했던 적군파(赤軍派), 특히 동지 12명을 살해한 연합적군 숙청 사건의 실체를 사회심리학적 시각에서 분석한다.
저자는 하와이대 사회학과 교수이자 일본 좌파 운동 연구의 권위자인 퍼트리샤 스테인호프다. 그는 20여 년간 적군파 멤버와 관계자들을 인터뷰하고 자료를 분석해, 1972년 일본 전역을 충격에 빠뜨린 연합적군 숙청 사건의 원인을 집단 내부의 역학과 인간 심리에서 찾는다.
책은 혁명적 열정으로 뭉친 젊은이들이 ‘공산주의화’**와 ‘총괄’이라는 모호한 개념을 바탕으로 한 집단 비판을 통해 어떻게 자기 비판이 폭력으로 변질되고, 결국 동지 살해라는 파국에 이르게 되었는지를 세밀하게 추적한다. 숙청 행위가 ‘동지의 발전을 돕는 원조 행위’로 이론화되고, 폭력 앞에서 망설이는 것이 ‘비혁명적’으로 규정되는 과정은, 이데올로기가 개인의 양심과 판단력을 어떻게 압도하는지 보여준다.
스테인호프는 이 비극을 특수한 악마의 소행이 아닌, 지극히 일반적인 사회적·심리적 경로를 통해 발생한 사건으로 해석한다.
"내게 이 사건이 주는 진정한 교훈, 진정한 공포는 지극히 일반적인 사회 상황이 뜻밖의 이변을 낳았다는 사실이다."
이 책은 폐쇄된 집단 내에서 공포와 자기 방어 심리가 이론이라는 힘을 빌려 자멸적인 폭력을 정당화하고 끊임없이 재생산하는 메커니즘을 밝혀낸다. 숙청에서 살아남은 이들이 감옥에서조차 ‘자기 비판’이라는 도구로 자신의 과오를 반성하려 한 아이러니는, 이데올로기가 남긴 정신적 밀실의 잔혹한 여파를 드러낸다.
《적군파》는 일본 학생 운동의 급진화 과정과 배경 사회 상황을 이방인의 객관적 시선으로 조망하며, 일본 좌파 운동 연구의 독보적인 저작으로 인정받고 있다. 이 책은 폭력과 테러 집단의 대명사라는 단순한 인식에서 벗어나, 1960년대 저항과 혁명의 시대가 남긴 이데올로기의 위험한 역할과 인간 심리의 보편적인 취약성을 성찰하는 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책 속으로
마지막 날 기동대 숫자는 1,500명으로 늘어났다. 산장 앞부분을 파괴하는 작업이 거대 크레인을 동원하여 시작되었고 약 50톤이나 되는 물이 발사되었다. 경찰은 12발의 연막탄과 1,400발이 넘는 최루탄을 썼다. 낮에 기동대가 산장 돌입을 개시하자 연합적군 멤버들은 총과 쇠파이프 폭탄으로 항전했다. …… 이 공방전 마지막 날 현장은 일본의 모든 방송국이 10시간 가까이 생중계했고 95퍼센트에 달하는 시청률을 기록했다. - 2장 적군파 - 혁명 병사라는 이미지(138~139쪽)
당시 고등학생이나 대학생이었던 사람들은 대부분 농성하던 멤버들에게 공감했으며 수백 명이나 되는 기동대에 맞서 전투적으로 싸우던 모습에 성원을 보냈다고 회상한다. 공방전이 한창 벌어질 때 더욱 명확한 지지 선언이 도쿄대나 교토대 등 대중 집회에서 발표되었고 여러 캠퍼스에서 응원 팸플릿이 뿌려졌다. …… 이 사건은 다른 무엇보다도 허무하게 패배했기 때문에 신념에 근거해 자신을 희생한 투쟁으로 여겨졌고, 많은 일본인에게 시대의 영웅을 안겨준 고결한 행위로 각인되었다. - 2장 적군파 - 혁명 병사라는 이미지(139~140쪽)
‘공산주의화’라는 방침 아래 멤버가 지극히 사소한 성적 과오까지 진지하게 고백하고, 집단적 비판 세례를 받으면서 그 과오가 부르주아 사상이 남아 있는 탓이라는 크나큰 문제로 부풀려졌다고 해도 이상할 게 없다. 그런 하찮은 고백을 아무리 해봤자 혁명 전사로 나아가는 길을 제대로 걷고 있는지 여부는 알 길이 없다. 그러기는커녕 같은 수준의 사소한 행동을 아직 고백하지 않은 사람에게 불신감을 품는 토양이 생겼다. - 3장 연합적군 숙청 사건 - 폐쇄된 집단의 내부 폭력(178쪽)
각자가 자기 나름의 속도로 연합적군을 둘러싼 유동적이고 복잡하게 얽힌 상황을 거쳐 갔다. 그 과정의 전체상을 재구축해보면 올바른 선택을 진지하게 행한 극히 평범한 사람이라도 벗어날 수 없는 사회적 경로에 무의식적으로 휘말릴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나중에 돌이켜봐도 여기서 멈추었어야 할 명확한 지점은 아무데도 없다. 여기서 뛰어내리지 말았어야 할 눈에 보이는 낭떠러지는 존재하지 않는다. …… 말할 수 있는 것은 단지 어떤 사람이 헤엄을 치다 너무 멀리까지 가버렸다는 것이다. 그러나 어느 발장구 한 번이 도를 넘는 한 번이었는지, 물결치는 파도 속에서 정확히 어느 시점에 돌아가야겠다고 판단해야 했는지 정확히 답할 수 있는 이는 없을 것이다. - 5장 사건 이후 - 끝없는 이야기 지어내기(327~328쪽)
우리 모두가 연합적군 사건 같은 비극의 피해자도, 가해자도 될 수 있다. 그런 비극은 혁명 이후에도, 이전에도 똑같이 일어난다. 이데올로기적 신념이 우리의 눈과 귀와 마음으로 인식한 것보다 더욱 진실에 가깝다고 여겨지는 한, 그리고 조직의 결속과 지도자의 권위가 개개인이 ‘아니오’라고 말할 가능성을 짓밟는 한 몇 번이고 거듭 일어날 것이다. - 5장 사건 이후 - 끝없는 이야기 지어내기(32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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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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