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혁명가 스티브 잡스가 이 세상을 떠난지 10여 년이 흘렀다. 그를 사랑하는 애플빠는 물론 경쟁기업들조차 그의 죽음을 애도했다. 그가 남긴 유산은 그 깊이를 가늠하기 힘들 정도로 지금 전세계에 넓고 깊게 퍼지고 있다.
나는 스티브 잡스가 작고하기 전에 출간한 저서 『책의 미래 - 파피루스에서 e-Book까지 진화의 시간』 서문에서 “나는 애플빠라고 스스로 생각합니다. 애플사가 좋아서가 아니고 그들의 창조성과 혁신성이 우리 모두를 자극시키고 변화시키고 있기 때문입니다. 과독점에 기반한 국내 대기업들과 이동통신사들의 현실 안주는 결국 한국의 모바일 콘텐츠 시장을 10년 뒤로 후퇴시키고 말았습니다. 반면 애플의 현재 시장지배력은 과독점에 의한 것이 아니고 끊임없는 혁신에 의한 것입니다. 그들은 콘텐츠 생산자들에게 새로운 비전을 현실화시킨 혁신주의자들입니다.”라고 밝힌 바 있다.
애플이 마이크로소프트와 IBM에 밀려 3류 기업으로 끝없는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을 때, 스티브 잡스는 지금으로부터 26년 전부터 조용한 혁명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리고 10년 뒤인 1995년 포춘지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애플을 소생시킬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완벽한 제품과 완벽한 전략에 대한 것 이상이라는 것을 제외하고 더 이상 말하지 않겠습니다. 물론 아무도 내 이야기를 듣지 않을 것입니다.”
그의 말대로 당시엔 아무도 그의 말에 주목하지 않았다. 그 당시 한국에서는 윈도우95 운영체제를 탑재한 486컴퓨터, 그리고 PC통신이 막 점화되고 있었기 때문에 태평양 건너에 있는 스티브 잡스의 그런 이야기가 귀에 들릴리 만무였다. 그가 말한 애플을 소생시킬 수 있는 완벽한 제품과 전략이라는 것은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스티브 잡스가 애플에서 쫒겨난 뒤 그는 1985년에 넥스트를 설립했고, 그 다음해인 1986년에는 천만 달러를 투자하여 픽사를 인수했다. 그는 이 두 개의 기업을 통해 운영체제, 하드웨어, 콘텐츠라는 세 가지 실험을 하게 되었다. 그것도 개별적인 실험이 아니라 이 세 개의 영역을 하나로 융합하는 방법을 찾아냈던 것이다.
넥스트를 설립한 스티브 잡스는 BSD 계열의 오픈 운영체제를 기반으로 워크스테이션급의 컴퓨터에 탑재한 NeXTSTEP이라는 운영체제를 만들어 냈다. 마이크로소프트와 IBM 동맹에 맞설 수 있는 최초의 기반을 확보했던 것이다. NeXTSTEP 운영체제를 만든 그는 10년 뒤인 1996년에 다시 애플로 복귀하여, 이 운영체제를 기반으로 Mac OS X를 탄생시켰다. Mac OS X 운영체제는 현재의 iOS운영체제의 모태가 되었다.
픽사는 원래 고성능 그래픽을 처리하는 디자인용 컴퓨터 하드웨어 판매업체서 시작하였으나, 스티브 잡스가 픽사를 인수한 뒤 수작업에 그쳤던 당시 애니메이션 제작을 컴퓨터로 자동화하는 기술을 기반으로 애니메이션 제작을 시작했다. 이러한 행보가 디즈니와의 협력관계가 되었고, 1991년 마침내 디즈니와 <토이 스토리>를 공동으로 제작하게 되었다. 당시 픽사가 디즈니와 맺은 계약은 2,600만 달러에 달했다. 3D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된 <토이스토리>는 전세계에 새로운 애니메이션 충격을 줬다. 이런 성공으로 2006년에 디즈니는 픽사와 전격 합병을 단행했다. 합병에 따른 거래 금액은 총 74억 달러에 달했다. 천만 달러가 20년 후에 74억 달러로 불어난 셈이다.
이렇게 넥스트 설립을 통해 지금의 iOS와 아이폰, 아이패드를 만들어 냈고, 픽사를 통해 지금의 3D 애니메이션 콘텐츠의 새로운 지평을 열게 되었다. 스티브 잡스는 이런 과정을 통해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갑부가 되었지만, 사실 그는 부를 추구했다기 보다 운영체체와 하드웨어, 그리고 콘텐츠 융합하는 혁신을 끊임없이 추구했다. 그 결과 남들이 하지 않았던 새로운 것들을 창조해 냈다.
그는 1998년 포춘지와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혁신은 얼마나 많은 연구 개발비를 투자하느냐와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애플이 맥을 세상에 내놓았을 때 IBM은 연구 개발비로 애플보다 최소 100배 이상의 돈을 투자했습니다. 혁신은 돈의 문제가 아닙니다. 혁신은 당신과 함께 일하는 사람들과 그 사람들을 이끄는 리더십에 따라서 어떤 결과를 낳느냐에 달렸습니다."
넥스트, 픽사를 통해 운영체제, 하드웨어, 콘텐츠라는 세 가지 영역을 혁신적으로 융합해왔고, 그 결과 지금의 아이폰, 아이패드, 앱스토어 같은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어 냈던 것이다. 아이폰으로 인해 지난 10년 동안 이동통신사 폐쇄왕국에서 갇혀 있던 국내의 IT기업과 콘텐츠 업체들은 일순간 기적처럼 깨어나게 되었다.
그런데 스티브 잡스가 만들어 낸 애플 패러다임에 대해 많은 사람들은 그가 단순히 IT기술과 콘텐츠를 융합한 것으로만 보고, 경제적 가치로만 보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스티브 잡스의 지난 26년에 걸친 끊임없는 도전과 실천에는 사실 경제적 가치 이상의 큰 의미가 숨겨져 있다.
그는 2011년 3월 아이패드2 발표 현장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아이패드2의 작업을 같이 해왔고, 나는 오늘을 놓치고 싶지 않았습니다. 애플의 DNA는 기술만으는 충분히 만족시킬 수 없습니다. 기술은 인문학과 결합해야 하며, 사람의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휴머니티를 반영해야 합니다.”
IT기술과 인문학의 결합의 중요성을 얘기하자마자 많은 사람들은 스티브 잡스의 저력이 어디에서 나오는지 뒤늦게 깨달았다. 하지만 IT기술과 인문학의 결합이라는 게 도대체 무엇일까? 사람들은 이를 심오한 그 무엇쯤으로 여기는 듯하다. 하지만 이것의 핵심은 사람에 대한 관점이고, 생태계에 대한 관점이다. 스티브 잡스는 앱스토어를 통해 전세계 콘텐츠 개발자 3~4만명에게 새로운 시장을 열어주었다. 국내 대기업이나 글로벌 다국적 기업들이 냉혹한 법칙에 따라 중소기업을 무너뜨리며 시장지배력을 키운 반면, 스티브 잡스는 중소기업과 콘텐츠 개발자들이 미래를 꿈꾸며 자신의 에너지를 창조적 활동에 쏟아부을 수 있는 터를 제공했다. 이것만큼 더 큰 인문학이 과연 있을까? 이것만큼 더 큰 휴머니티가 과연 어디 있을까?
스티브 잡스는 지독한 일 중독자이기도 하다. 그로 인해 과도한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그렇지만 그는 자신의 일을 사랑했다.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고, 그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던 것을 만들어 내는 창조적인 자신의 일을 존중했다. 하지만 그 일은 자신의 부를 축적하는데에만 쏟아 부었던 열정과 에너지가 아니었다. 그의 창조적 결과물은 전세계 사람들을 변화시켰고, 전세계 사람들의 가슴으로 파고들었다. 스티브 잡스는 지금 우리 곁을 떠났다. 하지만 그가 남긴 영혼은 IT기업인들과 콘텐츠 기업인들, 그리고 콘텐츠 창작자들의 가슴속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그런 점에서 스티브 잡스는 결코 끝나지 않는 이야기가 될 것이다.
장기영은 현재 한국전자출판협회 이사로 활동 중이며 오랫동안 전자책 관련 일을 해오고 있다. 주요 저서로 '책의 미래–파피루스에서 eBook까지 진화 시간' (국어교과서 수록), ABC트레킹5부작 등이 있으며 전자신문, 월간<도서관이야기>, 월간<라이브러리&리브로>, 국회도서관보, 한우리독서신문, 팝콘정책보고서 등에 다수 칼럼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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