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년대 미국.
만년필의 대명사 파카사에서는 진지한 회의가 진행되고 있었다. 당시 파카사의 여성용 만년필은 굵기가 조금 가늘 뿐 검정과 갈색 중심의 남성용 만년필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레드 립스틱처첨 빨간색을 입혀봅시다!”
세계 최초로 붉은 색깔의 여성용 만년필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이것이 컬러마케팅의 시초라고 한다.
파카사의 여성용 만년필의 등장은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파카사는 높은 시장 점유율에도 불구하고 컬러를 도입한 여성용 만년필을 왜 도입한 것일까?
지금으로부터 100여 년 전의 일을 꺼내 혁신에 대한 이야기를 푸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파카사의 컬러플한 여성용 만년필의 등장 의미는 현재 우리 기업들에게 던져주는 메시지는 예사롭지 않다.
1918년 1차 세계대전 종료된 후 미국에는 수백만 명의 실업자가 양산된다. 전쟁 종료 후 쏟아져 들어오는 군인들의 일자리가 충분치 않았기 때문이다. 반면 기업들은 전쟁 특수에 힘입어 많은 제품을 생산하려고 했다. 한쪽에선 실업자가 양산되어 사회 전체적으로 구매력이 극도로 떨어지고 있는데, 다른 한쪽에선 물건이 과다 생산되는 아이러닉한 현상이 벌어진 것이다. 1920년대 미국은 '검은 목요일'이라 불리우는 증시폭락과 경제공황에 이르기 전까지 이런 현상은 지속되었다.
결과적으로 파카사의 컬러플한 여성용 만년필의 등장은 당시 미국사회의 경제적 변동 상황에서 나왔다는 것은 분명하다. 소비가 위축되면 기업들은 제품 홍보를 위해 기존의 마케팅 방식과는 다른 방법을 택하기 때문이다. 아마도 파카사의 레드컬러 여성용 만년필의 등장은 이런 배경에서 나온 것은 아닐까.
일반적으로 보면 어느 시기에나 경기가 위축되고 불황에 접어들면 기업들은 거리로 직접 뛰쳐나와 제품을 홍보하는 경우가 많다. 앉아서 소비자들을 기다릴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직접 소비자를 찾아 나서게 된다.
컬러마케팅은 경제 불황, 대량 실업사태, 소비 감소와 위축…, 이런 것들과 분명 연관이 있다. 파카사의 컬러플한 여성용 만년필의 등장이 미국 경제의 불황으로 치닫는 과정에서 나왔지만, 남성용과 구분되지 않았던 만년필을 여성용으로 차별화한 제품이라는 점에서 소비자의 기호에 맞는 제품의 진보를 이룬 사례라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하지만 컬러플한 여성용 만년필의 등장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컬로마케팅이 시각적 측면에서 시작되었다는 점이다. 시각적 측면을 활용한 마케팅은 현대에서 디자인과 광고의 발전을 가져왔고 지금은 아주 중요한 마케팅 기반이 되었다.
신정희 기자 다른 기사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