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긴박감 가득한 이 책은 민주주의 수호자가 해야만 할 가치 있는 행동을 제시한다
- 심도가 지닌 가치를 완전히 상실하지 않으려면 제도적 설계와 관계를 체계적으로 재구상해야 한다
미국 대통령제 민주주의의 그림자를 파헤친 저서 '두 유령'이 국내에 번역 출간됐다. 이매진 출판사는 스티븐 스커러넥 예일대 정치학 교수, 존 디어본 밴더빌트대 정치학과 조교수, 데스먼드 킹 옥스퍼드대 연구교수 등 세계적 대통령학 권위자들이 공동 집필한 '두 유령'을 박동열 씨 번역으로 선보였다고 밝혔다.
이 책은 '대통령은 바뀌었지만, 대통령직은 바뀌지 않았다'는 화두를 던지며 현대 미국을 배회하는 '딥 스테이트(deep state)'와 '단일 행정부(unitary executive)'라는 두 유령을 분석한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사례를 통해 미국 민주주의의 역사와 현실을 심도 있게 조명하며, 제도가 민주주의의 운명에 미치는 결정적 영향을 강조한다.
저자들은 트럼프가 뜬금없이 나타난 인물이 아니라 오늘날 대통령직이 겪는 변화를 잘 보여주는 교본에 불과하다고 지적한다. 대통령제 민주주의를 채택한 미국과 한국이 딥 스테이트와 단일 행정부라는 '쌍둥이 유령'에 포위되어 있으며, 탄핵 남발, 부정 선거 음모론, 검찰 장악, 폭력 사태, 대행 임명과 코드 인사, 정치 사법화 등 유사한 현상을 겪고 있음을 강조한다. 이는 파괴된 민주주의와 곤경에 빠진 체제를 되살릴 해법 또한 두 나라가 유사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책에서 정의하는 **'딥 스테이트'**는 튀르키예나 이집트 등에서 정치를 통제하는 군부 세력을 가리키는 용어였으나, 트럼프는 이를 행정부 내에서 대통령에게 저항하는 비밀 네트워크로 확장하여 규정한다. 반면 '단일 행정부' 이론은 대통령과 행정부가 한 몸이 되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트럼프는 이 두 개념을 연결하여 자신은 민주적 정당성을 획득한 대통령이지만, 자신을 반대하는 적들이 국가 심층에 뿌리박혀 민주적 지도자를 방해하는 악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충성을 기준으로 한 코드 인사와 대행 임명, 대중 동원 기예를 활용해 대통령직과 행정부를 사유화했으며, 이는 결국 단일 행정부 이론과 딥 스테이트 음모론이 서로를 소환하는 한 쌍이 되는 결과를 낳았다.
책의 2부에서는 단일 행정부와 딥 스테이트 사이의 대결을 구체적으로 묘사한다. '참모진의 심층'에서는 공화당 기득권 세력과 포퓰리스트 반란 세력이 맞붙은 백악관 참모진의 충돌을 다룬다. '규범의 심층'에서는 대통령의 지시와 정부 기관의 행동이 충돌하는 상황, 즉 트럼프가 러시아의 대선 개입 문제와 힐러리 클린턴 기소 사안을 두고 연방수사국과 충돌한 사례를 분석한다. '지식의 심층'에서는 단일 행정부와 과학의 충돌을 보여주는데, 트럼프가 기상청과 환경보호청을 압박하고, 자신에게 불리한 연구 결과를 내놓은 농무부 산하 기관들을 이전시킨 사례를 제시한다. '임명의 심층'에서는 대통령의 임면권을 둘러싼 갈등을 조명하며, 트럼프가 전문성과 독립성 대신 충성도를 기준으로 사법부와 정보기관 등에 인사권을 행사한 점을 지적한다. 마지막으로 '감독의 심층'에서는 단일 행정부가 의회를 상대로 싸우는 모습을 다루며, 트럼프가 의회의 탄핵 과정에서 하위 공무원들의 증언을 딥 스테이트의 마녀사냥으로 규정한 사례를 분석한다.
저자들은 해답이 반드시 헌법에 들어 있다는 믿음은 또 다른 문제의 징후라고 말한다. 대신 절대 권력을 휘두르는 단일 행정부를 꿈꾸는 대통령의 야망과 훌륭한 통치 역량을 지녔지만 오만해지기 쉬운 딥 스테이트 사이의 갈등을 통찰하며 민주주의 체제가 처한 곤경을 설명한다. 이들은 딥 스테이트와 단일 행정부라는 쌍둥이 유령이 헌정 체제의 그늘을 배회하며 모호한 헌법 속에서 서로를 불러낸다고 설명한다. 대통령이 위계적 통제를 고집하면 행정 요원은 저항할 수밖에 없는데, 이는 의회가 강제 명령에 맞서 스스로를 방어할 강력한 자원을 부여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미국인들은 헌법 외적인 제도 배치를 통해 이러한 현실을 수용해왔다. 19세기에는 정당 정치를, 20세기에는 행정 영역을 통한 협치를 매개로 통치했다. 따라서 저자들은 21세기 미국인도 새로운 제도 배치를 창조적으로 구상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권력 분립과 견제와 균형이라는 헌법의 두 원리, 그리고 공화주의 정신을 계승하는 방법은 헌법에 집착하는 태도와는 무관하다는 시각이다. 19세기 말 정당 정치의 위기가 20세기 관리 행정으로 해결된 사례처럼 21세기에도 새로운 해법이 나타날 것이라고 진단한다. 미국 역사에서 지침을 찾는다면, 헌법 틀 안에서 파당적 분열을 봉합하고 행정부 부처 간 협력을 증진하는 제도적 혁신이 최선의 방법이 될 수 있다는 결론이다.
이 책은 딥 스테이트와 단일 행정부 개념이 한국의 현실을 설명하는 데도 유용하다고 강조한다. 민주적 대표를 자처하는 정치인들이 관료 집단을 공격하고, 관료 집단이 사보타주를 한다는 구도는 '두 유령'에서 다루는 사례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이는 대통령제 민주정이 취하는 기본 구도 때문이며, 구체적인 제도는 나라마다 다르더라도 대통령이 민주적, 헌법적 정당성을 개인에게 집중시키고 이를 이용해 여당을 완벽히 장악하며, 현대 국가의 심층이 민주적 위임을 제외한 여러 보조 수단을 요구하는 한 대통령직에 적용되는 원리는 동일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uapple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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