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라우마의 제국

uapple 기자

등록 2025-08-01 17:13


바다출판사가 프랑스의 저명한 인류학자이자 의사인 디디에 파생과 정신과 의사이자 인류학자인 리샤르 레스만이 저술한 '트라우마의 제국' 20주년 기념 저자 서문 수록판을 출간했다. 이 책은 세월호, 이태원, 무안 공항 참사 등 끊이지 않는 재난과 피해자들의 고통을 '트라우마'라는 단어로 대체하는 현대 사회의 현상에 대한 심도 깊은 인류학적 분석을 담고 있다.


저자들은 '트라우마'가 어떻게 피해자의 고통을 대변하는 말이 되었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사회적, 정치적, 도덕적 귀결이 어떻게 나타나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트라우마'는 단순히 의학적 진단명을 넘어 사회적 구성물로서 피해자를 가시화하거나 은폐하며 정치적으로 활용되고, 이 과정에서 사회적 불평등이 확산되기도 한다는 점을 지적한다. 특히 팔레스타인-이스라엘 사례를 통해 특정 집단의 트라우마를 인정하는 방식이 불평등하게 조직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 책은 트라우마에 대한 대중서적이나 교과서적인 정신의학 이론서, 혹은 비판적인 소수의 책들과는 달리, 어느 한쪽에도 치우치지 않고 인류학자의 시선으로 시대적 구성물인 트라우마의 사회적 현상을 분석한다. 저자들은 정신분석과 정신의학에서의 트라우마 개념 정립 과정을 다루는 '지식의 계보'와 피해자 이해에 초점을 맞춘 '사회적 계보' 두 가지를 통해 전 세계의 다양한 사례를 면밀히 살핀다.


특히 2014년 세월호 참사와 2001년 9·11 세계무역센터 사고를 예시로 들며, 정신적 고통이 어떻게 정치화되는지를 설명한다. 두 사건 모두 국가가 '트라우마'라는 말로 피해자들의 정신 상태를 규정하고 치유자를 자처했으나, 이 과정에서 피해자 개개인의 이야기는 사라지고 정치적 이념이 덧씌워져 문제의 본질이 왜곡되는 양상을 보였다고 분석한다. '트라우마의 제국'이라는 책 제목은 이처럼 고통의 세계를 독점하고 그 영역을 넓히는 트라우마의 특성을 드러낸다.


트라우마, 즉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라는 진단명이 '발명'된 이후 피해자는 정치적, 도덕적 지위를 보장받게 되었으나, 이 개념이 안고 있는 문제점도 지적한다. 트라우마가 경험의 본질을 말소시키고, 일어난 사건과 경험한 사건 사이를 일련의 증상으로 연결 지음으로써 경험의 다양성과 복잡성을 은폐한다고 비판한다. 또한 트라우마가 '피해자'를 '선택'하여 누군가는 배제되고 누군가는 선택되는 불평등을 야기하며, 파키스탄 지진보다 태국 쓰나미에 국제적 지원이 활발했던 사례처럼 피해자와의 거리감, 정치색 등에 따라 '선한' 피해자와 '악한' 피해자를 재발명한다고 꼬집는다.


저자들은 트라우마가 너무 많은 대상을 포괄하는 특징 또한 비판적으로 바라본다. 사고 피해 당사자뿐 아니라 목격자, 대중매체를 통해 현장을 본 사람까지 PTSD 진단을 받을 수 있는 현실, 그리고 성폭행 피해자, 전쟁 피해자, 심지어 전쟁 범죄자까지 하나의 진단명 아래 두는 것이 타당한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며 과학자로서의 직무유기가 아닌지 묻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트라우마 개념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이유는, 개인에게 통제를, 집단에게는 응집력을 부여하고, 피해자가 경제적 권리를 보장받고 정신적 고통에 대한 의심의 시대가 끝났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트라우마 개념이 사람들 사이에 새로운 분열을 만들고 사회적 불평등에 기여한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디디에 파생과 리샤르 레스만은 1995년 파리 테러 공격, 2001년 툴루즈 산업재해, 제2차 인티파다 당시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양측에 인도주의 정신의학이 관여한 방식, 그리고 망명처를 구하는 난민에게 추방자의 심리외상학이 적용되는 방식 등을 연구하며 트라우마가 어떻게 피해자의 고통을 인증해주는지 드러내는 동시에, 우리 시대의 중요한 도덕적, 정치적 문제를 제기한다. 나아가 피해자가 소외된 현재의 트라우마 정치성이 아닌, 피해자 중심의 새로운 정치화를 위한 단초를 마련하는 것이 외상 후 성장과 화해로 나아가는 길이라고 역설한다.


uapple

uapple

기자

여기에 광고하세요!!

여기에 광고하세요!!

피플스토리
등록번호경기 아54185
등록일자2024-09-09
오픈일자2024-09-09
발행인장기영
편집인장기영
FAX050)4433-5365
이메일peoplestorynet@nate.com
주소 고양시 일산서구 중앙로 1449 호원메이저 10F
uapple

피플스토리 © PEOPLE STORY All rights reserved.

피플스토리의 모든 콘텐츠(기사 등)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R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