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거우차오 다리 위의 교전
1937년: 루거우차오 사건 발발
1937년 7월 7일 밤 10시 30분경, 베이징 서남쪽에 위치한 루거우차오(盧溝橋, 마르코 폴로 다리) 부근에서 주둔 중이던 일본군이 야간 훈련 중 총성을 듣고 병사 한 명의 실종을 주장하며 완핑현성 진입을 요구했다. 중국군은 이를 거부했고, 이 과정에서 양측 간 교전이 발생했다. 일본군은 실종된 병사가 20분 만에 귀대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빌미로 중국군을 공격했다.
일본은 이 사건을 '중국 측의 계획적인 무력 사용'으로 단정하고 대규모 파병을 결정했다. 비록 현지에서는 정전 협정이 체결되기도 했으나, 일본 군부의 강경한 태도와 중국 본토 침략 야욕으로 인해 협상은 결렬되었다. 일본군은 이후 베이징과 톈진을 점령하며 전면적인 공격을 개시했고, 이는 8년간 지속된 중일 전쟁의 서막을 알렸다.
루거우차오 사건은 중일 관계에 치명적인 악영향을 끼쳤다. 첫째, 이 사건은 일본의 중국 침략을 본격화하는 직접적인 도화선이 되었다. 일본은 만주국 수립 이후 중국 본토에 대한 영향력 확대를 노렸고, 루거우차오 사건은 이러한 침략 야욕을 실행에 옮기는 명분이 되었다.
1978년: 솔로몬 제도 영국으로부터 독립
1978년 7월 7일, 오세아니아의 솔로몬 제도가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했다. 솔로몬 제도는 1893년부터 영국의 보호령으로 존재했으며,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에는 격렬한 전투가 벌어졌던 과달카날 전투의 배경이 되기도 했다. 독립 이후 솔로몬 제도는 주권 국가로서 국제 사회에 편입되었으며, 현재까지도 영연방의 회원국으로 남아 있다.
1988년: 7.7 선언 발표 (대한민국)
1988년 7월 7일, 노태우 당시 대통령이 '민족자존과 통일번영을 위한 특별선언', 이른바 7.7 선언을 발표했다. 이 선언은 남북한 관계를 대결에서 화해와 협력으로 전환하려는 의지를 담았으며, 북한에 대한 문호 개방과 남북 교류 활성화 방침을 밝혔다. 이는 남북 관계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고 대북 정책의 중요한 변화를 이끌어냈다.
2005년: 런던 폭탄 테러 발생
2005년 7월 7일 오전, 영국 런던의 지하철과 버스에서 동시다발적인 자살 폭탄 테러가 발생했다. 이 테러로 52명의 민간인이 사망하고 700명 이상이 부상을 입었다. 알카에다와 연계된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이 테러의 배후로 지목되었으며, 영국은 물론 전 세계에 큰 충격을 주었다. 이 사건은 테러에 대한 국제 사회의 경각심을 높이는 계기가 되었다.

uapple
기자
피플스토리 © PEOPLE STORY All rights reserved.
피플스토리의 모든 콘텐츠(기사 등)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R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