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위상이 높아지고 K-POP과 K드라마, 영화 등 한류 붐으로 해외 한국어 학습자가 빠르게 증가하고, 2023년 미국 음원시장에서 가장 많이 재생된 언어는 영어, 스페인어 다음으로 한국어라고 한다.
그런데 과학적인 한글의 우수성 때문에 처음에는 배우기가 쉽지만 어느 정도 지나면 점점 어려워진다고 한다. 왜냐하면 우리말에는 한자어가 많아서 외국인 입장에서 정말 배우기 어렵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국어가 국제화되고 있는 때일수록 순우리말을 다듬고 확장시킬 필요성이 더욱 커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1945년 제주에서 나고 자란 고영천 국어 교사가 은퇴 후 하루 10시간씩 10년에 걸쳐 다듬고 또 다듬어 엮은 '가려 뽑은 순우리말 사전'이 uapple에서 출간됐다.
이 책은 7,689개의 순우리말 표준어를 올림말로 선정하고, 그 외 관용어‧유의어‧방언‧속담 등 3,250개 여줄가리 올림말과 문학 작품‧신문 기사‧잡지‧방송 대본 등에 쓰인 간결하고 세련된 10,280개 문장을 예문으로 취하여 생각하기와 글쓰기의 마중물로 삼게 하였다. 이 책의 도드라진 장점은 제주 출생의 국어 교사가 제주어를 풍부하게 담았다는 점이다.
저자는 이 책을 저술하게 된 과정을 덤덤하게 밝혔다.
"은퇴 후 서재에서 하루 10시간 넘게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면서 사전 만들기 작업에 매달렸습니다. 예전에 교단에서 학습자료로 활용하기 위해 메모하여 USB에 저장해 둔 어휘만도 1만이 넘고 스크랩자료도 꽤 되어 서점에서 사전 몇 권을 더 구입하고, 절판된 사전은 도서관을 찾아 참고했습니다.”
1천 쪽에 달하는 방대한 이 책에는 은퇴 후의 집필 시간 뿐만 아니라 교사 생활까지 합하면 20대 후반부터 지금까지 60여년의 세월과 고단한 노력이 고스란히 녹아들어 있다.
같은 제주 출신의 김길웅 칼럼니스트는 "놀랍다. 바람 좋은 날 키질을 잘도 했다. 쭉정이 하나 섞이지 않고 순 알곡으로 채웠다. 제대로 출판돼 순우리말에 목마른 이들의 타는 갈증을 축여 줬으면 좋겠다. 엮은이의 우리말 사랑이 곡진함에 고개 숙여 경의를 표한다."며 축하를 해주었고, 강영봉 제주어연구소 이사장(제주대명예교수)은 "이 사전을 보는 이로 하여금 또한 우리말에 대한 사랑도 쑥쑥 자라길 소망"한다는 희망을 전했다.
1천 쪽에 달하는 순우리말사전 원고를 받아든 출판사는 '감히 엄두가 나지 않는 프로젝트'여서 처음에는 출간을 포기했었다. 하지만 저자의 땀과 노고로 얼룩진 원고를 앞에 두고 고심하던 끝에 ‘흔적과 기록이라도 남겨보자’는 취지로 텀블벅 문을 두드렸다.
"우리말의 어원을 쫓아가다 보면 한반도에 머물지 않고 중앙아시아를 거쳐 바이칼호수까지 연결되어 있듯이, 수천 년이 지나도 언어는 끈질지게 흔적을 남기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날에도 유라시아와 동아시아 곳곳에서 우리말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정판 ‘가려뽑은 순우리말사전’ 출간에 벽돌 하나씩 보태 주십시오."라고 텀블벅 이용자들게 호소했다.
그 결과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예일대, 프린스턴대, 시카고대 등 미국 대학 3개 대학과 일반 후원자 500여 명이 출간에 동참했다. 이렇게 해서 초판이 세상에 나올 수 있었다.
현재 uapple 출판사에는 단 한 권의 책도 남아 있지 않다. 간헐적으로 책을 찾는 소수 독자들의 문의가 들어오긴 하지만 2차 출간을 기약하지 못하고 있다. 그래도 소수의 독자들 위해서라도 2차 북펀딩을 준비하고 있다.
* 고영천 선생은 제주고등학교, 제주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하고 ROTC 6기 육군 중위로 전역 후 오현중학교 교사, 오현중학교 교감, 오현중학교 14대 교장, 오현고등학교 11대 교장, 제주시 중등교장협의회 회장 역임하는 등 평생 교직의 길을 걸어왔다. 은퇴 후 <가려 뽑은 순우리말사전> 집필에 전념했다.
정은수 기자 다른 기사 보기