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접 여러 나라의 헌법 제정 과정에 참여하며 깨달은 세계적인 헌법학자의 고발
우리가 법을 믿지 못할 때 필요한 시민수업
오늘 위즈덤하우스는 신디 L. 스캐치 교수의 저서 '법은 어떻게 민주주의를 배신하는가'를 김내훈 교수의 번역으로 출간했다. 이 책은 세계적인 헌법학자인 스캐치 교수가 여러 나라의 헌법 제정 과정에 직접 참여하며 깨달은 민주주의의 위기에 대한 고발을 담고 있다.
저자는 법이 시민을 수동적인 존재로 만듦으로써 민주주의를 병들게 한다고 지적한다. 민주주의는 시민 스스로가 통치하는 체제임에도 불구하고, 법과 제도, 그리고 선거에 지나치게 의존함으로써 우리는 그 사실을 망각한다는 것이다. 이에 스캐치 교수는 민주주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시민의 새로운 '시민 됨'을 제안한다. 더 나은 법이나 제도가 아닌, 시민 스스로의 '시민력'이 중요하다고 강조하며, 이를 위해 리더십, 기본권, 공공 공간, 식량 안보와 환경, 사회적 다양성, 교육의 여섯 가지 핵심 영역을 제시한다. 각 영역에서 시민이 실천할 수 있는 구체적인 행동 수칙들을 통해 새로운 시민성이 무엇인지 그려낸다.
특히, 이 책은 2024년 12월 3일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이후 벌어진 일련의 사건들을 겪은 한국 시민들에게 깊은 공명을 일으킬 것으로 예상된다. 계엄령과 두 번의 탄핵을 통해 헌정 질서를 지켜내고 부패한 지도자를 시민의 힘으로 교체한 한국의 경험은, 저자가 말하는 '시민성'의 핵심인 회복력과 유대감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저자는 한국 시민들이 무너진 질서 속에서 방관자가 아닌 '스스로 선한 질서를 만드는 존재'임을 직접 경험했다고 평가하며, 결국 우리 일상의 민주주의를 지킨 것은 법이나 국가가 아닌 광장의 시민이었다는 결론을 내린다.
스캐치 교수는 오늘날 법치주의가 시민의 자율적 판단과 행동을 억누르고 모든 결정을 법에 위임하도록 만든다고 비판한다. 미국 연방대법원의 낙태권 판례 변화를 예시로 들며 법이 본질적으로 해석의 영역이며, 우리가 법을 만들 권리뿐 아니라 해석의 권한까지 판사에게 넘겨버렸다는 점을 지적한다. 특히 한국 사회가 법에 과도하게 의존하여 모든 분쟁을 법정에서 해결하려는 문화가 굳어졌고, 그 결과 시민이 '죄 없는 방관자'로 전락했다고 분석한다. 민주주의를 해치는 것은 법 자체가 아니라, 법을 절대적 해결책으로 여겨온 우리의 태도이며, 스스로 판단하고 협의하며 집단적으로 결정해야 할 문제까지 법에 맡기는 순간 민주주의는 힘을 잃는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책에서 제시하는 여섯 가지 민주주의 행동 수칙은 "지도자를 따라가지 말 것", "권리를 누리되 책임질 것", "광장에서 계속해서 교류할 것", "지속 가능하고 독립적인 공간을 만들 것", "법보다 먼저 타문화를 포용할 것", "다음 세대를 방관자가 아닌 시민으로 키울 것"이다. 이 수칙들은 시민이 자발적으로 질서를 만들어야 한다는 공통된 메시지를 담고 있다. 특히, 법조인 출신 지도자의 계엄 선포에도 불구하고 거리로 나서 스스로 질서를 회복한 한국 시민들의 행동은 "지도자를 따라가지 말 것"이라는 수칙의 의미를 강하게 되새기게 한다. 또한 "법보다 먼저 타문화를 포용할 것"에서는 이국적 음식을 통해 무의식적 혐오와 배제를 허물고 타문화와 함께 살아갈 수 있는 감각을 키우는 독특한 방법을 제안한다.
스캐치 교수는 한국어판 서문에서 이 책의 이야기가 한국 사회와 놀라울 만큼 공명한다고 밝히며, 두 번의 탄핵을 통해 시민이 직접 대통령을 교체한 한국이 어쩌면 '입헌 민주주의 다음'을 가장 먼저 상상하고 실천할 수 있는 나라일지도 모른다고 언급한다. 한국이 시민력을 키운다면 새로운 민주주의의 시작을 알리는 첫 번째 토양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적인 메시지로 마무리된다.
최강욱 전 국회의원은 "법은 법비들의 놀잇감이 아니라 시민의 방패라는 것, 그 당연한 깨달음을 위해 우린 너무 많은 희생을 치렀다"며 이 책을 내란을 극복한 새로운 대한민국을 일구려는 시민들에게 권했다. 임경빈 정치평론가는 "법은 시민들의 의지와 목소리로 빚어진 합의의 결과이고, 그 주인은 바로 '나'라는 것"을 깨달은 대한민국 시민에게 건네는 위로이자 묵직한 메시지라고 평했다.
저자 신디 L. 스캐치는 볼로냐대학교 정치학 교수로, 헌법과 법적 체계에 대해 수십 년간 연구하고 여러 정부에 자문해왔다. 역자 김내훈은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이론과를 졸업하고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 미디어문화연구 전공 박사과정을 수료했으며, 민주주의 위기 상황에서 시민이 된다는 의미를 고민하는 글을 기고하며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uapple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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